요즘 날이 덥고 방학이다보니 다들 영화관에 오나보다. 어제 많은 인파를 뚫고 "인셉션"을 보러갔다. 워낙 기대가치가 높았던 영화여서 어제 하루종일 설레였다. 기대치 높았던 영화를 본 감상은 한마디로 입이 떡 벌어진다. 감독의 상상력과 그 상상한 것을 시각적으로 재현해낸 솜씨, 그리고 기본적인 전제로 가져온 인간의 무의식의 발현인 꿈에 대한 고찰까지 모두모두 훌륭했다.
감독의 전작인 '메멘토'에서처럼 시간은 순행과 역행을 반복하고 1차 꿈과 꿈속의 꿈인 2차 꿈의 시공간은 완벽하게 서로 다른 차원으로 구성되어있다. 꿈이 깊어질수록 10초-3분-60분-10시간으로 물리적인 시간이 증가하며 꿈의 밑바닥에는 그곳에 갇혔던 사람들의 기억만 존재하는 '림보'라는 것이 있다. -> 재미있는 설정이지 않은가?^^
우리가 꿈을 꿀 때 현실에서 물리적인 변화가 있으면 반영이 되듯이 -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너무너무 쉬가 마려웠던 꿈처럼....- 영화에서도 2차 꿈과 3차 꿈 모두 1차 꿈의 물리적인 변화와 상호작용한다. 이것도 당연한 듯하면서도 신기했다.
영화가 끝나고 가장 많이 든 생각은 행복하려면 무의식을 고찰하라는 것이었다. 주인공 코브 일당은 피셔의 꿈을 통해 무의식에 들어가서 생각의 씨앗을 뿌리려고 한다. 피셔는 표적이 되고 그 일의 의뢰인은 사이토인데 코브는 피셔의 무의식에서 아버지와의 불화를 사실은 아버지가 새로운 방식으로 아들을 키우고 싶어한 것으로 Inception한다. 조작일수도 있지만, 영화에서 "사이토에게 돈을 받을게 아니라 피셔에게 돈을 받아야겠구만"이라는 대사로 표현되듯이 피셔는 이들의 표적이 된 덕분에 무의식에 행복한 씨앗을 심게 된다. 물론 주인공 코브의 죄의식도 본인이 꿈속에서 죽은 부인인 맬에게 사죄하고 화해하면서 치유된다.
요즘 읽고 있는 '대칭성 인류학'에서 인간에게 행복은 항상 무의식이라는 '마음'의 기층의 자유롭고 편안한 상태와 직결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한 무의식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는 것은 꿈을 통해서인데 무의식은 유동적 지성의 활동이기에 고차원적인 무의식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삼차원적인 현실세계의 논리에 맞추려고 하면 아무래도 압축이나 치환에 의한 '비유'나 '상징'으로 나타난다. 꿈은 그렇게해서 만들어진다.
자 그렇다면 우리의 무의식이라는 '마음'의 기층에 닿을 수 있는 방법은 꿈이고 꿈은 비유나 상징으로 마음을 전달해 주므로 우리는 항상 꿈에 귀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