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노블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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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하하핫! 웃음이 터진다. 

호방한듯 쾌활한 웃음소리의 소녀와 그런 소녀 곁에서 쿨내음이 풍기는 듯한 소년의 평범한듯 평범하지 않은 일상들의 나날들.

흔히 우스갯소리로 낙엽만 굴러도 웃는다는 학창시절. 그 찬란하게 싱그러운 시절, 자신의 삶이 얼마남지 않음을 알고 있는 소녀의 삶은 어떨까?


사쿠라는 의사에게 췌장에 병을 가지고 있어 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는다는 선고를 진작에 받았다.

원래라면 발병하는 순간 죽는 병이라지만 무궁무진한 발전을 이룩한 의학계의 도움으로 그녀는 나름대로 평온하게 일상에 숨어들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주변사람들에게 병을 알리고 싶지 않아 절친인 교코에게 조차 말하지 않았다.

그런 중대한 사실을 우연히 병원에 들른 같은 반 클래스메이트인 [나]에게 들켰다.


대인과 완만한 교류를 하지 못하고 책에만 몰두하며 사는 소년 [나]의 일상은 사쿠라라는 쾌활하지만 주어진 삶이 얼마남지 않은 소녀로 인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교실에서 그 누구와도 교류하지 않았던 일상에 예기치 못하게 사쿠라와 엮이며 관심을 받게된다. 몰론 달가운 관심이 아닌 꺼림칙한 수근댐의 관심이지만 말이다.

얼마 살지 못하는 병에 걸린 소녀라는 것을 무기로 사쿠라는 [나]를 끊임없이 불러내며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나]와 함께 한다.

이 소녀 정말 죽는게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명랑 쾌활하지만 어쩌면 얼마없는 시간이기에 악착같이 즐겁게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사쿠라는 불과 같다고 생각했다. 흔히 불이라고 하면 다혈질을 떠올리겠지만 그런것이 아니라 열정적인 느낌의 불을 떠올렸다.

[나]는 물. 천천히 흐르지만 조금은 차가운 물이라고 생각했다.

불과 물.. 참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그게 또 은근히 어울린다.

불이 일어 차가운 물을 따스하게 만들어주는 것, 두 사람의 조합은 그런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죽었다.

세상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았다.]


사쿠라의 죽음으로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나], 그리고 역시나 충격을 받은 독자인 나...

덩그러니 세상 속에서 예기치 못한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살아있는 이들의 흔들거림..

소설이면서 또한 현실인 이야기가 혼란스러웠다.

소설은 소설이고 현실은 현실이다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현실이 존재하기에 소설이 존재한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니까..


와하핫 시끄럽게 울리던 그녀의 웃음소리가 뚝하고 끊겨져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소리로 그리움을 남겼다.

이제 [나]는 그녀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 떠나간다는 것은 그런 공허함을 남기는 상처의 시작이다.


나에겐 갓 성인이 되자마자 운명을 달리한 친구가 있다.

그래서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 책을 보면 늘 그 친구가 떠오른다.

내가 철이 들고 인지를 하고 기억을 할수 있는 나이에 겪은, 내 인생 최초의 가까운 지인의 죽음이였다.

사쿠라를 보며 그 친구가 떠오르기도 했기 때문인지 끝무렵엔 꽤나 눈물을 쏟아냈다.

[나]가 겪은 아픔 역시 내가 겪은 아픔과 특별히 다를 것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녀가 어떤 의미로는 최초의 클래스메이트이자 절친이였을테고 그것을 잃은 공허함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아파하는 최초의 이별이였는지도 모른다.


매일 매일 한결같이 똑같다고.. 지루할만큼 변함이 없는 날이라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저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지나가는구나 라고 생각할지 모를 오늘의 하늘도 누군가에게는 반짝 반짝 찬란하게 빛나는 마지막 하늘이였는지도 모르겠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라는 문장이 이 소설의 모든것이 녹아있다.

처음엔 제목이 왜 이래? 라고 생각하던것이 책을 덮는 순간 이 문장 이외에 뭐가 더 필요할까? 라는 생각을 남긴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모든 것을 배워간다. 단 하나도 삶의 끝에서 이미 완성되어 져있는 것은 없다.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우리는 배워간다. [나]가 사쿠라를 통해 삶을 배워가고 사쿠라가 없는 시간 속에서도 매일 매일 배워나간다.

사람의 관계도, 슬픔을 슬픔으로 받아들여 온전히 슬퍼할수 있는 것도, 누군가에게 애정을 갖는것도 매일 매일 배워나간다.

삶이 다하는 날까지는 우리모두 삶을 배워나간다.


책이 끝나는 순간 그들처럼 나도 어쩌면 사쿠라의 웃음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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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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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서울 청계천 어느 공장 
허리하나 제대로 펴기 힘든 먼지로 찬 닭장 
같은 곳에서 바쁘게 일하며 사는 아이들 
재봉틀에 손가락 찔려 울고있는 아이는 
배우지 못해 배고픔을 참으며 졸린 눈 비벼 
밖이 보이지 않는 숨막히는 공장에 갇혀 
이틀 밤을 꼬박 세워 밤새 일하면 가슴에 쌓인 
먼지로 인해 목에선 검은 피가 
올라와 여길 봐 먼지의 참 맛을 아는 아이들 
피를 토해 손과 옷이 내 검은 피에 물 들 때 
손에 묻은 옷깃에 묻은 현실의 모든 피를 
씻어낼 곧 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 
노동자만을 위한 노동법은 사라진지 오래 
먼지를 먹고 폐병에 들어 비참히 쫓겨날 때 
여전히 부패한 이들은 술 마시며 
숨통 조이는 닭장에서 버는 한 달 봉급을 
여자의 가슴에 꽂아주겠지 


나와 비슷한 동년배의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노래 혹은 가사일 이 노래는
mc스나이퍼의 솔아솔아 푸르른솔아 라는 곡으로 영초언니가 살아내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노래가 나올 당시에는 어리기도 했고 사회운동이란 것을 잘 몰랐다. 
난 이미 태어났을 당시에 민주화가 진행되어 있었던 세대이기에..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2년 뒤에 내가 세상에 태어났었고 격동의 한국이라고 해도 어린 나에게는 
기억하지 못할 날들일 뿐이였다. 하지만 현재 높아진 국민들의 의식과 힘을 통해 우리 세대는 
우리 이전에 많은 아픔을 겪은 세대들의 시대를 조금씩 언론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
같은 나라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철저히 묻어져야했던 일들이 이제는 다시금 하나 둘 판도라의 상자를 열듯 열리고 있다.

mc스나이퍼의 이 음악과 더불어 거북이라는 힙합 그룹이 부르던 사계라는 음악에도
사계절의 아름다움 뒤에 늘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라는 가사가 나온다.
아름다운 사계절이 뚜렷한 이 나라에서 살아가면서 미싱을 돌리는 여공들은 햇빛조차 잘 들지 않는 곳에서
하루 14시간 넘게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면서 일을 했었다.
근로기준법이 명시되어 있으나 배우지못한 무지로 그네들은 자신들의 권리조차 제대로 찾지 못한채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일을  하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치스런 성추행도 견뎌냈었더랬다.
하지만 당시 어렸던 나는 그저 이 노래의 멜로디가 좋아서 특유의 잔잔한듯 슬픈 멜로디가 좋아서 
이해하기 다소 어렵지만 가사가 멋있어서 좋아하며 자주 따라 부르곤 했다.
나이가 들어 지금에서 보면 이건 슬픈 노동자들의 이야기였고 당시에는 운동권에서 불려지던 노래이기도 했다.

거북이의 사계까지는 모르겠지만 mc스나이퍼의 솔아솔아 푸르른솔아는 원곡이 안치환씨가 부른 곡으로
당시에 운동권에서 주로 불리던 노래를 mc스나이퍼가 나중에 랩을 덧붙여 부른 힙합곡이다.
뮤직비디오에서는 하얀 모자 하얀 힙합옷을 입은 mc스나이퍼가 뒤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배경으로 
특유의 재스처를 하며 시작되었다. 태극기라는 것만으로도 뭔가 물끈하고 감정이 솟아나던 그런 음악이였다.

첫시작
나의 영혼 물어다줄 평화시장 비둘기 
위로 떨어지는 투명한 소나기 

여기에 비둘기가 어쩌면 전태일 열사를 가르키는게 아닐까 투명한 소나기는 어쩌면 그와 더불어 
슬픔을 감당해내야 했던 많은 노동자들의 눈물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된게 한참 어른이 되어서였다.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역사였기에 영초언니를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그때의 사진이나 영상, 
혹은 수업시간에 배운 기록들이 아니라 바로 이 노래들이였다.
지금도 우리는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못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그런 노동자들을 돕는 이들을 만난다.
반세기가 다 되어가는 시간동안 우리는 여전히 아직도 제대로 완주하지 못한 사회속에 살고 있다.
박근혜 최순실 그리고  부정부패의 무리들... 그리고 그 뒤에 숨죽여 고통속에 피를 토하는 이들..
어쩌면 이렇게도 세월과는 다르게 우리네 세상은 변한것이 없는지를 세삼 한탄스러워하게 되기도 했다.
그 시절보다는 많이 좋아진 세상이라고는 해도 여전히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성추행은 일어나고 
무리한 업무에 시달려 자살을 하는 노동자가 생기고 내 자식만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래
자식의 공부에만 전념하는 부모들의 애끓는 마음이 절절하게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세상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그 당시와 바뀐 것이 있다는 작은 희망이 존재한다.
영초언니의 재판에서 우리딸 최고다! 라고 외치던 어머니처럼 사회의 잘못됨을 이해하고 
올바른 일은 한 이에게 지지를 보내는 국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영초언니가 살덜 시절에 시위나 데모는 맨손 맨몸으로 벽보를 부치던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군의 방패와 곤봉은 무자비하게 학생들을 갈아엎었다. 최루탄이 그네들의 눈과 입을 막았다.
그 이후에는 학생들도 시민들도 무력앞에 맞서 손피켓을 들고 대항했던 시절이 있었고 
광주민주화운동에서는 많은 이들에게 이루어진 발포에 분노한 시민들이 가족을 지키고 정의를 지키고자 총을 들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 시절에는 평화의 상징 촛불시위로 이루어졌다. 
얼마나 발전된 시위 문화인가..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유럽에서 조차도 시위를 할때는 폭력적으로 
변질되기 마련인데 우리는 일부 프락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평화롭게 촛불로 국민의 힘을 모은다. 
이번 촛불 시위때도 몇몇이 선동을 했다고는 하지만 다들 경찰에게 손대지 말라고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라며
의경들을 보호한 일화도 있지않은가

우스갯소리로 흔히 우리는 우리를 저항민족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일들이 많았다. 
일본의 침략속에서부터 우리는 우리 민족을 보호하고 지키려 갖은 애를 쓴 저항민족이다.
저항민족이면 어떠한가? 저항하며 점점 우리는 평화의 저항을 이끌고 발전시켜왔다는 것에는 거짓이 없으니까. 
나는 되려 평화 시위로 발전한 저항정신에 감사를 표한다.
같은 저항이라도 폭력만 남무하는 살벌하고 무서운 저항이 아니기에.. 

미싱기를 14시간 이상 돌려야 했던 어린 여공들이 창백한 얼굴로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시절에서
이제는 스트레스로 한계에 부닥쳐 스스로 몸을 내던지는 직장인들의 세상으로
세상은 변하듯 변하지 않은채로 흘러온다. 아직도 갈길이 멀다. 
아직도 곳곳에서는 인권이 유린되어지고 자유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말 한마디에 
정치적 압박을 당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참 언론인들이 다 죽었다고 외치지만 그 가운데 아직 살아서 발로 뛰는 이들이 남아있기에
세상이 조금은 살만함을 외면하면 안된다.
도가니 사건의 경우도 결국 그렇게 남들과는 다르지만 정의를 위해 뛰던 이들 손에 세상에 그 날개를 펼쳤지 않은가.

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법이 있음을, 
강자를 위해 뛰는 것이 아니라 약자를 위해 뛰는 자들이 더 아픔속에서도 꽃을 피우리라는 것을
믿어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영초언니의 시절보다 지금은 조금 나아진 세상. 
아마 우리 이후의 세상은 지금의 세상보다 더 나아져있음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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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철도 분실물센터 펭귄철도 분실물센터
나토리 사와코 지음, 이윤희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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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게임 시나리오작가. 
그래서 제 2장 팡파르가 들린다에 게임을 모티브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사실 게임을 많이 좋아하는 여성 게임유저다. 
끝까지(라고 해도 모든 온라인 게임은 만렙이 일정 업데이트를 두고 풀리기에 늘 끝과 시작이 공존한다) 
해본 게임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이것 저것 조금씩이라도 다 손대보는 스타일의 유저다.

책을 읽으면서 2장이 게임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일까? 불연듯 인생이 참 게임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시작할때는 30분만에 6~10렙이 거뜬히 올라가고 쉽게 쉽게 진행된다.
이것저것 아이템을 얻는것도 쉬워서 별 무리없이 진행해 가지만 만렙에 가까워질수록 레벨업은 더디어져
몇주씩, 한달씩 애태우며 플레이를 해야만 1~3 업을 하는일이 다반사다.
만렙을 올린다고 다 될까. 
결국 만렙을 찍어도 좋은 아이템을 얻어 그것을 착용하고 강화시키지 못하면 도태되어 버린다.

인생도 비슷하단 생각이 든다. 
아기일때와 유아기때는 너무나도 쉽게 시간이 지나가고 어린시절 누구나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갈망하는 시기도 온다.
어른이 되면 모든것이 다 될것 같던 시절.. 막상 어른이 되고 나면 아이로 돌아갈수도 없는데 준비도 되지 않은채로 
어른이 된것만 같아 두렵고 힘이든다.  
어릴적 내가 보던 어른들 중에는 어른같지 않은 어른이 있었다. 
에이 어른이 뭐 그래~...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정말 죄송하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등 떠밀리듯 세월에 쫒겨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어른이라고 하기엔 영글지 못한 힘든 어른이였던 그사람의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과 겹쳐지기 때문에 미안함이 먼저든다.
막상 살아보니 나도 그리 어른스럽기만한 어른은 되지 못했음을 통감할 때가 많다. 
만렙이 되어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만렙은 결국 완전하지 못하기에 실수가 잦다.

그럼에도 모든것을 갖춘 만렙보다 더 열심히 깨지고 넘어지며 아둥바둥 인생을 살아낸다. 
피딱지가 앉은 무릎을 호호 불며 쓰라림이 눈을 질끈 감아도 결국은 넘어진게 웃겨서 키득대며 웃기도 하는 인생.
소박하지만 행복하기도 하고 소박하기에 좌절스러워 울기도 하는 그런 삶.. 
게임과 인생의 다른점은 '다시 시작할수 없다'는 차이다.
다시 키우고 싶어도 다시 키울수 없기에 자신이 이미 살아온 삶을 좀더 다듬으려 사람은 아둥바둥 살아낸다. 
오늘을 살아내고 내일을 살아내고...


이 소설에 나오는 이들은 무언가를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것을 찾으려 분실센터를 찾다 또 다른것을 찾아간다.
인생에서 무언가 하나 잃어버린 적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사실 우리는 항상 가장 큰 것을 잃어버린채 살아가고 있다.
나 자신이라는 존재를 잃어버리며 살아간다. 이 세상에 나는 그저 너무 작은 점이라 지워도 표시나지 않는 존재라는 것.. 
정말 특출난 사람들이 아닌이상 우리는 우리가 이 사회에서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늘 외롭다. 남의 눈치를 본다.
사랑받고 싶은데 내가 주인공이 아니니까. 나보다 사랑스러운 이들이 너무나 많으니까 
그저 사랑받는 주인공 곁에서 박수치며 웃어주는 역활을 하면서 속으론 곪고 곪아 외롭다.


[아니야. 후쿠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었던 게 아니야.난 항상 불쌍한 나 자신을 위해서만 울어.]

[미지근한 진흙탕은 더럽지만 한번 들어가버리면 따뜻하고 기분이 좋다. 
처음엔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것처럼 여겨진다. 단지, 막상 일어서면 자신이 엄청 더럽고 약해져 있다는걸 깨닫는다.
모든 사람에게 위협을 느끼며, 이제 두번 다시 사람들앞에 서면 안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현실 사회에서 자신이 있을 자리를 잃고 만다]


소설에 나오는 이들은 자존감에 상처를 가진, 그래서 자신을 잃어버리고 유령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떤 부분에서는 마치 내 자신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찡그리기도 했다.
그럴때면 책의 글씨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의식은 흐려지며 잠시 예전의 일들을 머릿속에 가득 채우곤 했다. 
슬퍼지기도 괴로워지기도 했다. 
난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다. 남의 눈치를 많이 살핀다. 
그런 자신이 싫으면서도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이들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정없는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였다. 그편이 쉬웠다. 난 너가 상처 받을까봐 내가 싫었던 말을 하지 못하는데 왜 넌 나에게 그리 쉽게도 
모진말을 하는거야? 라며 상대를 속으로는 힐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 말들이 나에게 악의를 가지고 했던 말은 아니였음을 알고 있다. 
그저 자신이 느낀것을 이야기 하고 서로조심하자는 취지였을 것이다. 가볍게 그리고 서로를 위해.
조금씩 내 감정을 이야기 해보면 그들도 역시 그랬구나? 하며 쉬이 받아들임을 조금씩 알아갈때마다
난 너무 갇혀 살았음을 깨달아갔었다.

이 책을 읽으며 지난날의 내 모습이 소설속 주인공들과 겹쳐지며, 
한명의 사람이 하나의 삶을 살아가며 겪는 자신의 부재를 잘 보여준것도 같았다.

그런데..역시...보기엔 좋아도...펭귄을 키우는건..힘들일인거야......
소헤이와 펭귄의 모습은 귀엽지만 역시 뒷치닥거리를 해야 하는 문제는 현실.
그들의 소소한 모습이 귀여워서 한번쯤 소헤이의 일을 딱 한번만 대신해주고 싶었다.

물건을 잃어버렸습니다.
어쩌면 내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찾아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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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 산다는 것 - 조선의 리더십에서 국가경영의 답을 찾다
신병주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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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강의사를 통해 세종의 업적을 너무나도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늘 감탄한다. 지금보다 어쩌면 더 뛰어난 시대를 만들어 실현시키려 했던, 백성을 너무나도 사랑한 왕. 운명이란 참 신기하다. 왕위에 오르기에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서열이였을 왕자가 역사의 최고 존경받는 왕이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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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임현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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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2016년에 접한 2016년 출간 책 이후 1년을 꼬박 기다려서 2017년 작품집을 만났다.

2016년도 작에서는 정용준 작가를 알게되어 좋았고 2017년 작에서는 최근 알게된 최은영 작가의 그 여름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또 최은미라는 작가와 강화길 작가를 알게되고 그녀들의 글에 관심이 생긴다.

이렇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나에게는 새로운 젊은 작가를 알게 해주는 재미를 주는 참 고맙기도 한 책이다. 


문학동네라는 계간지에도 언급되었던 임현의 고두도 나쁘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여성 독자인 나의 시선을 더 끌어당긴 것은 같은 관심사가 녹아든'눈으로 만든 사람' 과 '호수 - 다른사람'이였다.

이번 2017년 작에는 꽤나 내 삶의 일화들이 오버롭되는 작품들이 많아서 더욱 소중한 책이 되었다.


눈으로 만든 사람에서는 어릴적 나이차가 적은 삼촌에게 성적으로 상처를 입은 강윤희가 나온다.

요즘 세상이 흉흉하다고, 어린 아동을 대상으로 한 파렴치한 성폭행이 많다고 떠들지만

사실 아동을 상대로한 성폭행 성추행은 그 역사가 길다고 나는 확신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한 일화이지만 초등학교 3~4학년 당시, 학교 근처에 있던 엄마의 가게에서 하교 후의 하루를 보내고 가끔 혼자서 버스를 타고 30분 거리의 집을 가야했었다.

출발지가 종점이였기에 버스에는 나혼자였던 경우도 비일비재했지만 일이 바쁘던 엄마는 당시 어쩔수 없이 나를 홀로 버스에 태워 보내야했고 나 또한 그게 당연한줄로만 알았다.

그러다 버스기사에서 성추행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흔히 말해 바바리맨이라고 하던가? 가까이 와서 아저씨좀 도와달라던 기사의 말에 다가갔을때 자신의 것을 내어놓고 있었다.

어릴 당시엔 속으로 이 아저씨 왜 노팬티지 웃긴다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찔한 일이 아닐수 없다.

친구들과도 이야기를 해보면 여성들의 삶에서 성추행 안 겪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지만 아직도 일부에서만 일어나는 일로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은 여성과 아이들이 성추행을 겪고 노출된다 다만 아동들의 경우는 그것이 성추행인지 인지하는데 시간이 걸리거나 가해자가 아이에게 비밀이라고 입막음을 했거나 아이 자체가 이것이 좋지않은 일이란것을 알고 말을 하지 않기에 통계가 적은 수치로 나올 뿐이다.


읽으면서 어릴적 일화가 떠오르기도 하고 많은 강윤희와 같이 고통 속에 있는 동성의 여인들이 생각나 안쓰럽기도했다.

자신을 성적 학대한 그 어린 삼촌의 아들은 어린 나이에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산다. 마치 그 삼촌의 죄를 대신 뒤짚어 쓰기라도 했다는 듯이.. 하지만 그건 강윤희가 바란 것도 기쁜일도 아니다.

강윤희는 자신의 딸과 노는 삼촌의 아들 강민서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다. 자신의 딸과 강민서 단둘이 둘수 없다고, 마치 그 옛날 삼촌과 단둘이 남았던 자신을 투영해 보듯이 말이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그 상처쪽으로 기울수 밖에 없다. 아프고 쓰라리니까. 그래서 더더욱 신경쓰이니까. 아프고 아파서 푹 꼬구라지는 것이 피해자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아픔, 가해자를 계속 마주해야 한다는 아픔, 그 가해자와 가족과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다는 아픔, 가해자의 가족이 그의 죄를 짊어지듯 아픈것에 가해자가 고통스러워해도 맘편히 통쾌해할수 없는 슬픔

강윤희는 그렇게 홀로 호수 중앙에 떠있는 섬처럼 쓸쓸해보인다.



호수-다른사람에서는 헤어진 전 애인에게 폭행을 당한 진영과 그녀의 친구 민영이 나온다.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데이트 폭력 또는 사회적인 긴장감들이 다루어지는 만큼 읽는 내내 등골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특히 뒤를 따라오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연락처를 묻는 남성의 심리폭력. 

예전에 어느 라디오 방송에서 모 연예인이 밤길 골목길에서 혼자 지나가는 여성의 뒤를 따라가는 놀이를 한적이 있다고 말해 뭇매를 맞던 일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관심이 있어서 혹여는 재미가 있어서 그렇게 일어난 작은 행동이 여성에게는 꽤나 큰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성의 옷차림 혹여는 늦은 귀가를 탓하는 일이 빈번하고 남자역시 피해가 많다며 여자 남자 편이 갈려 싸우기에 급급하다.

데이트 폭력을 당해도 일부에선 왜 남성을 따라갔느냐 왜 만났느냐 라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폭력을 행사할 계획인 사람이라면 무슨 짓을 해서든 상대를 만나려 온갖 말들을 늘어놓기 마련이다. 마지막이라거나 가족을 해코지 하겠다던가 말이다.

피해자이지만 오롯이 피해자로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들의 상황을 잘 보여준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런 세상에 살기에 과민하게 자신을 보호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여성을 표현한것도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어쩌면 나 또한 그런 과민한 여성 중 한명인지도 모른다. 

남자를 두려워하는 여자, 여자를 혐오하는 남자..어쩌다 우린 이런 세상이 되어버렸을까...


가장 기대를 하고 있었던 최은영의 그 여름은 레즈비언을 소재로 다루어 어릴적 학창시절 동성을 좋아한다고 고백한 동성의 친구가 떠올라 한참을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이번 책은 전체적으로 여성의 이야기가 많아서인지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리고 어쩐지 쓸쓸함이 많이 묻어난 단편들의 묶음이였다.


가을과 겨울 그 사이 어딘가의 온도와 닮은 소설이란 생각이 든다.

꽃내음 실은 바람이 싱그러운 이 봄에 어쩐지 쓸쓸한 호숫가를 걸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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