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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아름다운 서울 청계천 어느 공장
허리하나 제대로 펴기 힘든 먼지로 찬 닭장
같은 곳에서 바쁘게 일하며 사는 아이들
재봉틀에 손가락 찔려 울고있는 아이는
배우지 못해 배고픔을 참으며 졸린 눈 비벼
밖이 보이지 않는 숨막히는 공장에 갇혀
이틀 밤을 꼬박 세워 밤새 일하면 가슴에 쌓인
먼지로 인해 목에선 검은 피가
올라와 여길 봐 먼지의 참 맛을 아는 아이들
피를 토해 손과 옷이 내 검은 피에 물 들 때
손에 묻은 옷깃에 묻은 현실의 모든 피를
씻어낼 곧 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
노동자만을 위한 노동법은 사라진지 오래
먼지를 먹고 폐병에 들어 비참히 쫓겨날 때
여전히 부패한 이들은 술 마시며
숨통 조이는 닭장에서 버는 한 달 봉급을
여자의 가슴에 꽂아주겠지
나와 비슷한 동년배의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노래 혹은 가사일 이 노래는
mc스나이퍼의 솔아솔아 푸르른솔아 라는 곡으로 영초언니가 살아내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노래가 나올 당시에는 어리기도 했고 사회운동이란 것을 잘 몰랐다.
난 이미 태어났을 당시에 민주화가 진행되어 있었던 세대이기에..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고 2년 뒤에 내가 세상에 태어났었고 격동의 한국이라고 해도 어린 나에게는
기억하지 못할 날들일 뿐이였다. 하지만 현재 높아진 국민들의 의식과 힘을 통해 우리 세대는
우리 이전에 많은 아픔을 겪은 세대들의 시대를 조금씩 언론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
같은 나라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철저히 묻어져야했던 일들이 이제는 다시금 하나 둘 판도라의 상자를 열듯 열리고 있다.
mc스나이퍼의 이 음악과 더불어 거북이라는 힙합 그룹이 부르던 사계라는 음악에도
사계절의 아름다움 뒤에 늘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라는 가사가 나온다.
아름다운 사계절이 뚜렷한 이 나라에서 살아가면서 미싱을 돌리는 여공들은 햇빛조차 잘 들지 않는 곳에서
하루 14시간 넘게 화장실도 제대로 가지 못하면서 일을 했었다.
근로기준법이 명시되어 있으나 배우지못한 무지로 그네들은 자신들의 권리조차 제대로 찾지 못한채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일을 하며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치스런 성추행도 견뎌냈었더랬다.
하지만 당시 어렸던 나는 그저 이 노래의 멜로디가 좋아서 특유의 잔잔한듯 슬픈 멜로디가 좋아서
이해하기 다소 어렵지만 가사가 멋있어서 좋아하며 자주 따라 부르곤 했다.
나이가 들어 지금에서 보면 이건 슬픈 노동자들의 이야기였고 당시에는 운동권에서 불려지던 노래이기도 했다.
거북이의 사계까지는 모르겠지만 mc스나이퍼의 솔아솔아 푸르른솔아는 원곡이 안치환씨가 부른 곡으로
당시에 운동권에서 주로 불리던 노래를 mc스나이퍼가 나중에 랩을 덧붙여 부른 힙합곡이다.
뮤직비디오에서는 하얀 모자 하얀 힙합옷을 입은 mc스나이퍼가 뒤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배경으로
특유의 재스처를 하며 시작되었다. 태극기라는 것만으로도 뭔가 물끈하고 감정이 솟아나던 그런 음악이였다.
첫시작
나의 영혼 물어다줄 평화시장 비둘기
위로 떨어지는 투명한 소나기
여기에 비둘기가 어쩌면 전태일 열사를 가르키는게 아닐까 투명한 소나기는 어쩌면 그와 더불어
슬픔을 감당해내야 했던 많은 노동자들의 눈물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된게 한참 어른이 되어서였다.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역사였기에 영초언니를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는 그때의 사진이나 영상,
혹은 수업시간에 배운 기록들이 아니라 바로 이 노래들이였다.
지금도 우리는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못하는 노동자들, 그리고 그런 노동자들을 돕는 이들을 만난다.
반세기가 다 되어가는 시간동안 우리는 여전히 아직도 제대로 완주하지 못한 사회속에 살고 있다.
박근혜 최순실 그리고 부정부패의 무리들... 그리고 그 뒤에 숨죽여 고통속에 피를 토하는 이들..
어쩌면 이렇게도 세월과는 다르게 우리네 세상은 변한것이 없는지를 세삼 한탄스러워하게 되기도 했다.
그 시절보다는 많이 좋아진 세상이라고는 해도 여전히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성추행은 일어나고
무리한 업무에 시달려 자살을 하는 노동자가 생기고 내 자식만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래
자식의 공부에만 전념하는 부모들의 애끓는 마음이 절절하게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세상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그 당시와 바뀐 것이 있다는 작은 희망이 존재한다.
영초언니의 재판에서 우리딸 최고다! 라고 외치던 어머니처럼 사회의 잘못됨을 이해하고
올바른 일은 한 이에게 지지를 보내는 국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영초언니가 살덜 시절에 시위나 데모는 맨손 맨몸으로 벽보를 부치던 것이 전부였다.
그럼에도 군의 방패와 곤봉은 무자비하게 학생들을 갈아엎었다. 최루탄이 그네들의 눈과 입을 막았다.
그 이후에는 학생들도 시민들도 무력앞에 맞서 손피켓을 들고 대항했던 시절이 있었고
광주민주화운동에서는 많은 이들에게 이루어진 발포에 분노한 시민들이 가족을 지키고 정의를 지키고자 총을 들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 시절에는 평화의 상징 촛불시위로 이루어졌다.
얼마나 발전된 시위 문화인가..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이라 불리는 유럽에서 조차도 시위를 할때는 폭력적으로
변질되기 마련인데 우리는 일부 프락치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평화롭게 촛불로 국민의 힘을 모은다.
이번 촛불 시위때도 몇몇이 선동을 했다고는 하지만 다들 경찰에게 손대지 말라고 그들도 누군가의 아들이라며
의경들을 보호한 일화도 있지않은가
우스갯소리로 흔히 우리는 우리를 저항민족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일들이 많았다.
일본의 침략속에서부터 우리는 우리 민족을 보호하고 지키려 갖은 애를 쓴 저항민족이다.
저항민족이면 어떠한가? 저항하며 점점 우리는 평화의 저항을 이끌고 발전시켜왔다는 것에는 거짓이 없으니까.
나는 되려 평화 시위로 발전한 저항정신에 감사를 표한다.
같은 저항이라도 폭력만 남무하는 살벌하고 무서운 저항이 아니기에..
미싱기를 14시간 이상 돌려야 했던 어린 여공들이 창백한 얼굴로 피를 토하며 죽어가던 시절에서
이제는 스트레스로 한계에 부닥쳐 스스로 몸을 내던지는 직장인들의 세상으로
세상은 변하듯 변하지 않은채로 흘러온다. 아직도 갈길이 멀다.
아직도 곳곳에서는 인권이 유린되어지고 자유민주공화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말 한마디에
정치적 압박을 당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참 언론인들이 다 죽었다고 외치지만 그 가운데 아직 살아서 발로 뛰는 이들이 남아있기에
세상이 조금은 살만함을 외면하면 안된다.
도가니 사건의 경우도 결국 그렇게 남들과는 다르지만 정의를 위해 뛰던 이들 손에 세상에 그 날개를 펼쳤지 않은가.
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법이 있음을,
강자를 위해 뛰는 것이 아니라 약자를 위해 뛰는 자들이 더 아픔속에서도 꽃을 피우리라는 것을
믿어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영초언니의 시절보다 지금은 조금 나아진 세상.
아마 우리 이후의 세상은 지금의 세상보다 더 나아져있음을..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