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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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고전문학이 다 그렇듯이 학창시절 꽤 책을 읽는다고 읽었을 지라도, 지금에 와서 되짚어 보면 "그책 내용이 뭐였더라."하고 갸웃거리는 책들이 많습니다. 민음사 책들이 대부분 그런데요. 중학교시절 이런 고전들을 읽느라고 문고판 가지고 다니면서 읽긴 읽었지만 그 당시 이해력으로 고전문학작가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파악하지 못한 탓이겠지요. 저한테 '이방인'도 그랬습니다. "그래, 이책 읽엇을때 나도 이방인 처럼 느꼈었지." 하는 감상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래서 고전은 여러번 읽어야 되는 가 봅니다. 이번에 읽고서야 " 카뮈의 이방인" 이 왜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지 이해가 되었어요. 장 그르니에의 "섬"에서 그르니에의 제자 였던 카뮈의 소개말이 없었다면 저는 "섬"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 그르니에의 제자였기 때문에 카뮈는 스승의 책을 가장 잘 평가 할수 있었을 겁니다. 아프리카 알제리의 알제는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 였지요. 알제 대학에서 스승과 제자로 만난 그르니에는 카뮈의 문학적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카뮈도 당시 알제에 살면서 이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답니다.

 

 "이방인"은 뫼르소하는 젊은이가 알제에서 인생을 가장 "시니컬"하게 살다간 이야기입니다. 평소 직장에서도, 자신의 꿈에서도 무관심하고, 어떤 열정도 없이 그럭저럭 살아가다가 자신의 앞에 자신을 위협하던 아랍인을 무심코 권총으로 쏘아 죽이고, 또 사형선고를 받고 죽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뫼르소하는 인물은 그 20세기 초를 살아가는 인물이었지만, 지금의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 젊은이와 무척 많이 닮아 있습니다. 귀차니즘에 빠져있고, 어떤 문제에도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일반 젊은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런 뫼르소가 아랍인을 죽이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지금도 편안하게 살아갈수 있었을 텐데, 어쩌다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뫼르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소설 첫대목에서도 "죽음"의 첫번째 형태인 자연사로 죽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참석하게 됩니다. 그 때 뫼르소는 다른 아들 처럼 울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마지막 얼굴도 보지 않겠다고 하고, 무덤덤히 어머니 시체 옆에서 커피도 마시게 됩니다. 그런 모습이 살인을 하게 된 뫼르소를 냉혈한으로 인식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또, 어머니 장례식 다음날 여자 마리를 만나 해수욕을 하고, 마리와 자게 됩니다. 그런 행동이 더욱 뫼르소를 살인자와 연관시키고 감정도 피눈물도 없는 사람으로 몰아 가게 되지요.

 

뫼르소는 살인 동기를 위해 자신을 변호 하지도 않았고, 기독교를 강요하여 회개하기를 바라던 판사의 요구에 호응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뫼르소는 자신속에 없는 믿음을 거짓으로 내어 보이기도 싫었고, 우연한 살인도 아무런 목적의식 없이 이루어진 만큼 거짓과 과장을 보이기가 싫었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정말 바보같이 보이는 그의 행동 때문에 그는 사형선고를 받게됩니다. 약간의 "헐리웃 액션"만 보여서도 그는 정당방위로 풀려 날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고, 사형을 담담히 받아 들입니다.

 

이방인을 잘 살펴보면 카뮈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자연사"죽음, 그리고 "살인" , 그리고 "사형" 라는 세가지 죽음의 형태를 통해 카뮈는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보고 무덤덤하게 ,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했고, 어머니의 나이도 제대로 모르는 "애매함"을 드러내던 뫼르소가 살인후 재판을 받으면서 약간의 동요의 빛을 보입니다. 육체적, 심리적 피로를 느낀 그가 심약한 마음의 형태를 보이지만, 곧 그는 "우리 인간은 본래 다 사형수다. 언젠가는 다 죽을 사형수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되어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무관심하게 받아 들이게 됩니다. 그는 삶에서 과장으로 자신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거짓으로 자신의 신앙을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시기는 다르더라도 결국은 죽을 죽음에 대해서도 초연해 질수 있었습니다. 그는 진정 거짓된 인생을 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카뮈는 이런 뫼르소의 행동과 죽음을 통해 우리는 죽음이라는 마지막 종착역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인식시켜 주었습니다. 어둠침침한 죽음이라는 뒷 배경이 있기에 죽음과 대비되는 "삶"은 더욱 빛이 나고 두드러져 보일수 있는 대비효과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밝게 빛나는 삶속에서 우리가 행복을 느낄수 있는 곳도 명암의 대비속에서 묵묵히 배경으로 깔려 있는 '죽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죽음을 두려워 하기 이전에 우리는 그 앞에 펼쳐진 삶에의 행복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135~136쪽)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고뇌를 씻어 주고 희망을 가시게 해주었다는 듯,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의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그렇게도 나와 닮아서 마침내는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완성되도록, 내가 덜 외롭게 느껴지도록,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다.

 

 

이 소설의 결말은 비극적이지만 뫼르소의 독백은 결코 비극적이지 않습니다. 그속에서 그는 행복을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은 다름아닌 "삶의 찬가이자. 행복의 찬가"라고 할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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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편지 2 - 개정판, 후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12살부터 읽는 책과함께 역사편지
박은봉 지음, 류동필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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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꾸준한 책읽기가 중요하겠지요. 딸아이와도 될수있으면 일주일에 매일은 아니더라도 3-4일정도는 한국사 편지를 책장에서 꺼내들고 같이 읽어 나가면서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했습니다. 14개의 제목으로 chapter가 나눠져 있는데, 하루에 한두개 chapter를 같이 읽으면서 진도를 나갔습니다. 2권은 후삼국 통일 과정과 고려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면을 아이가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중심의 내용으로 엄마가 들려주고 있는 형식입니다.

 

역사는 사관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요. 주로 역사가 패자가 아니라 승자위주로 기술되다 보니 패자는 아무리 좋은 사람이었더라도 승자의 정당성을 위해 나쁘게 기술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박은봉선생도 후삼국 통일 과정중에 후고구려의 궁예에 대해서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합니다. 아이들에게 무조건 왕건은 너그럽고 포용력있는 사람이고, 궁예는 미치광이에 폭군이었다 라고만 알게 하고 쉽지 않은 것이지요. 궁예는 ,어느 나라 든 전성기의 왕들이 해오던 중앙집권체제 강화, 즉 왕권 강화를 하고 싶었던 왕 중의 한사람인 것이지요. 자신의 뜻에 반하는 호족은 엄하게 대하거나 가차없이 죽이고, 부석사에 걸려있던 신라 왕의 초상을 칼로 베어 '반신라 정책'을 선포하면서 신라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신라의 골품제를 없애고 여러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려는 등의 개혁정치도 했다고 합니다. 궁예는 왕건을 지지하는 세력에 의해 쫓겨나긴 했지만 백성의 손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죽은 뒤에는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궁예의 이런 좋은 면도 있었건만 왕건이라는 승자가 기록하면서 사관이 달라질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고려 사회는 조선후기 사회와 많이 다른점이 있었습니다. 남녀 평등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어서 부모가 상속을 할때도 딸과 아들에게 똑같은 비율로 하고, 제사도 아들딸 구별없이 돌아가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딸이 결혼해서 사위와 같이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호적에 기록 될때도 나이 순으로 남녀 구별없이 적었다고 합니다. 또 천민의 신분에서 큰 공을 세워 장군의 지위까지 오른 경우도 많았던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보다 신분의 이동에 훨씬 포용력있는 사회였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요즘 드라마로 하는 '무신'을 보면 노비 출신에서 장군으로 승진하는 예를 직접 확인할수 있습니다.

 

사관의 다른 면으로 바라본 사람이 한사람 더 있는데, 목화씨를 원나라로 부터 가져온 문익점입니다. 문익점은 목화씨를 붓두껍에 몰래 넣어 가지고 와 우리나라에 퍼뜨렸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년동안 강남지방에서 귀양살이를 했다고 하는데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랍니다.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못 가져 가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문익점이 살던 시대는 공민왕이 지배하던 시기로 공민왕의 개혁 정치 때문에 원나라가 이를 싫어 하여 충숙왕의 동생 덕흥군으로 왕을 삼고자 했답니다. 그래서 공민왕과 덕흥군 두사람의 싸움이 시작될수 밖에 없었고, 당시 고려 학자들은 두 사람의 어느 편에 가담을 해야만 했어요. 문익점은 덕흥군 편을 들었고, 승리는 공민왕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문익점은 처벌을 각오하고 우리나라로 들어왔고, 목화씨를 가져와 재배에 성공하게 됩니다. 목화의 보급으로 의생활이 많이 안정되자 고려 사람들은 문익점에 대한 평가가 달라졋다고 합니다. <태조실록>에서도 이런 문익점의 치적을 높이 사 그전의 덕흥군 편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좋게 평가해 덕흥군 편으로 오해를 받아 귀양살이를 했다는 것으로 기록되기에 이런 것이랍니다. 역사의 기록이 참 아이러니하지요. 역사의 기록은 그래서 여러 시각으로 바라 볼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영웅으로 평가받던 위인들도 사생활이 실제 어떠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일겁니다. 그가 아무리 어릴적 깡패였거나 무지렁뱅이엿어도 실제를 조작할수도 있는 것이 역사라고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아니 실제로 역사를 왜곡하여 자신의 나라에 유리하게 기록하고 평가하는 일본과 중국만 보아도 알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도 우리나라에 유리하게 왜곡되어 기록하거나 전하는 부분이 사실 상당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역사는 하나의 고정된 시각이 아니라 다각적인 면에서 평가하고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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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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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니는 집,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입니다. 제가 한때 책을 읽기 위한 동기를 부여한 책 <책만보는 바보:안소영><책에 미친 청춘:김애리><지식인의 서재: 한정원> 등을 읽으면서 "세상에는 읽고 싶은 책이 정말 많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행복감을 아이들이 느낄수 있는 좋은 동화가 있습니다. <책과 노니는 집>.... 한문으로 하면 서유당(書遊堂)입니다. 현실에서 책과 노니는 집을 상상해보면 어떻습니까? 일단 저희 집에 책이 워낙 많은데, 제대로 청소를 잘하지 않으면 먼지가 워낙 많아집니다. 그리고 책이 많은 집은 인테리어를 이쁘게 할수가 없습니다. 책을 꽂아 두는 책장에 온 거실과 방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미적감각과는 거리가 멀게 살아야 됩니다. 실제로 저는 미적감각과는 무관한 사람이지만요. 그리고 책읽기라는 일은 하나의 노동으로 여겨질수도 있습니다. 독서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고개 숙여 글씨를 쳐다 보아야 하기 때문에 눈과 목과 어깨가, 그리고 허리가 아파오는 경험을 많이 할수 있습니다. 이럴수록 운동을 많이 해야 되지만 한권이라도 더 읽고 싶은 욕심에 운동은 뒷전이기 마련이지요.

 

동화책 한권 소개하는데 서설이 길었습니다. 하여간 이책은 제9회 문학동네 어린문학상 대상 수상작입니다. 영, 정조 시대를 즈음하여 천주학이 우리나라에 도래되고 , 이런 천주교를 박해하는 박해사건이 일어나섰지요. 작가가 정확한 역사적 시대적 배경을 표면으로 내세우지는 않았습니다. 필사쟁이였던 아버지가 천주교 박해 사건을 즈음하여 고문 여독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약계 책방 주인인 최서쾌의 양자로 들어간 <문장>이라는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장이는 아버지를 여의고 책방에서 책 심부름을 하면서 홍교리라는 인자한 학자를 알게 되고, 그가 천주실의를 읽는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도리원이라는 기생집에서 천주교인들이 모인다는 사실도 은연중에 알게 되는 등 장이의 주변은 천주학과 뗄수 없었습니다. 허궁재비라는 깡패에게 돈을 뜯기게 되어 고생하는 것을 도리원의 낙심이가 도와주어 그 위기에서 모면하기도 합니다. 여러 우여곡적을 겪으면서 장이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필사쟁이로 나서게 됩니다. 책 심부름하면서 알게 된 홍교리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78쪽) "책은 읽는 재미도 좋지만, 모아두고 아껴 두는 재미도 그만이다. 재미있다. 유익하다 주변에서 권해 주는 책을 한 권, 두 권 사모아서 서가에 꽂아 놓으면 드나들 때마다 그 책들이 안부라도 건네는 양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지. 어느 책을 먼저 읽을까 고민하는 것도 설레고, 이 책을 읽으면서도 저 책이 궁금해 자꾸 마음이 그리 가는 것도 난 좋다. 다람쥐가 겨우내 먹을 도토리를 가을부터 준비하듯 나도 책을 차곡차곡 모아 놓으면 당장 다 읽을수는 없어도 겨울 양식이라도 마련해 놓은 양 뿌듯하고 행복하다."

 

책이 좋아 책을 사놓아 두기 급하고, 이 책 저책 뒤적거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애서가들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 표면에 들어나는 사실로는 천주학 박해로 인해 어렵게 필사쟁이가 된 소년이 겪는 성장동화에 가깝지만, 그 이면에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이야기책을 좋아하는 도리원의 <미적아씨>, 여러 책을 구해 애서가들에게 이책 저책 권하는 것을 업으로 둔 책방주인 <최서쾌>, 천주실의 든 뭐든 책이라면 다 좋아 사서 모으고 서고정리를 하면서 기쁨을 누리던 <홍교리>, 요즘의 동화구연가와 비슷한 이야기책을 전문적으로 읽어 주던 사람 전기수였던 <김호수> 등..... 책이 좋아 읽기를 좋아하고, 이야기를 좋아해 그 매력에 빠져든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이들에게 우리 나라 조선후기 19세기의 모습을 교훈주의를 뛰어넘어 살아있는 역사동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주인공 장이의 꿈이 결국은 아버지가 살아계실적 꿈꾸었던 자신만의 책방을 내는 꿈이었습니다. 그 꿈이 <서유당: 책과 노니는 집>이라는 현판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진정 책과 노닐면서 그 기쁨을 아이들에게 선사해 주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습니다. 5학년 국어책에도 수록 될 정도로 아이들의 정서함양에도 유익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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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서양미술사 (개정판) 청소년을 위한 역사 교양 13
도병훈 지음 / 두리미디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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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세분하여 공부하자면 많은 영역이 있지요. 역사적 사실만을 대륙별, 나라별로 기록해 놓은 역사가 있는가하면, 예술 분야의 역사도 있기 마련이지요. 미술, 음악, 철학, 의학,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통해 알아 두어야 할 사람들은 한분야에 몰입하여 연구하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전 그냥 일반인으로서 미술에 대한 역사를 알아 보기 위해 이책을 선택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인간들은 의식주가 해결되면 다양한 문화에 관심을 가지기 마련인 사회적 동물이잖아요. 공연, 전시등을 관람 하러 다니다 보면 그것에 대한 유래, 역사, 이론을 알지 못하면 그냥 눈으로만 보고 말아 버려 더이상 깊이를 알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기가 일수 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예술의 전당과 미술관을 위주로 다양한 전시회가 진행 되고 있는 만큼 이런 미술사적 지식을 습득할 필요가 다분하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술사를 공부하려고 하면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닙니다. 다양한 화가와 다양한 시대, 다양한 미술 기법과 그 용어들이 워낙 생소하여 섣불리 접근하기가 힘든 경우도 많습니다. 두리미디어 출판사에서 청소년을 위한 역사교양시리즈가 출간되었는데, 그 중 <청소년을 위한 서양미술사>는 고대 그리스 미술부터 20세기 현대 미술까지의 미술사에 대해 상세히 논하고 있습니다. 미술도 다 그 시대의 반영이므로 그 시대적 배경을 알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미술사에 처음 접근하는 분들은 이 책도 그리 녹록하지 않는 책이 될수도 있습니다. 19세기 초까지 인상파들의 작품까지는 우리가 많이 접해 본바라 어느정도 접근이 용이합니다. 하지만 20세기로 넘어가는 현대미술시대가 되면 반 예술 운동과 그 운동의 저변에 깔린 철학적인 화가의 사상을 알지 못하면 이해 불가능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추상미술로 접어 들면서 사진과 같은 사실주의 표현위주의 미술과는 다른 사조라 추상미술의 그 이념을 상세히 알아 낼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 미술같이 보이던 <피카소>그림도 피카소같은 대가가 그린 그림이었고, 그속에 담긴 사상과 철학이 있었기에 대작으로 평가되어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일반인이 잭슨 폴록 같은 <뿌리기 기법>으로 화폭에 어떤 그림을 담고자 했다면 그 그림의 값어치가 매겨 질리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더욱 현대 추상미술은 어렵게 평가되고 있는 것입니다.

 

서구문명의 기원은 아무래도 4대문명과 그리스로마를 기원으로 삼고 있지요. 그 중에서도 그리스의 미노아 문명 양식에서 로마시대의 비잔틴 양식, 그리고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을 거쳐 르네상스 양식, 바로코,로코코양식, 매너리즘양식까지.. 그리고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신인상주의로, 변화되면서 양식에서 <이즘>으로 사조가 변화되어 집니다. 고흐, 세잔, 고갱으로 대표되는 후기 인상주의의 영향으로 야수주의 같은 표현주의가, 피카소를 중심으로 한 입체주의,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으로 대표되는 추상주의, 전쟁의 허무가 초래한 다다이즘, 그리고 현실세계를 벗어나는 초현실주의, 추상표현주의, 앵포르멜 미술, 네오다다아 팝아트, 누보레알리즘, 개념미술, 미니멀아트, 미디어 테크놀로지 예술까지 진화와 진화를 거듭해 옵니다.이런 사조들의 화가들이 재 평가받고 각광받는 기준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예전 시대의 양식을 답습하고 순종하여 그리던 화가들은 이름도 그 작품도 서서히 사라져 버리게 되는데 반해, 그 세대의 양식을 벗어나 새로운 모색을 시도한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기법을 선보인 화가들의 작품이 역사에 길이 길이 평가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들은 그 시대에는 졸작이라고 평가받고, 별 관심을 받지 못하기가 일쑤입니다. 하지만 몇십년 후에 재평가 되어 그 화가들의 영향으로 새로운 사조들이 등장하는 예가 정말 많다는 것입니다.

 

르네상스 미술 이후 낭만주의로 대표되는 화가 <들라크루아>의 작품 <민중을 이끄는 여신>입니다.  이 그림의 부제는 <1830년 7월 28일>로 왕정복고에 반대하는 7월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부르봉 왕가를 무너뜨리고 루이 필립을 국왕으로 삼았던 역사적 사실을 깔고 있습니다. 들라크루아는 이 그림을 통해 민주주의를 쟁취해 나가는 프랑스의 역사적 현실에 맞서 애국심을 고취하고자 하는 취지가 담겨 있습니다. 전면에 나타나 있는 여인은 들라크루아의 고양된 애국심이라는 감정을 극적으로 대변하는 공상적인 여인의 모습입니다. 낭만주의의 주요한 요소로서 비현실의 진리를 이 여인을 통해 대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주의를 이끌어 간 구스타브 쿠르베의 대표작인 <화가의 작업실>입니다. 바로크, 로코코 양식이후 상업의 발달로 새로운 계급인 시민 계급의 성장과 함께 등장한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대립이 나타나 그 시대의 미술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두사조 즉, 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시대착오적 성향과 비현실적인 경향은 제 3의 사조인 사실주의에 의해 사회의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출현하게 됩니다. 그 대표주자가 쿠르베입니다.

 

<화가의 작업실>은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의의 심사위원들로부터 출품 거부를 당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지금은 주목받고 잇는 쿠르베의 작품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폭이 6미터에 가까운 대작으로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사람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왼쪽에는 절망적인 삶에 찌든 서민들과 주검을 배치하고, 오른쪽에는 자신에게 영향을 주거나 지지해주고 있는 지식인들을 그렸습니다. 화면의 중앙에 나체의 모델을 등 뒤로 한 채 커다란 캐버스 앞 의자에 앉아 풍경을 그리는 쿠르베 자신과 어린아이, 그리고 개 한마리가 등장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상황를 드러내는 알레고리입니다. 알레고리란 눈으로 볼수 있는 이미지로 존재할수 없는 것을 눈으로 볼수 있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쿠르베는 이런 비현실적인 알레고리화를 통해 <사회>를 그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먼제 캔버스 바로 곁에 있는 성 세바스탄의 석고 나체상 앞에서 발을 뻗고 앉아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여자는 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바로 그 뒤 해골이 얹혀있는 신문은 나폴레옹의 어용신문으로 해석됩니다. 그 뒤에서 옷감을 팔고 있는 유대인 상인은 상업활동을, 그 상대를 하고 있는 남자는 시민계급으로 보입니다. 그들 주위에 무덤을 파고 있는 이눕, 창부, 어릿광대, 농민, 실업자 등은 빈민을 뜻하고 있습니다. 왼편 제일 끝 쪽에 있는 유대교 박사와 그 안쪽의 카톨릭 사제는 종교계를, 앞쪽에 개를 데리고 있는 사냥꾼은 '여가'을, 앞바닥에 떨어져 있는 챙이 넓은 스페인 모자와 기타, 단검은 낭만주의 예술의 쇠퇴로 해석됩니다. 한편 오른쪽에는 쿠르베의 예술을 이해하고 지원하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조와 여러 화가들의 작품을 다 한꺼번에 이해해 나가기는 힘든 일이니 차근차근 읽어 나가는게 중요합니다. 저는 이책을 읽기 전에 어린이용 <한국 헤밍웨이 전집>시리즈인 교과서에 나오는 미술작품의 동화책을 가지고 정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린이용이지만 완전한 미술사 초보자들에게는 유용한 동화책이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서양미술사>를 어느정도 습득했다면 EH 곰부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어야 합니다. 700쪽에 달하는 두꺼운 미술사책이라 한번 손을 대기가 어렵겠지만, 꼭 읽어야 할 인문도서라고 생각됩니다. 미술작품과 함께 우리의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할 지식을 한번 가져보도록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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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이야기 3 - 숙종부터 순종까지 박영규 선생님의 우리 역사 깊이 읽기 13
박영규 지음, 최상규 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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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이야기의 마지막 책입니다. 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조선 27대 왕의 이야기에 대하여 조선왕조 실록을 토대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쉽게 접근할수 있게 쓰여진 책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처럼 세밀한 부분의 역사까지 다 나열하진 않았지만, 굵직굵직한 사건 위주로 하여 , 사극처럼 재밌게 되어 있네요.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후기의 역사가 진행이 되지요.

 

선조 때부터 붕당의 조심이 보여 숙종 때에 이르러서는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나누어 지는 국면을 맞이 하게됩니다. 노론은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늙은 신하들이 형성한 파벌을 말하며 소론은 윤증을 중심으로 하여 젊은 신하들이 형성한 파벌입니다.숙종 때는 3번의 환국을 경험하는데, 미미하게 남아 있던 남인의 세력이 '경신환국'을 깃점으로 대부분 제거되고, 서인이 주도권을 잡게 됩니다. 숙종은 정치 뿐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도 크게 세명으로 볼수 있는데, 인현왕후와 장희빈, 우리가 동이로 알고 있는 숙빈최씨가 있습니다. 숙종이 좀 낭만적인 왕이었다고 하는 좋은 평가도 있지만 변덕이 심한 왕이라는 비판도 가능하겠지요. 기사환국을 깃점으로 장희빈이 왕비로 책봉되고, 이를 반대하던 서인 세력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됩니다. 다시 남인이 등용되는 가 싶다가도 갑술환국으로 다시 서인의 세상이 됩니다. 갑술환국은 인현왕후 복위 운동을 두고 장희빈에게 사랑이 식은 숙종이 인현왕후의 복위를 반대하던 남인 세력을 제거하고, 다시 서인 세력을 등용하게 되는 것이지요. 갑술환국후 남인은 대부분 몰락하고, 서인 세력이 집권하게 되지만 이미 노론과 소론으로 나누어져 잇던 서인세력이 장희빈을 사사하자는 노론쪽과 희빈을 내쫓지 말자고 장희빈을 두둔하던 소론쪽의 주장이 엇갈리게 됩니다. 결국 숙종이 장희빈을 사사하게 되면서 노론의 편을 들어 주게 되지요.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숙종시대입니다.

 

이후 허약한 경종은 일찍 죽게 되고 , 조선 왕 중 가장 장수를 한 영조가 즉위하던 때도 파란만장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숙빈최씨의 아들이었던 영조가 노론세력을 등에 업고 왕위에 오른 만큼 이를 반대하던 소론과 남인들의 반란인 이인좌의 난도 진압을 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아들인 사도 세자를 죽여야 했고, 탕평책을 내세워 붕당에 관계없이 인물을 등용하고자 했지만 명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후 세손인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도 화완옹주와 정후겸 세력에 의해 목숨의 위협을 받아야 했었지요. 홍국영의 세도정치를 기반삼아 '규장각'의 인재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과학적이고, 혁신적인 정치를 펼치고자 했던 정조였습니다. 하지만 정조의 빠른 죽음으로 조선후기의 정국은 긴박하게만 돌아가고, 외척에 의한 세도정치가 판치는 세상이 되어 버립니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정조가 10년만 더 살았더라면"하는 가정을 해보곤 합니다. 좀더 일찍 서양 문물을 받아 들여 일본 처럼 조선사회의 발전을 이루어 냈다면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를 받지 않았을까? 여러 추측과 상상을 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역사를 비판하면서 이때는 이러지 말아야 했었어, 하는 식으로 다른 방법을 모색해 보는 것도 좋은 역사공부 방법이긴 하지요. 정조 이후 순조,헌종, 철종 까지 안동김씨, 풍양 조씨의 집안 싸움이 정치 싸움이 되어 버려 백성들은 더욱 곤궁해져만 갔답니다.

 

또 파란 만장한 사건이 많았던 고종시대, 결국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를 받게 되고,임오군란, 갑신정변, 을미사변, 아관파천 등으로 이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뒤로 하고, 고종은 퇴위하게 됩니다. 허울뿐인 황제인 순종도 죽게 되고 우리나라 왕조의 끈은 여기서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이지요. 일본에 의한 40년간의 지배때문인지 늦게 독립국가가 된 대한민국은 일본에 서서히 이룬 경제발전도 후다닥 해치웁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과 독재정치가 급격한 경제, 사회발전을 이루게 한 밑바탕이 되기도 했지만, 빨리 이룬 만큼 빨리 시들어 가는 우리 나라의 현실에 또한번 안타까움을 느껴야 합니다.

 

말이 글로벌 시대라고 하지만 환경운동가인 '헬레나 노르베리'여사는 '서구 사회의 세계화는 표준화, 획일화라는 문제점을 일으키고, 그 나라의 전통문화를 말살하여 독창성 없는 세계문화를 만드는데 이바지'하였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해외여행을 하면서, 그나라 수도를 관광하다보면 모든 세계의 도시가 비슷비슷해 진다는 느낌을 어쩔수 없이 받게 됩니다. 물론 전통 문화를 보존하여 관광화 해 놓은 곳을 가면 그나라의 독창성을 볼수 있지만 일반 시민들이 사는 곳은 한국의 서울이나 일본의 도쿄나 북경의 베이징이나 터키의 이스탄불이나 너무나 유사하다는 것이죠. 높은 빌딩, 지하철, 자동차들 , 세계적으로 유명한 산업 문화가 있듯이 우리나라의 현대차가 중국 베이징을 활보하고 다니고, 삼성의 캘럭시 에스가 일본의 국민 손에서 통화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이제 세계는 하나라는 말이 실감을 하지만, 좀 색다른 방법으로 각자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시대가 다시 도래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나라도 우리 문화의 소박함과 자연친화성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야 될 것 같습니다. 거대해 보이는 유럽 문화만 최고라는 사대사상을 좀 버리고, 그들 문화는 그들 문화대로 화려하고 아름답구나 하고 느낄수 있으면 그뿐일 것입니다. 한국사 공부하다 보니 애국심이 많이 늘어 버린 걸까요. 이런 잡생각을 해보다 이렇게 조선사 이야기를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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