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편지 2 - 개정판, 후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12살부터 읽는 책과함께 역사편지
박은봉 지음, 류동필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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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꾸준한 책읽기가 중요하겠지요. 딸아이와도 될수있으면 일주일에 매일은 아니더라도 3-4일정도는 한국사 편지를 책장에서 꺼내들고 같이 읽어 나가면서 대화를 나누려고 노력했습니다. 14개의 제목으로 chapter가 나눠져 있는데, 하루에 한두개 chapter를 같이 읽으면서 진도를 나갔습니다. 2권은 후삼국 통일 과정과 고려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면을 아이가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중심의 내용으로 엄마가 들려주고 있는 형식입니다.

 

역사는 사관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지요. 주로 역사가 패자가 아니라 승자위주로 기술되다 보니 패자는 아무리 좋은 사람이었더라도 승자의 정당성을 위해 나쁘게 기술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박은봉선생도 후삼국 통일 과정중에 후고구려의 궁예에 대해서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합니다. 아이들에게 무조건 왕건은 너그럽고 포용력있는 사람이고, 궁예는 미치광이에 폭군이었다 라고만 알게 하고 쉽지 않은 것이지요. 궁예는 ,어느 나라 든 전성기의 왕들이 해오던 중앙집권체제 강화, 즉 왕권 강화를 하고 싶었던 왕 중의 한사람인 것이지요. 자신의 뜻에 반하는 호족은 엄하게 대하거나 가차없이 죽이고, 부석사에 걸려있던 신라 왕의 초상을 칼로 베어 '반신라 정책'을 선포하면서 신라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신라의 골품제를 없애고 여러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려는 등의 개혁정치도 했다고 합니다. 궁예는 왕건을 지지하는 세력에 의해 쫓겨나긴 했지만 백성의 손에 맞아 죽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죽은 뒤에는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궁예의 이런 좋은 면도 있었건만 왕건이라는 승자가 기록하면서 사관이 달라질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고려 사회는 조선후기 사회와 많이 다른점이 있었습니다. 남녀 평등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어서 부모가 상속을 할때도 딸과 아들에게 똑같은 비율로 하고, 제사도 아들딸 구별없이 돌아가면서 지냈다고 합니다. 딸이 결혼해서 사위와 같이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호적에 기록 될때도 나이 순으로 남녀 구별없이 적었다고 합니다. 또 천민의 신분에서 큰 공을 세워 장군의 지위까지 오른 경우도 많았던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보다 신분의 이동에 훨씬 포용력있는 사회였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요즘 드라마로 하는 '무신'을 보면 노비 출신에서 장군으로 승진하는 예를 직접 확인할수 있습니다.

 

사관의 다른 면으로 바라본 사람이 한사람 더 있는데, 목화씨를 원나라로 부터 가져온 문익점입니다. 문익점은 목화씨를 붓두껍에 몰래 넣어 가지고 와 우리나라에 퍼뜨렸다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년동안 강남지방에서 귀양살이를 했다고 하는데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랍니다.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못 가져 가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문익점이 살던 시대는 공민왕이 지배하던 시기로 공민왕의 개혁 정치 때문에 원나라가 이를 싫어 하여 충숙왕의 동생 덕흥군으로 왕을 삼고자 했답니다. 그래서 공민왕과 덕흥군 두사람의 싸움이 시작될수 밖에 없었고, 당시 고려 학자들은 두 사람의 어느 편에 가담을 해야만 했어요. 문익점은 덕흥군 편을 들었고, 승리는 공민왕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문익점은 처벌을 각오하고 우리나라로 들어왔고, 목화씨를 가져와 재배에 성공하게 됩니다. 목화의 보급으로 의생활이 많이 안정되자 고려 사람들은 문익점에 대한 평가가 달라졋다고 합니다. <태조실록>에서도 이런 문익점의 치적을 높이 사 그전의 덕흥군 편에 가담했다는 사실을 좋게 평가해 덕흥군 편으로 오해를 받아 귀양살이를 했다는 것으로 기록되기에 이런 것이랍니다. 역사의 기록이 참 아이러니하지요. 역사의 기록은 그래서 여러 시각으로 바라 볼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영웅으로 평가받던 위인들도 사생활이 실제 어떠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일겁니다. 그가 아무리 어릴적 깡패였거나 무지렁뱅이엿어도 실제를 조작할수도 있는 것이 역사라고 생각하니 아찔합니다. 아니 실제로 역사를 왜곡하여 자신의 나라에 유리하게 기록하고 평가하는 일본과 중국만 보아도 알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나라도 우리나라에 유리하게 왜곡되어 기록하거나 전하는 부분이 사실 상당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역사는 하나의 고정된 시각이 아니라 다각적인 면에서 평가하고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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