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yes of Darkness (MP3 CD) - 딘 쿤츠 '어둠의 눈' 원서 오디오북
딘 R. 쿤츠 / Brilliance Audio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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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길그레이트북스 8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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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라는 소제목이 달려있다. 한나 아렌트가 쓴 이책의 핵심 키워드는 아마 <악의 평범성> 일 것이다. 유대인 학살 전범 아이히만에 대한 재판이 예루살렘에서 열리자 한나 아렌트는 미국 교양잡지 <뉴요커> 기자로서 아이히만의 재판을 1961년에 기록하고 위해 보고서 형식으로 써낸 것이 바로 이책이다.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나 <인생은 아름다워>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 등을 통해 간접 경험했었지만, 전범 재판에 대한 책은 이책이 처럼이었다. 유대인 학살 전범 재판은 전후 1946년에 독일의 뉘른베르크 재판으로 많은 전범들이 사형을 당하거나 종신형을 선고 받았던 상태였다. 하지만 히틀러의 유대인 이송 중간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은 우여곡절끝에 도망을 쳐 아르헨티나에서 살고 있다가1960년 이스라엘에서 보낸 자들에게 납치되어 예루살렘으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한나 아렌트는 철학서를 읽는 자들에게는 널리 알려진 여성 철학자로 독일 하노버에서 출생한 독일계 유대인이었다. 그녀는 시온주의자들을 돕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출감된후 프랑스호 망명해 활동하다가 비시정권이 들어서서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탈출하여 미국으로 가게 된다. 한나 아렌트는 철학자 하이데거와 연인사이였다가 하이데거가 히틀러의 사상에 동조되는 모습을 보고 실망하여 그와 헤어지게 된다. 그후 샤를 야스퍼스의 도움으로 박사논문을 쓰게 된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 재판에서 만난 아이히만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보게 되었다. 정신과의사들 조차도 자신들보다 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판단하기도 했었고, 아이히만은 전체주의 국가 체제 속에서 히틀러로 부터 내려진 임무를 철저히 수행하는 공무원에 불과한 모습으로 비쳤다. 그래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에 주목했다. 악이란 평범한 모습을 하고 우리가 쉽게 접할수 있는 근원에서 나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대인의 민족적 관점에 날린 직격탄이었다.  자신이 유대인이면서도 유대인에 대한 사랑을 결여한채 유대인이 아닌것처럼 보편적 관점에서 아이히만 재판을 다루었다. 2000년에 이르기 까지 아렌트의 저술이 단 한권도 히브리어로 번역되어 이스라엘에서 출간된적이 없고 유대인들에게 아렌트는 적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20059월에 다산 기념철학 강좌에 초대되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렌트가 보편주의적 입장을 보여주었다고 비판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무죄라고는 하지 않았다. 아이히만을 세가기 부분에서 유죄라고 말했다.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그리고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의 무능성이 그것이다. 세 번째의 무능성은 곧 판단의 무능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판단 능력이란 옳고 그름을 가리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 무능함이 바로 유죄인 점은 인정한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아히히만을 전쟁범죄와 인류에대한 범죄 및 유대민족에 대한 범죄등의 혐의로 예루 살렘의 법정에 세웠다. 아이히만 재판은 국제적 관심 속에 7개월간 열렸고, 결국 1962년 5월 31일 밤 아이히만의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런데 아렌트가 관찰한 아이히만은 반유대주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하고 나치즘의 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든 신념에 찬 나치가 아닌것으로 보였다. 아이히만은 악마적 인간이 아니라 관료제적 타성과 인습적 관례를 따른 '명령수행자'로만 보였다. 그래서 아이히만을 두고 <악의 평범성>을 논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 아렌트의 아이히만에 대한 관찰결과가 사실이 아닌것으로 많이 밝혀지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아이히만은 나치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반유대주의자였고, 출세 지향적인 사람으로 상부에서 전달된 명령 수행뿐만아니라 자신의 출세에 기민한 자였다. 1950년 아르헨티나로 도주했던 아이히만은 옛친위대 동료이자 출판업자였던 빌람 사센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신념을 드러냈다. "당신에게 솔직히 말하겠어요. 우리가 1천여명의 유대인을 모두 죽였다면 만족했을 것이고 우리가 적을 절멸했다고 말할수 있을 겁니다. 난 일반적인 명령 수행자가 아니었어요. 만약 그랬다면 난 그저 얼갈이에 불과 한거죠. 난 함께 생각했으며 이상주의자였어"라고 고백했다. 사실이 그렇다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저술한 아렌트는 일급 연기자 역할을 했던 아이히만에게 속은 셈이 된다. 재판에서 변호사 세르바티우스 박사는 아이히만을 변호하기 위해 명령수행자로서 수동적인 역할로 몰아 가기 위해 아마 아이히만과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을 가능성도 많다.

이런 연구결과 때문에 <악의 평범성>을 말한 아렌트의 주장이 무의미 한것은 아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주제는 전체주의와 독재 체제와의 순응과 억압의 동참 과정에 대한 의미있는 비판적 관점이기 때문이다. 전체주의는 인류 보편적 선과 악의 경계를 무화해 극도의 체제 순응성과 평범성 내지 진부성을 낳고 폭력 발현과 인종학살의 실천에 대한 동참과 무관심을 이끌어 낸다는 사실은 우리가 2차세계대전을 통해 목격한 바와같다. 전에 읽은 적이 있는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 읽어주는 남자>의 주인공인 수용소 감시원 한나의 경우처럼 더러 상부의 명령에 따르는 것 외에 '달리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지'정말 모르는 경우가 바로 악의 평범성에 속하는 경우가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히만은 슐링크의 한나와는 달리 매우 능동적인 행위를 한 영악한 출세지향자이자 반유대주의자 였음은 부정할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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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정원
미셸 깽 지음, 이인숙 옮김 / 문학세계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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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읽으면서 관련도서로 읽게 된 책 <처절한 정원>이다. 처절한 정원은 그 시작 장면에서 궁금증을 유발한다. '어릿광대 삐에로가 모리스 파퐁의 재판이 열리고 있는 보르도 법정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경찰이 그를 막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증언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어릿광대와 모리스 파퐁의 재판과의 연관성이라니 무척 흥미롭다.

모리스 파퐁은 나치의 꼭두각시 정권이었던 프랑스의 비시 정권하에서 보르도 지역의 치안 부책임자였다. 그는 1942년부터 1944년까지 1500명의 유대인을 체포하여 죽음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냈다. 하지만 그는 전후 레지스탕스였다는 경력을 내세워 전후 정권에서 장관까지 지낸 그가 마이클 슬리틴이라는 역사학자에 의해 폭로되고 만다. 마이클 슬리틴은 파퐁에 의해 아우슈비츠로 보내졌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모리스 파퐁의 반인륜적 범죄를 낱낱이 증언 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릿광대는 누구일까? 이 동화의 화자이자 화자의 아버지 앙드레는 학교 교사이면서도 삼류 어릿광대 역할을 하고 있다. 어린 아이의 시전으로 바라본 아버지의 어릿광대의 모습은 항상 화자에게 창피함을 주는 것이엇다. 하지만, 아버지 앙드레와 삼촌 가스똥의 레지스탕스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 난후에는 아버지의 어릿광대 모습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무한한 감동과 존경으로 바뀌게 된 사실을 고백했다.

프랑스가 독일군에게 점령된 그 시절,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던 아버지 앙드레와 삼촌 가스통이 수행한 변압기 폭발 사건은 같은 민족이던 프랑스헌병의 고자질로 인해 아버지와 삼촌은 무고한 마을주민 2명 앙리와 에밀과 함께 깊고 어두운 구덩이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곳은 4명의 마지막 삶의 장소이자 죽음의 장소가 될 '처절한 정원'이었다. 처절한 정원이라는 말은 기욤 아뽈리네르의 시에 나오는 상징어였다. 그 추악하고 잔인한 생애 마지막 시간을 독일보초병이 보여준 우스꽝스러운 광대 몸짓을 보며 그들은 견뎠다. 그리고 어쩔수 없이 죽을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순간 변압기 폭파 당시 그 옆에 있던 전기공이 자신이 폭파범이라고 자백하는 바람에 그들은 살아 날수 있었다. 그 전기공이 바로 변압기가 폭발하는 바람에 화상을 입었고 그 아내가 독일병에게 자신의 남편이 범인이라고 신고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남편을 대신해 무고한 사람들을 구해 내야 겠다고 생각했는지 그 아내의 입장이 무척 궁금해진다. 그 전기공의 아내가 바로 가스통 삼촌의 아내 니꼴 숙모였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처절한 정원인 구덩이 속에서 갇혀 있는 그들에게 어릿광대의 모습을 보여준 독일 보초병은 나중 영화 감독이 되어 있는 후일담도 무척 흥미로웠다.

“나는 자네들이 진짜 범인이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중요한 것은 독일군의 계략에 맡려들어서는 안된다는 거야. 가장 좋은 방법은 독일군에게 자네들 전부를 죽이라고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도 죽이지 못하게 하는 거야. 자네들 스스로 희생양을 선택한다면 반인륜적 선택을 하도록 한 그들의 논리에 덩달아 춤추는 꼴이 되는 거지. 그렇게 되면 도리의 그들의 논리가 정당하고, 그들은 자네에게 동정을 베푼 셈이 되는 거란 말일세”
“죽고 사는 일을 타인의 손에 맡기거나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대가로 자신이 살아남는다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악이 선을 이기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악의 편에 있는 독일군복을 입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야. ” 81쪽

처절한 정원 구덩이 속에서 누가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될지 제비뽑기를 하려는 그들에게 어릿광대 독일 보초병은 "자네들 스스로 희생양을 선택한다면 반인륜적 선택을 하도록 한 그들의 논리에 덩달아 춤추는 꼴이 되는 거지. 그렇게 되면 도리의 그들의 논리가 정당하고, 그들은 자네에게 동정을 베푼 셈이 되는 거란 말일세”  “죽고 사는 일을 타인의 손에 맡기거나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대가로 자신이 살아남는다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이고, 악이 선을 이기는 것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네. 악의 편에 있는 독일군복을 입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울 따름이야. ”라는 말로 그들을 위로하고 자신이 어쩔수 없이 처한 나치의 명령 체제 속의 자신을 부끄러워 하는 모습은 모든 나치는 나쁘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나로서는 어떤 충격으로 와닿았다.

소수지만 독일 지식인들 중에는 나치에 대항하다 고난을 당한 이들도 있었다. 어쩔수 없이 명령에 따르지만 일말의 양심으로 난처함에 처한 이들을 위로하려는 그의 어릿광대짓은 아버지 앙드레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으로 남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아버지는 삼류 어릿광대로 변장해 여러 사람앞에서 '원맨쇼'를 하며 독일 보초병의 뜻을 위로 하려 했던 것이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전쟁은 정치적으로 이루어 지고 있지만, 그나라 국민들에게는 슬픔과 고통만을 안겨 준다. 불필요한 잔인성으로 학살이 자행되고 버젓한 살인행위가 저질러 지고 있는 전쟁의 현장은 다시는 일어 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그런 반인륜적 행위를 저지른 자인 전범에 대한 재판과 처벌또한 당연한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재판과 처벌이 이루어 지는 유럽의 현실이 부럽다. 엄연한 진실이 있는데도 청산을 해 내지 못한 우리의 근현대사의 문제는 아직도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이 세상에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10)"또한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다면 어떻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11),라는 말은 더욱더 절절하게, 그리고 의미있게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와 책임 마냥 가슴에 와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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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2 : 진중권 + 정재승 - 은밀한 욕망을 엿보는 크로스 2
진중권.정재승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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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라는 이름은 서양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이름이고, 정재승은 <눈먼 시계공>을 읽으면서 김탁환 작가와 공저를 한 과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진중권은 종종 인터넷을 통해 현정부에 대한 현란한 비탄을 가하는 비판가였다. 그래서 사실 너무 진보쪽에 치우친 발언을 하는 자들에게 반감이 있는 나에게 진중권과 정재승의 크로스 시즌 2를 읽으려니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크로스 시즌 1을 읽지 않고 바로 크로스 시즌2를 읽게 되었지만, 이들이 사회에 대해 어떤 쓴소리를 하는지 한번 감상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읽고 나니 진중권은 그렇게 편파적으로 진보에 치우친 비난을 써 놓지 않아 부드럽게 읽어 나갈수가 있었다.

 

이 책은 진중권과 정재승이 크로스하여 작년과 올해에 걸쳐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었던 주제를 놓고 인문학자와 과학자로서 자신의 의견을 써내려가는 칼럼이었다. 인문과 과학쪽의 전문용어를 간간히 접하면서 그들이 생각하는 , 이슈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볼 수 있었다.

 

런닝맨에서 기린 이광수와 암팔라 지석진의 <필촉 크로스>라는 말이 참 재밌게 와 닿았고, <신의 퀴즈>라는 케이블 드라마에서 한진우 박사가 김경희 형사에게 <진우, 경희 크로스>를 하자면 조를때의 장면이 생각났다. 그 장면들의 원조가 바로 이책 인 것 같다. 진중권, 정재승의 중권, 재승 크로스가 이루어지는 책이니 말이다. 정재승은 작가 김탁환과 함께 <눈먼 시계공>이라는 소설을 통해 미래의 서울에서 일어날 공상과학적인 내용에 스릴러를 겸해 내놓은 적이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눈먼 시계공>은 새로운 미래에 대한 환상과 부작용을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고 느끼게 해주었다.

 

이들이 크로스한 내용들은 어떤 주제들이 있나 보겠다. 천원짜리 로또로 대박을 꿈꾸는 사람, <나는 가수다>와 <위대한 탄생>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진단, 현대인들에게 자살이란 어떤 의미인지, 키스방의 폐단, 변신을 꿈꾸는 인간들의 욕망의 표현인 <트랜스 포머> , 언제나 짱을 노리는 수컷들의 세계의 작은 세계인 학교짱, 전세계 어린이의 뽀통령 뽀로로 등 22가지에 대한 인문, 과학적인 견해를 써내고 있다.

 

MBC에서 시작했던 <위대한 탄생>과 <나는 가수다>의 팬이었던 나에게도 오디션 프로는 매력적이다 못해 마력적으로 다가와 브라운관을 떠나지 못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식상하여 지금은 보지 않게 되었다. 경쟁사회에 놓여 있는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느끼는 경쟁에 대한 공포를 오락의 대상에서 스트레스 해소를 노리는 심리가 잘 반영된 것이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경쟁을 하고 있는 당사자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브라운관을 통해 지켜 보고 있는 일반인에게는 오히려 게임 같은 느낌이다. 게임에서는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뚜렷하듯 <나는 가수다>에서 탈락한 김건모를 부활시킨 쌀집아저씨가 쫓겨나는 등의 초미의 사건이 벌어 진 것도 승자와 패자를 가르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인터넷의 발달로 악성댓글이 늘어나 그에 상처받은 연예인들의 자살이 잇다르고, 성적 비관과 학교 폭력에 피해를 이기지 못한 중고등학생의 자살이 잇다르고 있다. 자살 또한 이 시대의 반영을 볼 수 있으므로 피해 갈수 없는 논평의 대상이 되었다. 자신의 생명을 마음대로 할 권리가 인간에게 있는 것인가 라는 논쟁은 많은 학자들에 이루어져 온 것이다. 히틀러 시대에 아우슈비츠에 가서 고통을 받는게 나을 것인가, 아니면 자살이 나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쉽게 얻어질 것이 아니다. 하지만, 현대 우리 사회는 또 다른 아우슈비츠 같은 세상이므로, 그들의 자살에 대한 선택을 단죄지을 만한 꺼리도 없는 실정이다.

 

학교 폭력에 대한 문제는 아직도 진행중이어서, 영화나 소설에서도 다루어 지는 주제이다. 영화에서 묘사된 학교짱의 모습은 미화되어 나타나고, 어른들의 작은 조폭 세계가 학교라는 공간에 들어서 있는 입장이다.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항상 서열 싸움이 있는 법이듯 인간 수컷들에게도 서열정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학교짱들은 졸업후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지, 궁금해 지기도 한다.

 

나약한 자신들의 육체를 바꿀수 없는 욕망은 로봇을 만들어 내고, 하다못해 이제 변신을 자유자재로 하는 트랜스포머의 환상을 만들어 내고 있다. 약간의 변형이 아니라 완전한 새로운 사물로의 변신은 마법의 세계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지만, 영화에서의 상상력은 끝이 없다. 외계에서 온 로봇들과 인간편을 드는 트랜스포머들의 한판 전쟁은 신선함 그 자체였다. 주위에 있던 핸드폰이 갑자기 로봇으로 변신할 것 같은 착각을 만들어 주었다. 지금의 과학 기술로는 아직 요원한 트랜스포머같은 로봇이지만, 인간들의 다양한 욕망을 내포하고 있다.

 

외국에서 한참 인기를 끌고 잇는 케이팝에 대한 전망도 “단순히 집단에 동조하려는 심리”로 치부해 버린다면 그리 밝지 않은 것이다. 중독성 강한 비트를 가진 음악과 성적 매력을 느끼게 하는 소녀들의 모습이 언제까지 인기를 구가할지. 한 때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사라져 버린 홍콩영화가 되지 않으려면 다양한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참 많은 주제를 가지고 입바른 소리를 내놓은 그들의 크로스는, 같은 심정이었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일반인의 답답함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진정한 크로스라면 하나의 문장으로 합일 되는 작품을 내 놓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눈먼 시계공>같은 소설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더라도 두사람의 의견이 합일되는 가운데 하나의 칼럼이나 작품이 나왔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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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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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선생님의 갈망의 삼부작 중 하나인 은교입니다. 촐라체는 아직 읽지 않았고, 고산자는 지도를 만들겠다는 열정과 욕망을, 은교는 내면의 욕망과 본능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설 주인공들의 갈망이겠고, 작가의 갈망일 것입니다.

 

작가는 이 소설을 한달 반만에 써내려 갔다고 해요. 내면의 심리묘사에 집착하고 있는 작가의 감정이 이입되어 미친듯이 써내려 가신듯 합니다.

은교는 한은교라는 열일곱살 여고생과 일흔을 바라보는 노시인 이적요선생과 이적요 선생님의 수족처럼 따르는 제자로 나오는 소설가 서지우와의 삼각관계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전개방식은 노시인의 유서로 시작하여 Q변호사가 노시인이 죽은후 일주년이 되었을때 꺼내든 시인의 노트 속에 담긴 진실과 은교로 부터 받은 죽은 소설가 서지우의 노트의 내용을 번갈아 가면서 적어 나가고 있습니다.

 

노시인이 어린 소녀에게서 느끼는 욕망과 그 절제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인 소설의 주된 내용입니다.

노시인의 꿈부분에서의 적나라한 성애의 묘사가 좀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이러한 성적인 판타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익숙해진바 있는 내용들이기도 했어요.

 

자신의 제자인 서지우가 자신의 소설과 돈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젊은 신부라고 생각하는 은교까지 범하고 있음을 알고 결국은 그의 죄에 대한 집행까지도 시도합니다.

심리묘사가 간결한 작가의 문체로 깔끔한 맛이 있어 읽기에는 참 수월합니다.

은교라는 한 여고생을 두고 서로 차지하려는 마음과 질투심에 사로 잡혀 있는 스승과제자, 또 그 두사람의 애증과 사랑이 더욱 처절해 보이기도 합니다.

 

좀전에 읽은 순수 박물관의 집착이나 노시인의 은교에 대한 말년의 집착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본능은 탐욕스러웠을는지는 모르나 외면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순수한 것이 었습니다.

노시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여고생을 지켜주기 위해 순수함을 잃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를 쓰는 모습에서 그녀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느낄수 있거든요.

 

노시인 이적요 선생은 필명에서와 같이 적요한 가운데 감각보다는 영혼을 더 믿으며 살았던 금욕주의자 였던 셈이지만 , 노년에 자신에게 다가온 치명적인 여고생의 모습에 그만 살인까지도 저지르는 자신의 추악함을 세상에 내어 보이려고 합니다.

죽어서 더 추앙받는 예술가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며 자신은 그리 죽고 싶지 않다면서 진실을 밝히려고 변호사에게 자신의 내면을 적은 노트를 공개하기를 원합니다.

그 노트를 받은 변호사는 많은 고민에 빠져 있고 은교의 선택만이 남아 있게 되지요.

 

노시인은 은교를 사랑하게 된것이 그녀 가슴에 새겨져 있는 창 모양의 헤나를 통해 그녀의 뽀얀 손등을 통해 사랑에 빠져 들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그리 빼어나게 아름답지 않은 은교의 모습이 노시인에게는 더없이 아름답게 보였던 것은 그의 영혼을 통해 바라본 감각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여자는 사랑을 영혼을 통해 느끼고 , 남자는 감각을 통해 느낀다고 하지만 시적 천재성인 신성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노시인 자신은 영혼을 통한 사랑만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은교를 알고 부터는 이런 자신은 가짜 였으며 감각을 통해 은교를 사랑한 자신이 실존의 모습임을 고백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이란 실존에서는 모두 같은 욕망과 본능을 가지고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본능과 욕망을 좀더 아름다운 것으로 승화 시키고 싶어하는 예술가들의 내면에도 알고 보면 깊은 내면은 똑같은 것임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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