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관하여 팀 켈러의 인생 베이직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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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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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0924

 

🗒<읽은 책 정보>
저자 : 팀켈러
출판사 : 두란노
초판 2쇄 발행 : 2020년 8월 25일

 

📝<읽은 이유>
- 두포터 10기 9월 미션도서
- 이 책 시리즈가 나왔을 때, 제목이 마음에 끌렸다.
- 팀 켈러의 모든 책 읽는 중
- 죽음에 대한 생각은 희소하기 때문에
- 시리즈 드래곤볼 모으기

📝<내용과 생각>

어렴풋이 떠오르는 추억과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존재.
울음소리와 후회의 언어들이 기억속에 있다.

1.

회피와 부정, 죽음을 대하는 현대인의 두려움
_ p.12

 

(중략)
예전 100일잔치와 첫돌잔치는 희망봉 같은 의미였다. 이때를 넘기면 아이가 무사히 살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100일 잔치와 첫돌 잔치는 당연시 여긴다. 100일 잔치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당연시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염원했다면 지금은 당연해졌다.

하지만 죽음은 '태어남'에 대해서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평균수명이 길지 않았던 때는 환갑잔치를 귀하게 여겼다. 온 가족이 모여 장수를 기원하며 잔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평균수명은 환갑잔치를 하기에는 무색하리만치 100세를 넘어 120을 바라보고 있다. 이처럼 생명의 시작점에서는 지워져가고 생명의 끝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인생의 앞뒤에서 죽음이라는 단어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중략)


2.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깨닫게 해 주소서.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지혜로워질 것입니다.

 

시편 90편 12절에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명한 목적은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기 위해서다.
_ 시편 90:12(쉬운 성경) / cf. p.17-18


죽음이 멀어질수록 살아갈 날 수가 길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또한 죽음은 부정적인 것이라 생각하기에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그 자리에 다른 것들이 자리 잡는다. 현대인들은 '내일'이라는 시간은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당장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내일이 있으니까. 내일이 있고 다음 주가 있고 다음 달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년이 있다. 이처럼 시간이 있는 삶이 당연해졌다. 오늘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내일하면 된다. 내일 못하면 다음 날 하면 된다.

미룸과 게으름은 내일이 있음을 전제로 가능한 행동이다. 이에 반해 쾌락과 중독은 내일을 허락하지 않는다. 쾌락과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선순위는 뒤바뀐다. 도시에서는 당장 거리만 나가도 밤낮 구분없이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다. 하루가 길어진 것처럼 보인다. 도시의 밤은 밝다 못해 화려하기까지 하다. 밤낮 상관없이 먹고 마실 수 있다. 그리고 돈만 있으면 쾌락과 중독의 길로 들어가기 쉬워졌다. (중략)

 


3.

죽음 앞에 슬퍼하고 격노하는 것은 거대한 악에 내보이는 온당한 반응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소망이 있어, 마치 고기에 소금을 바르듯 그 소망을 슬픔과 분노에 '바를' 수 있다. 슬픔을 억누르거나 절망에 굴하는 것은 옳지 않다. 분노를 억제하거나 무조건 다 터뜨리는 것도 영혼에 이롭지 못한다. 그러나 슬픔을 소망에 절이면 지혜와 긍휼과 겸손과 애정이 싹튼다.
   충분히 슬퍼하되 깊은 소망을 품으라!
_ p.57


-> p.83
"기독교 신앙은 죽음 앞에서 신자에게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약속과 소망을 준다."

-> p.59-74
이 소망은 인격적이고 물리적이며 기쁨으로 충만하다. 무엇보다 이 소망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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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남에 관하여 팀 켈러의 인생 베이직
팀 켈러 지음, 윤종석 옮김 / 두란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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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태어남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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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0916-0923

 

🗒<읽은 책 정보>

저자 : #팀켈러
출판사 : #두란노
초판 2쇄 발행 : 2020년 8월 25일

 

📝<읽은 이유>

- 두포터 10기 9월 미션도서
- 이 책 시리즈가 나왔을 때, 제목이 마음에 끌렸다.
- 팀 켈러의 모든 책 읽는 중
- 철학적인 내용도 좋아하지만 제목도 좋아한다.

 

📝<내용과 생각>

 

[인용]
삶은 여정이요, 그 여정의 기초는 하나님을 찾고 아는 데 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인생에 찾아온 이 새로운 시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나는 하나님 안에 바로 서 있는가?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성경이 말하는 거듭남(요 3:1-8) 즉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고후 5:17)
_ p.8-9

 

-> (중략)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는 찰리 채플린의 말이 떠오른다. 인생은 항상 좋다고 말할 수 없고, 항상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지옥같았던 시간도 되돌아보면 추억이 되는 것처럼 '인생은 어떻다'고 규정지을 수 없다. '일회일비하지 말라'는 말도 있듯이, 살아 있기에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한 예측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어떻게 인생이 변할지 누구도, 심지어 본인 자신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중략)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적 변화는 바로 일어나지만 성장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데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지식과 더불어 성장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어린 아이가 먹고 마시며 관계 맺는 과정과 시간을 거쳐 성인이 되듯, 하나님의 자녀가 성장하는 원리도 동일하다. "거듭남이란 단지 더 나은 사람이 아니라 새사람이 된다는 뜻"(p.65)이기 때문이다. 새사람이 된다는 것은 신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신분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략)

그렇다. 거듭남이란 내 안에서 시작되지만 내 안에 있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물론, 노력으로 '갱생'은 가능하지만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거듭남'은 오직 은혜로만 가능한 영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노력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도는 번번히 실패한다. 물론 노력을 통해 '좋은 사람'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자기 의'만 더할 뿐이다. 노력하는 이유가 자기를 위한 것인가 새사람으로 거듭났기에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마음인가를 분간해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하지만 믿음을 위한 행함은 믿음을 죽인다.

 

[인용]
은혜를 깨달으면 그때부터 당신의 마음이 변화되고, 하나님이 당신 안에 기르시는 새사람이 자리한다. 그 결과 진정한 인내와 친절이 우러나 행동까지 제대로 바뀐다. … 이 성장은 우리의 내면에서부터 퍼져 나가며, 기계적이라기보다 유기적이다.

 

… 머리로만 아는 기독교 교리와 성경 정보를 늘릴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지혜와 깊이와행복과 사랑이 더해 가는 것과는 다르다.


   당신은 돌무더기처럼 커지는 중인가, 아니면 아이처럼 점점 자라서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가는 중인가? 우리는 은혜 안에서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 그 성장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며, 생명이 심겨지는 일이다.
p.105-106

--------------------------
우리가 처음 세상에 태어남은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이고,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은 그분이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주님은 양쪽 출생 모두의 주인이시다.
_ p.12

 

한 번 태어나면 두 번 죽고
두 번 태어나면 한 번 죽는다.
_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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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3
공자 지음, 소준섭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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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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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기간>
200919-0920

 

🗒<읽은 책 정보>
저자 : 공자
출판사 : 현대지성
1판 3쇄 발행 : 2020년 2월 10일

 

📝<읽은 이유>
- 서평단 당첨
- 동양철학 좋아함

 

📝<내용과 생각> / 더 풍성한 내용은 블로그에


공자가 말했다. 남이 자신을 나를 알아주지(이해하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이해하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_ p.30

 

'퍼스널브랜딩'이란 이름으로 자신을 알리는 것이 미덕인 시대가 되었다. (중략) 사실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며칠만에 이뤄지는 일도 아니다. 계속 무언가를 하기 힘든 이유는 바로 '관심받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누군가 알아봐주지 못하는 건 비교적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보다 덜 열심히 하는 것 같은 사람이 먼저 주목받을 때가 고비가 찾아온다. 마음은 조급해지고 회의에 젖어들기 시작한다.

 

(중략) 자기중심성은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춘다. 조급할수록 회의에 젖어들수록, 남을 시기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건강한 윈윈을 위해서라도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함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

 


공자가 말했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미혹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_ p.39-40

 

(중략)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종교적 가르침 역시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과연 그러한가' 하고 상고해봐야 한다. 의심과 회의는 나쁜 것이 아니다. 진짜 나쁜 것은 그것을 '믿음 없음'으로 규정하는 행위이다.

 

​충분히 의심해봐야 하고 회의를 거쳐야 깨달을 수 있다. '의심을 거친 믿음'이 더 흔들리지 않는다. 도마가 예수님을 의심했을 때 주님은 그를 꾸짖지 않으셨음 기억해야 한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그럴듯해 보이는 것에 속기 쉽다. 항상 사단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해 나타나고, 말씀을 왜곡해서 접근하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그렇게 당했다. 반대로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자신이 듣고 싶은 말씀만 찾는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보다 자신의 생각에 갇힌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된다. 결국 신앙은 깊어지지 않고 불신이 깊어지거나 맹목의 길을 걷게 된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남을 비난하기 쉽다. 교리로 사람을 정죄하는 모습이 대표적인 예다. 자신이 배운 것을 절대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생각하기만 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맹신하기 쉽다.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바로 사이비교주나 비상식적인 종교지도자들이다.

 


공자는 말했다. "옛날 학자는 자신을 위해 학문을 하였는데, 지금 학자는 남에게 보이기 위해 학문을 한다."
_ p.276

 

'누구를 위해 공부하는가', '왜 공부하는가'는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호심경처럼 여겨야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만이 길을 잃지 않고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든다. 뽐내기 위한 공부는 하지 말자. 그건 영양가 없고 배웠어도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빈수레가 아닌데도 요란한데는 이유가 있다. 수레가 가볍기 때문이다. 수레는 무거울수록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무거운 수레는 느릴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은 수레가 아니기 때문에 항상 느리다고 할 수 없다.

 

​공부는 누가 뭐래도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지적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어서, 혹은 어떤 결과를 위해서든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공부를 통해 체계를 갖추고 내공이 쌓여야 남을 도울 수 있다. 진정으로 돕기 원한다면, 제대로 알아야 한다. 의사와 판사가 공부하지 않고 의술과 죄를 판단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말 그대로 파멸일 것이다. 돌팔이가 판을 치고 정의의 여신상의 저울은 죄의 무게를 재지 않고 돈의 무게만 측정할 것이다. 제대로 알아야 도울 수 있고 제대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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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에 두신 노래 - 온 세상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생각
샐리 로이드 존스 지음, 제이고 그림,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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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9 (금)
두포터 10기, 세 번째 책


[내 마음에 두신 노래]

 

저자 : 셀리 로이드 존스
그림 : 제이고
출판사 : 두란노
특징 : 어른을 위한 만화, 묵상

 

풍부한 리뷰는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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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평가>
별 5개는 인생 책 / 4개가 사실상 최고점

내용 : ★★★★

- 추천할 만하고, 정리할 가치가 있다. 곱씹어 읽을수록 좋은 책
- 그림 및 글자, 강조 포인트 등 보기 매우 좋음


중복을 제외하고는 72개의 키워드가 있습니다. 랭킹 3위까지 발표하자면, 정체성과 믿음이 8회로 공동 1위, 2위는 사랑 6회, 3위 능력 5회 순이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징인 무엇도 정의할 수 없다는 생각에 거슬러 정체성에 대해 학습하고 있던 중이라 반가웠습니다. 그래서 정체성이 실린 내용들을 정리했습니다. (중략)

 

 

<깨달은 점>
묵상도 아는 것이 있어야 가능함을 다시금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죠. 그 말처럼 아는 만큼 찬양할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묵상하고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관찰하지 않으면, 혹은 보이지 않으면 그만큼 줄어들겠지요. 그렇기에 공부함에 있어서 게을리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묵상하는 일입니다. 말씀없는 묵상은 상상에 불과하니까요.

위조지폐를 식별하는 사람들은 위조지폐를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짜 지폐만을 보고 보고 또 본다고 합니다. 진짜를 제대로 알면 가짜는 바로 티가 나기 때문이죠. 사기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거짓말만 있는 게 아닙니다. 일부 조금씩 섞여 있죠. 말하면서 조금씩 비틀고 말을 바꾸고 중요한 것들을 빼면서 그럴듯하게 말을 하죠. 그래서 속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죠. 들을수록 그럴듯해 보이거든요.

 

 

하나님은 우리가 이 한마디를 언제나 꼭 기억하기를 바라세요.
"나는 너를 사랑한다!"

사탄은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새빨간 거짓말을 속삭였어요.
"하나님은 너를 사랑하지 않아!"

 

_ 내 마음에 두신 노래 / p.26

 


<추천 대상>
말씀을 묵상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생각을 하다가, 또는 말씀을 읽다가, 혹은 불현듯 갑자기. 묵상이 막연하다면, 묵상에 대한 공부가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묵상에 대한 공부도 좋지만, 정말 묵상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의 교과서 역할로 묵상에 관한 책을 갖고 있는 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하면서 묵상의 폭을 넓혀가는 데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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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 - 과학적 생각의 탄생, 경쟁, 충돌의 역사
리처드 드위트 지음, 김희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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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

 

 책은 주로 과학사과학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세부적인 내용을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런 세부 사항이 입문자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간과할 때가 많다. 입문자는 흔히 너무 상세한 내용을 접하면 '이런 것에 신경 쓸 이유가 있을까?' 고개를 갸웃하며 발길을 돌린다.

 

 

이런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상세하고 세부적인 내용이 중요하긴 하지만, 더 큰 그림을 파악해야만 그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에서 그런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아주 굵은 붓으로 그려 세부사항이 상당히 생략된 것은 인정하지만, 내가 아는 한 정확한 그림이다.

 

 

이 책의 목적은 ①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기본적인 쟁점을 소개하고, ②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 뉴턴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탐구하고, ③ 특히 상대성이론과 양자론, 진화론 등 최근의 과학발전에 따라 서구 세계관이 직면한 도전을 탐구하는 것이다.

_서문 p.7-8 中

 

과학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건 아마, 초등학교 때부터 이지 않을까 싶다. '과학'이라는 교육과목이 있으니까. 또한 과학에 그나마 오랜 시간 투자했던 순간은 수능준비할 때 뿐이었다. 그래서 과학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수준에 불과하다. 정확히 설명은 못하지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정도이지만.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과학을 접목해서 생활하는 것은 거의 없다. 간단히 말해, 이과라서 과학은 수능을 준비했지만 그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확실히 알았다. 나는 과학을 모른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게 어떤 유익함이 있을까?" 모르겠다. 그냥 읽기 시작했다. 서평단에 신청해서 당첨되었으니까. 근데 한편으로는 제목에 끌렸던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 지식의 한계를 알고 싶었고, 세계관이라는 키워드에 꽂힌 게 분명했다. 그래서 천천히 꾸준히 읽었다. '꾸준히'라고 표현한 이유는 책의 두께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감사의 글부터 있는 내용을 빼도, 무려 573쪽에 달한다. 또한, 과학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천천히 읽어나갔다. 물론 뒷부분(특히 3부부터)에서는 이해하는 것을 사실상 포기하고 읽는 것에 의의를 뒀지만..

 

 

우선, '이 책은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조건이 붙지만 '그렇다'라고 말하고 싶다. 1부에 있는 경험적사실/철학적사실 등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원리들에 대해서 예를 들어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이해하는 데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조건은 붙는다. 책이 두껍고 그림은 별로 없고, 글자로 가득하다보니 막막함은 있다. 그래서 '꾸준히' 읽으면서 정리와 정립을 해나간다면, 저자의 말처럼 '큰 그림'을 그리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만일, 세부적인 내용까지 이 책에 담겼더라면 아마 1,000쪽은 훨씬 넘지 않았을까 싶다. 읽으면서 생각해봤던 부분은 각 장 뒤에 도식화해서 나타냈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상태를 알았다. '아, 내가 과학을 전혀 모르는 구나'. 과학의 발전으로 윤택함은 누리지만 사실 무관심했다. 그냥 뉴스에서 발견이 되었다고 하면 '그렇구나'하고 넘어갔다. 또한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경험적 사실과 철학적 개념/개념적 개념 부분을 읽으면서 데카르트가 떠올랐다. '눈 앞에 있는 모든 것이 실제(real) 실재(존재)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생각 끝에, 유명한 "cogito ergo sum, 즉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그의 깨달음이 떠올랐다. 사실 우리가 당연시 여기고 있는, 과학적이라 생각하고 있는 대부분은 경험적 사실에 근거한 것보다 세계관을 구성하는 믿음의 퍼즐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과학적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다 경험적으로 파악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없을 뿐더러, 하나하나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학적이라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합리적이라는 말은 과학적이라는 말과 동일시 될 수 없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철학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 A가 그러하니까 B도 그러할 것이다'라고 여기는 것은 과학적이라기 보다 쉽게 생각하기 위한, 삶의 경제성을 위해 그렇다고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믿음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

 

 

또한 읽으면서 깨달은 사실은, 나는 과학을 도구주의적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과학기술이 발전했지만 내가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삶의 영역은 넓지 않다. 인터넷, 휴대폰, 복사기, 버스단말기 등 일상에서 과학기술이 적용된 도구들 뿐이다. 그냥 '그렇구나'하고 대수롭지 않게 살아가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과학에 대해서 이렇다저렇다, 과학이 여기에 이렇게 적용되었구나 하는 실재론적 측면에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면 과학에 관심이 없다고 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가지 읽은 이유는 있다. 그것은 뭐랄까 과학의 대서사시를 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세계관이 일련의 믿음의 연결로 이루어진 퍼즐모음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중심 조각은 변하기 힘들어도 중심 조각에 맞다면 주변 조각은 어떻게 다뤄져도 괜찮구나를 발견했다. 이와 같이, 사람 역시 자신만의 세계관(가치관)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심의 세계관은 그가 살아 있던 기원전 400년 경부터 1600년대까지, 즉 2,000년 가량 이어졌다. 일부 수정은 있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심적인 믿음을 중심으로 과학이 발전했다. 물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그의 세계관은 새로운 세계관인 뉴턴의 세계관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세계관을 형성하는 원리는 동일하다는 점에서 새로웠다.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3부에서 다루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이라는 개념이었다. 역시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시간과 공간, 그에 따른 타인에게도 동일할 것이라는 믿음에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라는 의문을 던지는 부분이었다. 물론 '합리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에서는 산과 땅에 사는 사람의 시간은 조금 차이가 난다고 하지만 그 차이는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고 사는 게 현명하다. 하지만 이런 당연함에 대해서 '절대'라는 표현을 하는 줄 몰랐다. 또 한편으로는 당연시 했던 부분이 '아! 그렇네, 당연한 게 당연한 것이 아니구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모든 순간과 공간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당연시 했던 일상에 대해 신기하게 볼 수 있게 된 시간, 또한 과학 역시 일종의 믿음 체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시간, 교육을 통해 당연하게 생각했던 지금의 과학적 사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지금에 이르렀음을 돌아보는 시간, 과학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었던 시간, 마지막으로 나의 무지와 무관심한 일상을 깨닫는 시간을 이 책을 통해서 선물받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언제 내가 이렇게 두꺼운 '과학'책을 읽어볼까 싶기도 했다.

 

 

아래는 읽으면서 밑줄친 부분과 "오! 그렇구나" 하면서 읽었던 부분.(은 블로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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