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 - 과학적 생각의 탄생, 경쟁, 충돌의 역사
리처드 드위트 지음, 김희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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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young-taek/222054513764

 

[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

 

 책은 주로 과학사과학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세부적인 내용을 파고드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런 세부 사항이 입문자들에게 어떻게 보일지 간과할 때가 많다. 입문자는 흔히 너무 상세한 내용을 접하면 '이런 것에 신경 쓸 이유가 있을까?' 고개를 갸웃하며 발길을 돌린다.

 

 

이런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상세하고 세부적인 내용이 중요하긴 하지만, 더 큰 그림을 파악해야만 그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에서 그런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아주 굵은 붓으로 그려 세부사항이 상당히 생략된 것은 인정하지만, 내가 아는 한 정확한 그림이다.

 

 

이 책의 목적은 ① 과학사와 과학철학의 기본적인 쟁점을 소개하고, ②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 뉴턴 세계관으로의 전환을 탐구하고, ③ 특히 상대성이론과 양자론, 진화론 등 최근의 과학발전에 따라 서구 세계관이 직면한 도전을 탐구하는 것이다.

_서문 p.7-8 中

 

과학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건 아마, 초등학교 때부터 이지 않을까 싶다. '과학'이라는 교육과목이 있으니까. 또한 과학에 그나마 오랜 시간 투자했던 순간은 수능준비할 때 뿐이었다. 그래서 과학에 대해서는 고등학교 수준에 불과하다. 정확히 설명은 못하지만 어렴풋이 기억하는 정도이지만.

 

 

생각해보면, 일상에서 과학을 접목해서 생활하는 것은 거의 없다. 간단히 말해, 이과라서 과학은 수능을 준비했지만 그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 확실히 알았다. 나는 과학을 모른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게 어떤 유익함이 있을까?" 모르겠다. 그냥 읽기 시작했다. 서평단에 신청해서 당첨되었으니까. 근데 한편으로는 제목에 끌렸던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 지식의 한계를 알고 싶었고, 세계관이라는 키워드에 꽂힌 게 분명했다. 그래서 천천히 꾸준히 읽었다. '꾸준히'라고 표현한 이유는 책의 두께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감사의 글부터 있는 내용을 빼도, 무려 573쪽에 달한다. 또한, 과학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천천히 읽어나갔다. 물론 뒷부분(특히 3부부터)에서는 이해하는 것을 사실상 포기하고 읽는 것에 의의를 뒀지만..

 

 

우선, '이 책은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조건이 붙지만 '그렇다'라고 말하고 싶다. 1부에 있는 경험적사실/철학적사실 등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원리들에 대해서 예를 들어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이해하는 데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조건은 붙는다. 책이 두껍고 그림은 별로 없고, 글자로 가득하다보니 막막함은 있다. 그래서 '꾸준히' 읽으면서 정리와 정립을 해나간다면, 저자의 말처럼 '큰 그림'을 그리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만일, 세부적인 내용까지 이 책에 담겼더라면 아마 1,000쪽은 훨씬 넘지 않았을까 싶다. 읽으면서 생각해봤던 부분은 각 장 뒤에 도식화해서 나타냈다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상태를 알았다. '아, 내가 과학을 전혀 모르는 구나'. 과학의 발전으로 윤택함은 누리지만 사실 무관심했다. 그냥 뉴스에서 발견이 되었다고 하면 '그렇구나'하고 넘어갔다. 또한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경험적 사실과 철학적 개념/개념적 개념 부분을 읽으면서 데카르트가 떠올랐다. '눈 앞에 있는 모든 것이 실제(real) 실재(존재)하는 것이 맞는가'라는 생각 끝에, 유명한 "cogito ergo sum, 즉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그의 깨달음이 떠올랐다. 사실 우리가 당연시 여기고 있는, 과학적이라 생각하고 있는 대부분은 경험적 사실에 근거한 것보다 세계관을 구성하는 믿음의 퍼즐들로 이루어진 것이다. 과학적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다 경험적으로 파악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없을 뿐더러, 하나하나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학적이라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합리적이라는 말은 과학적이라는 말과 동일시 될 수 없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철학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 A가 그러하니까 B도 그러할 것이다'라고 여기는 것은 과학적이라기 보다 쉽게 생각하기 위한, 삶의 경제성을 위해 그렇다고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믿음의 다른 모습인 것이다.

 

 

또한 읽으면서 깨달은 사실은, 나는 과학을 도구주의적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과학기술이 발전했지만 내가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삶의 영역은 넓지 않다. 인터넷, 휴대폰, 복사기, 버스단말기 등 일상에서 과학기술이 적용된 도구들 뿐이다. 그냥 '그렇구나'하고 대수롭지 않게 살아가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과학에 대해서 이렇다저렇다, 과학이 여기에 이렇게 적용되었구나 하는 실재론적 측면에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면 과학에 관심이 없다고 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가지 읽은 이유는 있다. 그것은 뭐랄까 과학의 대서사시를 보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세계관이 일련의 믿음의 연결로 이루어진 퍼즐모음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중심 조각은 변하기 힘들어도 중심 조각에 맞다면 주변 조각은 어떻게 다뤄져도 괜찮구나를 발견했다. 이와 같이, 사람 역시 자신만의 세계관(가치관)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싶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심의 세계관은 그가 살아 있던 기원전 400년 경부터 1600년대까지, 즉 2,000년 가량 이어졌다. 일부 수정은 있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심적인 믿음을 중심으로 과학이 발전했다. 물론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그의 세계관은 새로운 세계관인 뉴턴의 세계관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세계관을 형성하는 원리는 동일하다는 점에서 새로웠다.

 

 

특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3부에서 다루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서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이라는 개념이었다. 역시나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시간과 공간, 그에 따른 타인에게도 동일할 것이라는 믿음에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라는 의문을 던지는 부분이었다. 물론 '합리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라는 책에서는 산과 땅에 사는 사람의 시간은 조금 차이가 난다고 하지만 그 차이는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고 사는 게 현명하다. 하지만 이런 당연함에 대해서 '절대'라는 표현을 하는 줄 몰랐다. 또 한편으로는 당연시 했던 부분이 '아! 그렇네, 당연한 게 당연한 것이 아니구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모든 순간과 공간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당연시 했던 일상에 대해 신기하게 볼 수 있게 된 시간, 또한 과학 역시 일종의 믿음 체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시간, 교육을 통해 당연하게 생각했던 지금의 과학적 사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지금에 이르렀음을 돌아보는 시간, 과학의 역사를 훑어볼 수 있었던 시간, 마지막으로 나의 무지와 무관심한 일상을 깨닫는 시간을 이 책을 통해서 선물받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언제 내가 이렇게 두꺼운 '과학'책을 읽어볼까 싶기도 했다.

 

 

아래는 읽으면서 밑줄친 부분과 "오! 그렇구나" 하면서 읽었던 부분.(은 블로그에..)

 

https://blog.naver.com/young-taek/222054513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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