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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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무기, 병균, 금속이지만, 막상 총이나 세균, 철기 문명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다.
저자는 인류 문명의 불평등을 낳은 이 3가지 요인이 오늘날과 같은 세상을 만드는 데 얼마나 결정적인 구실을 해왔는지를 서술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요인들이 왜, 어떻게 발생했는가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 관심은 저자가 조류 연구를 위해 거주하던 뉴기지에서 만난 알리라는 인물의 질문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알리의 질문은 이렇다. '왜 우리 흑인들은 백인들처럼 그런 '화물'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이 질문에 대답해왔다. 그 중 가장 악질적인 대답은 인종주의적인 대답이다. 이젠 드러내놓고 인종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이는 없겠지만, 생물학적인 측면에서 문명의 불평등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종종 있다. 이러한 설명방식은 문명의 불평등이 우리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에 불평등은 필연적인 것이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란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

알리의 질문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은 역사학같은 분야에서 시도되는데, '역사'란 말뜻에서 볼 수 있듯이 선사이전의 시간에 대한 설명은 다른 분야에 맡기고 만다. 역사학적 설명만으론 특정 민족의 성취나 위대한 정치가의 결단이나 전쟁같은 (비교적) 단기적이고 우연적인 흐름은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이전의 더 결정적인 요인이 왜 발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우리가 딛고있는 거대한 땅덩어리의 모양에서부터 찾는다. 가로로 뻗어있는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과 세로으로 뻗어있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대륙의 차이로부터. 땅덩어리의 모양으로부터 어떻게 인류문명의 차이가 설명될 수 있을까? 책에 써 있다.

알리의 질문에 대한 대답외에 이 책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은 우리같은 한국사람들을 위한 건데,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확인이다. 아직도 한자병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고 미국인 제레드 다이아몬드에게 한 수 배우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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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시계공
리처드 도킨스 지음 / 민음사 / 199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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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생소한 책제목을 보며 이게 왜 생물학책의 제목이 됐을까 생각해보았다. 저자가 설명하는 책제목의 의미는 이렇다. '눈먼'은 궁극적인 목적이나 장기적인 이익에 대한 계획 없는 맹목성이며, '시계공'은 정교한 자연(시계)을 만드는 자연법칙--자연선택론(장인)이다.

도킨스는 정말 완강하고 아주 비타협적인 자세로 진화론을 설명하고 있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반론을 망치로 부수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의 설명은 통쾌하리만큼 박력 있어서 아마도 창조론 옹호자들이 보기에는 아주 불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무생명 상태에서 오늘날과 같은 생명이 발생할 가능성은 보잉 707의 부품이 우연히 태풍에 날려 조립될 정도의 가능성과 같다는 얘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복잡하고 경이로운 생명이 무생명상태에서 어떻게 생겨날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컴퓨터를 이용한 바이오몰프 실험(인공생명 연구와도 관련있다), 타이핑 실험 등 재미있고 신선한 방식의 연구로 설명해 나가고 있다.(이 책이 나온 지도 오래되었으니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그리 새로울 건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 책은 저자의 또 다른 책인 <이기적인 유전자>와 더불어 다윈주의에 대해 접해보고자하는 이들에게 가장 반갑고 흥미로운 책이 될 거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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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월터 J. 옹 지음, 이기우 외 옮김 / 문예출판사 / 199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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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얘기 또하기, 구구절절 리듬을 타면서 말하기, 버럭버럭 화를 내면서 말하기. 시골 할아버지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본 것일 것이다. 옹은 시골 할아버지들의 이런 태도가 말의 세계와 글의 세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임을 설명해 준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말을 사용할줄 안다. 아무리 원시적인 생활방식을 고집하는 종족이라고 하더라도. 그러나 글은 다르다. 글은 그 역사가 길어야 5000전 쯤에야 만들어진 '최신 발명품'인 것이다. 시간의 제약을 받지않고 보존할 수 있고 소지할 수 있고 자기혼자 쓸수 있어 반성적인 발화를 가능케한 '글'은 '말'만 있었던 이전사회와는 전혀 다른 인간성과 인간사회를 만들었다.

월터 옹은 글이란 '물체'가 인간 사회를 얼마나 심각하게 변화시켰는지, 그로 말미암아 이제는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지는 구술성은 어떤 것인지를 자세하고도 재미있게 전해준다. 더 나아가 인쇄로 말미암아 문자성이 결정적으로 확대되었다는 것과 TV, 라디오 등 전자매체의 발달로 새로운 구술성이 출현하는 조짐도 전해주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쓸 때에는 인터넷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이고 퍼스널 컴퓨터의 보급이 겨우 시작될 때였으므로 제2의 구술성에 대한 사례들이 덜 풍부했다고 볼 수 있다. 아마 지금쯤 쓴다면 미디어 구술성에 대한 얘기가 풍부해지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이 국내에 번역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지만 이미 인문과학 분야의 고전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행간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의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책 소개대로 어느 한 전공분야를 위한 책이라기 보다 인문, 사회과학 전 분야를 아우르는 교양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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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본능 - 상 - 정신은 어떻게 언어를 창조하는가
스티븐 핀커 지음, 김한영.문미선.신효식 옮김 / 그린비 / 199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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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본능이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말일까해서 책장을 펼쳐보았다. 언어가 본능이라는 것이다.

언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생득적인 능력이며, 세계에 있는 5000~6000개의 언어는 모두 다 보편문법이라는 설계도에 따른 표현형이다라는 촘스키의 주장을 더 밀고나가, 언어는 인간이라는 종의 진화상의 이익을 위해 습득된 본능이며 우리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언어학 뿐아니라 인지과학, 뇌신경학, 생물학, 인공지능 등 현재 진행중인 여러 학문분야의 최첨단의 연구성과를 아우르며 그 논의를 펼치고 있다. 이 책은 주장만큼이나 글투도 명쾌하다. 그리고 화려하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글을 읽다보면 어느새 언어학 논의의 한가운데 들어와있는 느낌을 받게된다.

이뉴잇(에스키모) 족에는 눈을 표현하는 단어가 수십가지라는 워프의 가설처럼 우리가 사실이라고 알고있던 주장이 허무맹랑한 것이었음을 깨닫는 것이나, 'Time flies like an arrow ; fruit files like a banana'라는 경구를 알게되는 것도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얻을 수 있는 지적 즐거움의 하나이다. 뭔지 궁금하다구? 책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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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에서 인공생명으로
미첼 월드롭 지음, 김기식 외 옮김 / 범양사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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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원제목은 '복잡성 : 질서의 가장자리와 혼돈으로부터 발현하는 과학'이다. 이 책을 사게된 건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다행이었는데, 이렇다할 책소개도 없었고, 책표지 디자인도 정말 흥미없게 보였기 때문이다. 몇 페이지 읽어보고 사서 보았는데, 정말 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카오스 이론, 인공생명 게임, 진화 시뮬레이션 등 여러가지 모습으로 알려진 이 분야를 아우르는 명칭이 복잡성의 과학이라 한다. 이 새로운 과학이 재미있는 이유는 이전에는 각자 분리된 학문으로 알려진 것들을 통일하는 설명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방글라데시의 인구증가가 계속되는 이유(주민들 역시 인구증가가 달갑지않은 현상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와 마이크를 스피커 앞에 놓으면 잡음이 갑자기 커지는 현상을 동일한 원리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물학, 경제학, 물리학, 전산학 등 독립된 영토를 갖던 기존의 학문들이 크로스오버하기 시작한다.

저자 미첼 월드롭은 산타페 연구소를 중심으로 이 세계를 안내해주는데, 그 재능이 정말 탁월하다. 때론 산타페 연구소의 오솔길에서 나눈 대화를 슬적 들려주기도 하고, 때론 크리스토퍼 랭턴의 행글라이더 사고를 얘기해주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놀라운 학문분야에 대한 깊이있는 설명을 해주고 있다. 저자 자신이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물리학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지적 호기심을 잃지 않는다면 누구나 이 책을 통해 복잡성의 과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탐험하고, 그 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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