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뇌 영혼 신 - 심리학과 신앙에 관한 허심탄회한 대화
말콤 지브스 지음, 홍종락 옮김 / IVP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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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에 대한 정돈된 이해

말콤 지브스의 마음 뇌 영혼 신을 읽고

 

심리학에 대해서는 일단 의심을 눈빛을 주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심리학과 신앙이 양립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이 말콤 지브스의 간결하고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많은 부분에서 정리하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천문학, 기독교생물학, 기독교화학이 따로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화학은 화학이고, 천문학은 천문학으로도 하나님을 드러내고,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 말합니다. 목사의 교회 사역과 신학만이 하나님의 사역과 학문일 수 없습니다. 모든 일이 주로 말미암아 거룩하고 되고, 모든 학문도 하나님의 은사입니다.

 

심리학과 신앙에 대한 갈등에서 시원하게 털고 일어날 수 있게 해 줄 유익한 책입니다. 눈부시게 발전하며 진행되는 신경심리학의 진보 속에서 막연한 두려움 속에 앉아 있지 않아야 합니다. 신앙마저 뇌의 특정부분에 위치하고 있다는 환원주의적인 주장들은 얼마든지 반박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과학적인 발전을 긍정하고 인정하면서도 얼마든지 변증가능하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음에도, 발전을 부정함으로 오래해묵은 낡은 이론으로 변증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이 대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fMRI 스캔과 같은 과학의 발전으로 뇌의 기억과 회상의 흔적들을 예측할 수 있게 된 일들은 뇌와 마음이 밀접한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내는 보다 명확한 증거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가르치시는 대로 우주와 사물, 사람을 이해하는 도구인 지성을 통해 일으키시는 지식들이 결코 주의 교훈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오히려 밀물처럼 급하고 빠르게 밀려드는 일들을 환영해야 하고, 그로 힘입어서 하나님의 창조세계와 사람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리고, 주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프로이트나 행동주의 심리학자인 스키너와 같은 반세기 이전의 구닥다리 심리학을 한참을 넘어서서 급속하게 변화하는 심리학의 첨단을 보여줍니다. 광범위한 세계적 논의들을 제시하고 있고, 균형 잡힌 시각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심리학과 관련하여 읽어야 할 소중한 책들을 소개하고 있어서, 현대 심리학을 보다 심도 있게 파악해 갈 수 있는 입문서로도 성도들과 관심 있는 학도들에게도 유익할 것으로 보입니다. 철학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요슈타인 가아더가 소피의 세계에서 편지를 주고받는 방식과 유사하게, 제자와의 질문을 답변하는 방식으로 가독성 있게 이야기하고 있어 흥미롭습니다.

 

간략한 역사를 다루긴 하지만, 심리학 전반을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현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리학의 변화와 최신의 신경심리학과 관련하여 발생할 수 있는 신앙적 물음들을 차근하게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쉽게 기술했다고 해서 결코 가벼운 책은 아닙니다. 넉넉하게 만족을 줄 만한 훌륭한 도서입니다. 읽고 나서 관심이 더 커져갑니다. 시간이 허락하면, 저자가 소개한 책들을 따라서 더 알아가고픈 마음입니다. 변화무쌍하게 진보를 거듭하는 과학과 학문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 대신 이 책을 집어라고 말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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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투스의 에바그리오스 실천학 그리스도교문헌총서 3
폰투스의 에바그리오스 지음, 남성현 옮김, 가브리엘 붕게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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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투스 에바그리오스는 처음 듣는 인물입니다. 수많은 청교도들 가운에 몇몇 사람들에 대한 지식이 편중 된 것처럼, 많은 교부들에 대한 이해들도 제한적입니다. 유명하고 이름난 사람들만 우리 귀에 전달되는 까닭일 겁니다. 실천학을 통해서 에바그리오스를 알게 되어 기쁩니다. 그는 카파도키아 교부들의 제자였습니다. 카파도키아 교부들에게서 삼위일체론을 명확하게 배웠고 정통신학의 터 위에다 이집트 사막에서 체험적 영성신학의 집을 건축했습니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반복과 강조가 반갑고 즐겁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하늘나라는 영혼의 평정”(70)이며, “하나님나라는 거룩한 삼위일체에 대한 앎이다.”(73)고 말합니다.

 

참된 지식은 박제된 관념적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73)이라고 힘주어 강조합니다. 여덟 가지의 욕정의 뿌리를 그는 자기사랑’(82)이라 말합니다. 성마름 가득한 폭력과 탐욕의 불구덩이로 가득한 인생의 여정에서 배워야 할 지혜란 평정심이라 말합니다. 평정이란 하나님을 향한 시선으로 인해서 누리는 성도의 안식일 겁니다. 그는 말합니다. “덕과 악덕은 지성(知性)을 눈멀게 한다. 덕은 지성(知性)이 악덕을 보지 못하도록 하고, 악덕은 지성(知性)이 덕을 보지 못하도록 한다.”(250) 평정이란 사념과 욕망에서 귀머거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251)

 

무엇보다 하나님을 향한 시선이 평정과 안식을 주는 방책이라고 말합니다. 신학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고, 그래서 신학자는 기도자일 수밖에 없습니다.(46)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 하나님을 깊이 누리는 일은 부요한 일입니다. 세상의 허영과 탐심의 중독에서 깨어나게 할 해독제(165)는 다름 아닌 하나님을 알아감입니다. 진동하고 동요 가득한 땅에서 진동치 않은 나라를 소유한 주의 백성으로 살고, 파도물결처럼 출렁대는 방황을 종식시키고 하나님께 고착된 시선으로 누리는 평정심, 안식의 나그네 걸음으로 그는 초대합니다.

 

루이스 베일리의 <경건의 실천>과 함께 곁에 두고서 읽어야 할 실천적 지침섭니다. 베일리의 책이 매우 실제적이라면 본서는 보다 심리적이고 내면적입니다. 에바그리오수는 영적싸움에 대해서 많이 할애하고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을 싸우는 인생임을 일깨웁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영적전쟁에 대한 강력한 전략집이다. “영적인 삶이란 마귀와 우리 사이에 벌어지는 지속적인 전투다.”(277)라고 이야기합니다. 안식과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를 알아가는 씨름, 주께 속해있음을 확인하며 소욕과의 전투를 통해서 누리는 것이라 말합니다.

 

책을 읽어가는 내내 달달했습니다. 미혹되기 쉽고 오염되기 쉬운 삶의 자리와 영혼의 상태를 점검하게 하는 유익한 책입니다. 세상이 주는 혼미케 하는 유혹의 맹독에서 신음하는 성도들의 영혼을 치료하는 탁월한 치료책입니다. 무엇보다 본서는 그리스도인이 일생동안 쉬지 않고 벌이는 영적전쟁을 위한 탁월한 전투교범이다. 물질적인 소욕과 유혹들로 인한 탈선에 대한 지침 뿐 아니라 내밀하고 속기 쉬운 영적가면들을 벗겨내고 하나님께로만 향하게 하는 탁월한 치료제이다. 우리는 모두 피할 수 없는 영적전쟁 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영적인 파도를 만난 분들게 일독을 권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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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공동체의 성서적 기원과 실천적 대안
차정식 지음 / 짓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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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공동체를 경험해오고 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교회를 오가면서 주일학교와 학생부를 거쳤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교회공동체를 섬기는 위치에 있다. 교회는 새로운 가족이고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주의 소유요 몸 된 지체이다. 성도들은 예외 없이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한다.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교회공동체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교회는 일반사회에서 존재하는 체계적 조직이 아닌 주께로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 정체성이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차정식 교수는 현대 한국교회가 자본주의의 하부구조에 몸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아픔과 고통 속에서 실제적 공동체를 실험하고 있다. 더불어 그는 보다 선명한 기독교공동체의 토대를 위해서 성경적인 뿌리를 파악하고자 본서에서 집필했다. 성경이론이 토대위에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가기 위한 기초다지기랄까? 그의 연구는 신학적 토대를 넘어서 철학과 역사, 심리학까지 망라하는 백과사전적 방식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공동체와 당시 배경을 형성한 이웃공동체와의 소통과 주고받은 영향들을 기술해나간다.

 

기독교공동체의 성경적 기원을 찾아간다. 성경적 공동체란 세상과 구별된 독특한 공동체를 의미한다. 에덴에서의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공동체에 대한 개관은 노아시대의 열린 공동체와 탈주공동체를 형성한 아브라함, 터다지기의 이삭, 조부의 걸음을 역류한 유랑공동체, 이어진 출애굽사건과 광야공동체를 다룬다. 사사시대의 부족들의 자율에 기초한 느슨한 공동체와 비극적 사건들 속에서 이방에 대한 포용을 담고 있는 룻기, 왕정시대를 통한 국가공동에의 강력한 체계와 이로 인해 파괴된 공동체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예언서에 담고 있는 묵시적 희망공동체는 다분히 종말론적이다. 스가랴의 새로운 신정통치체제의 구축이나 이사야의 자연의 질서까지 화평을 회복하과 사망의 사망이 이루어지는 미래를 희망한다.

 

중간기로 알려진 때에 나타난 메시야 대망의 사상과 디아스포라와 회당공동체, 쿰란과 테라퓨테공동체 징검다리 역할, 사복음서에서 선포된 하나님나라의 공동체로 혈통을 넘어 유무상통의 은사중심의 교회공동체의 흐름을 개관한다. 저자는 결론에서 무의미한 논쟁과 세포분열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회공동체의 새로운 공통적인 것의 재발견을 권한다. 창발적인 새로운 토대발견을 찾아나가라는 촉구다. 공동체의 규모가 비대화되면 공동체성을 잃어버리기 쉽다고 경고한다. 성장이 교리가 되어버린 한국교회에 대한 따끔한 비판이다. ‘환대의 구멍을 통해 타자를 수용하는 공동체형성에 있어 양적팽창은 가장 멀리해야 할 적인 셈이다.

 

부단한 성찰을 통해 공동체의 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더불어 희락의 공동체성회복을 강조한다. 고대부터 공동체의 기초로 이원론적 금욕주의가 지배해 왔다고 비판하면서 주께서는 먹을 것을 탐하는 자요, 술꾼의 친구라는 비방을 자초하신 분이며,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셨음에 주목한다. 먹고 나눔의 물질성을 부인하지 않아야 하며 희락이 충만한 식탁공동체를 구현해 나가라고 조언한다.

 

내게는 보다 진보적인 공동체에 대한 담론이다. 그의 공동체론은 내게 급진적인 공동체론으로 비추어진다. 그의 주장은 내게 로널드 사이더, 짐 윌리스와 존 하워드 요더 등과 같은 미국의 급진적 제자도의 느낌을 가지게 한다. 자본주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 끊임없이 고민해야할 교회 공동체에 대한 그의 고뇌는 내게 적지 않은 고민들을 던진다. 더불어 성경적 공동체에 대한 깊은 연구는 큰 자극이 아닐 수 없다. 성경적 지평의 횡으로 오가는 역사적 배경과 철학적 사상의 이야기는 많은 유익이다. 공동체에서 횡적인 형제간의 연대와 환대의 강조와 더불어, 은혜로 선물로 불러내신 주권자 되신 주와의 교통에 대한 균형 있는 강조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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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복음주의 지형도 - 세계기독교 관점에서 보는 복음주의 역사
이재근 지음 / 복있는사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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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에 대한 명쾌한 설명이다. 저자는 복음주의라는 용어를 통해서 종교개혁 이후의 교회사와 교파의 분열사를 깔끔히 개관하고 있다. 그간에 듣지 못해 답답했던 연결고리들이 시원하게 드러난다. 단순한 역사의 개관이 아니라 복음주의의 분파들에 대한 정확한 지도를 제공한다. 우리가 경험하고 보고 있는 복음주의의 온갖 사상들의 뿌리를 훤히 드러낸다. 교파와 신학의 뿌리와 분파에 대한 이해에 호기심과 갑갑함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집어야 한다. 더욱이 한국교회가 오랫동안 미국의 영향을 받아왔다는 사실과 현대에 영국신학의 주도성을 생각한다면, 가장 핵심적인 근,현대 사상을 개관한 이 책이 적합할 것이다. 쉽다.

 

16세기의 복음주의는 로마교회에 저항한 개혁주의를 통칭하여 복음주의라 불렀다. 하지만 18세기의 복음주의는 세속화에 대한 저항운동을 의미했다. 20세기의 맥락의 복음주의자유주의에 대항한 근본주의의 게토화된 형식을 타계하기 위해 등장한 신복음주의를 의미했고, 21세기의 복음주의란 보편적 신앙고백아래 모인 느슨한 연대를 의미한다. 개혁파, 알미니안주의, 오순절과 고교회파를 망라한다. 저자는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복음주의의 지형도가 극적으로 변화했다고 말한다. 유럽의 세속화와 함께 유럽의 기독교 몰락과 남반구로의 이동이 이루어졌다.

 

서구기독교의 몰락은 기독교의 세계화를 이끌어 내었지만 여전히 영국과 미국중심의 신학적 발전과 리딩을 계속되고 있다고 말한다. 3“20세기 영미 복음주의의 역사적 발전에서는 미국과 영국의 복음주의흐름을 시원하게 설명해 내고 있다. 미국의 칼 헨리와 헤럴드 오켕가를 중심한 신복음주의운동과 빌리그레함과 풀러신학교를 언급한다. 영국의 중도적 입장을 대변하는데, 우리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존 스토트와 로이드존스, 제임스 페커와 중용적 신학을 이야기한다. 미국의 세포분열식의 나뉨과 논쟁의 연속이었다면, 영국은 틴데일 성경연구회를 중심하여 학문적인 포용성을 취하여 영향력을 주도하고 있다. N.T. 라이트도 틴테일 성경연구회 소속으로 존 스토트의 영향력을 계승받아 지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4지성과 변증: 복음주의자는 어떻게 자기 신앙을 변호했나에서는 계몽주의의 사조가 사라지지 않고 300년이나 지속되는 동안 기독교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게토화되어 세속과 등지거나 계몽주의 즉, 이성의 방법론을 채택하여 변증하는 적응의 단계로 어떻게 나아갔는지 역사적 흐름을 훤하게 개관한다. 20세기 개신교 복음의 변증의 대표자들은 미국에서는 반틸, 칼 헨리, 프란시스 쉐퍼를 말할 수 있고, 영국은 레슬리 뉴비긴, C.S.루이스를 언급할 수 있다. 쉐퍼가 문화변증으로 나아갔다가 말년에 근본주의로 회귀한 것과 달리 C.S.루이스는 문학변증을 통해 보수주의, 근본주의를 망라한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다.

 

5장에서는 로잔대회이후 복음주의는 현저한 변화를 겪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마크 놀의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에서는 미국의 지성주의가 반지성, 반문화주의를 깨뜨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칼 헨리의 복음주의자의 사회적 양심에 영향을 받은 책이다. 로잔대회는 이전과 다른 복음주의로 넘어가는 루비콘 강이 되었다. 3가지의 급진적 변화가 채택되었는데, 사회복음과의 결합, 선교의미가 영혼구원이상으로 정의, 백인중심에서의 탈피 등이 이루어졌다. 분열적 전형을 가진 미국이 주도했다면 이런 결과를 얻지 못했겠지만, 포용적 전형을 가진 영국의 존 스토트의 지도아래에서 성취되었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6장에서 다루고 있는 오순절에 대한 뿌리와 역사개관이다. 이 때까지 본 적이 없는 순복음신학의 뿌리와 역사에 대해서 시원하게 볼 수 있다. 구체적인 발전과 우리가 지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러에서 피터 와그너로 시작된 신사도 운동이나 하나님의 성회즉 순복음 출신의 커닝엄목사로 시작된 예수 전도단”, 영국의 은사주의의 영향을 받은 하스데반목사와 두란노 경배와 찬양’, ‘인터콥’, ‘휫셔뮤직’, 좀 윔버를 기반으로 탄생한 토론토 블레싱까지 시원하고 설명하고 있다. 교회사를 읽어보지만 현대의 영향을 미치고 있는 복음주의에대한 선명한 지도를 손에 쥔 느낌이다. 교회와 구원에 있어서의 깊은 연관성(p.55.)에 대해서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지만, 오랜만에 시원한 현대교회사 지도책을 받아 든 느낌이다. 선물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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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하나님의 주권 - 롬 9:1-11:36 복음주의 설교자 존 파이퍼의 로마서 강해 시리즈 5
존 파이퍼 지음, 주지현 옮김 / 좋은씨앗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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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이퍼 목사의 로마서 강해설교 다섯 번째 책이다. 그의 설교가 좋은 이유는 적절함 때문이다. 지나치게 학술적인 문체로 파고들지 않지만, 정확하고 충분한 석의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의 설교에는 따뜻함이 머물러 있다. 설교자의 심장이 느껴진다. 애써 설득하고 권면하는 음성이 들리는 느낌이다.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자부심이 배여 있어 좋다. 목회자로서의 영혼에 대한 열정과 복음의 효과에 대한 확신이 전달된다. 그의 설교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애써 로마서의 각 부분을 또렷하게 드러내고자 힘쓰고 있다. 차가운 논문체가 아니라 반복과 반복을 통해 설복하고자 하는 목사 됨이 드러나 좋다.

 

앞선 4권에서는 로마서 8장의 하나님의 끊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해서 다루었다. 이번 5권은 로마서 9-11장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메시지다. 오늘날은 평등과 인권에 대한 이해가 보편화 된 사회다.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말하는 복음은 보다 분명하게 설명되고 증거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의 구원 약속에 대한 바울의 변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논증이 반복적으로 설명되고 있다. 동족의 배도와 떨어져 나감에 대한 당혹스러운 질문과 고통으로 시작된 9장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영광으로 마무리되어진다. 바울은 씨와 자녀의 구별(9:7), 민족 이스라엘과 참된 이스라엘의 구분, 육신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의 분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변호한다.

 

복음은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낸다.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부르신다. 이스마엘이 아니라 이삭을 택하셨다. 에서가 아니라 야곱을 선택하셨다. 선택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 강력하게 선언한다. 주권적인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도 항거할 수 없다. 바울은 19-23절에서 토기장이와 진흙의 비유로 하나님의 주권을 설명한다. 물고기가 물을 의식하지 못하듯, 죄악과 교만에 물든 인생은 하나님의 주권대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오만의 더미 속에 산다. 파이퍼 목사는 거듭남의 시금석을 선택과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한다(324).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은 성도들의 위로요 확신의 근거다. 구원이 사람의 믿음과 의지에 달려 있다면, 파도처럼 흔들릴 것이다. 그는 선택의 교리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즐거움과 찬양의 내용이라고 말한다(329). 선택과 구원의 주권은 우리에게 있지 않다. 하나님께 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 있기에 안전하다. 참으로 평화를 누리고 쉴 수 있다. 칼뱅의 반복적인 경고처럼 망령된 호기심’, 우리 너머에 있고, 권리와 인식 밖에 있는 것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는 것은 성도의 위로다.

 

로마서는 복음의 핵심을 깊숙하게 관통한다. 이스라엘과 교회, 율법과 복음, 하나님의 주권과 성도의 삶에 대하여 빼놓지 않고 다루어간다. <로마서>의 불붙는 논증으로 전달되는 복음을 존 파이퍼 목사와 계속해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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