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공동체의 성서적 기원과 실천적 대안
차정식 지음 / 짓다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공동체를 경험해오고 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교회를 오가면서 주일학교와 학생부를 거쳤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교회공동체를 섬기는 위치에 있다. 교회는 새로운 가족이고 그리스도를 먹고 마시는 주의 소유요 몸 된 지체이다. 성도들은 예외 없이 홀로 존재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한다. “교회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교회공동체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교회는 일반사회에서 존재하는 체계적 조직이 아닌 주께로 부름 받은 사람들의 모임, 정체성이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차정식 교수는 현대 한국교회가 자본주의의 하부구조에 몸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아픔과 고통 속에서 실제적 공동체를 실험하고 있다. 더불어 그는 보다 선명한 기독교공동체의 토대를 위해서 성경적인 뿌리를 파악하고자 본서에서 집필했다. 성경이론이 토대위에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가기 위한 기초다지기랄까? 그의 연구는 신학적 토대를 넘어서 철학과 역사, 심리학까지 망라하는 백과사전적 방식으로 성경에서 말하는 공동체와 당시 배경을 형성한 이웃공동체와의 소통과 주고받은 영향들을 기술해나간다.

 

기독교공동체의 성경적 기원을 찾아간다. 성경적 공동체란 세상과 구별된 독특한 공동체를 의미한다. 에덴에서의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공동체에 대한 개관은 노아시대의 열린 공동체와 탈주공동체를 형성한 아브라함, 터다지기의 이삭, 조부의 걸음을 역류한 유랑공동체, 이어진 출애굽사건과 광야공동체를 다룬다. 사사시대의 부족들의 자율에 기초한 느슨한 공동체와 비극적 사건들 속에서 이방에 대한 포용을 담고 있는 룻기, 왕정시대를 통한 국가공동에의 강력한 체계와 이로 인해 파괴된 공동체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예언서에 담고 있는 묵시적 희망공동체는 다분히 종말론적이다. 스가랴의 새로운 신정통치체제의 구축이나 이사야의 자연의 질서까지 화평을 회복하과 사망의 사망이 이루어지는 미래를 희망한다.

 

중간기로 알려진 때에 나타난 메시야 대망의 사상과 디아스포라와 회당공동체, 쿰란과 테라퓨테공동체 징검다리 역할, 사복음서에서 선포된 하나님나라의 공동체로 혈통을 넘어 유무상통의 은사중심의 교회공동체의 흐름을 개관한다. 저자는 결론에서 무의미한 논쟁과 세포분열의 비극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회공동체의 새로운 공통적인 것의 재발견을 권한다. 창발적인 새로운 토대발견을 찾아나가라는 촉구다. 공동체의 규모가 비대화되면 공동체성을 잃어버리기 쉽다고 경고한다. 성장이 교리가 되어버린 한국교회에 대한 따끔한 비판이다. ‘환대의 구멍을 통해 타자를 수용하는 공동체형성에 있어 양적팽창은 가장 멀리해야 할 적인 셈이다.

 

부단한 성찰을 통해 공동체의 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더불어 희락의 공동체성회복을 강조한다. 고대부터 공동체의 기초로 이원론적 금욕주의가 지배해 왔다고 비판하면서 주께서는 먹을 것을 탐하는 자요, 술꾼의 친구라는 비방을 자초하신 분이며, 잡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만찬을 나누셨음에 주목한다. 먹고 나눔의 물질성을 부인하지 않아야 하며 희락이 충만한 식탁공동체를 구현해 나가라고 조언한다.

 

내게는 보다 진보적인 공동체에 대한 담론이다. 그의 공동체론은 내게 급진적인 공동체론으로 비추어진다. 그의 주장은 내게 로널드 사이더, 짐 윌리스와 존 하워드 요더 등과 같은 미국의 급진적 제자도의 느낌을 가지게 한다. 자본주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우리 시대, 끊임없이 고민해야할 교회 공동체에 대한 그의 고뇌는 내게 적지 않은 고민들을 던진다. 더불어 성경적 공동체에 대한 깊은 연구는 큰 자극이 아닐 수 없다. 성경적 지평의 횡으로 오가는 역사적 배경과 철학적 사상의 이야기는 많은 유익이다. 공동체에서 횡적인 형제간의 연대와 환대의 강조와 더불어, 은혜로 선물로 불러내신 주권자 되신 주와의 교통에 대한 균형 있는 강조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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