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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수첩 ㅣ 박람강기 프로젝트 4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남궁가윤 옮김 / 북스피어 / 2014년 5월
평점 :
1958년부터 1961년까지 마쓰모토 세이초가 잡지에 연재한 에세이라고 한다. 세이초의 소설들을 읽어오면서 막연하게, 아, 이 소설들은 '트릭'을 푸는 추리소설이라기보다 범죄자가 왜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추리소설로 쓴 것인가? 이런 것은 서양의 추리소설과 다른가? 하고 생각해 왔었다. 세이초는 이 에세이에서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추리소설을 쓰고 범죄자를 그리고 있는지에 대해서 쓰고 있는데, 범죄의 동기를 밝히는 일이 인간의 묘사를 통해 이루어 진다고 한다거나, 그러한 인간이 왜 생기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사회성으로 보여주려고 한다는 부분이 지금까지 읽은 세이초의 추리소설의 인물들이 왜 그러했는지를 납득하게 했다. 세이초는 죽고 없지만, 자기가 왜 그렇게 추리소설을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써두어서 참 소중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가장 와 닿았던 말은 "그러나 정말로 '사실은 소설보다 기이'합니다.", "일상의 평범한 생활에는 소설 이상의 공포가 있다"라고 하는 부분이었다. 이런 발언이 몇 번이나 나왔는데, 나도 한 40년 살다 보니까, 이 발언이 참으로 와 닿았다. 좀 더 젊었을 때는 소설이나 영화 속의 기이한 일들, 공포스러운 일들이 실제로 일어날 리 없지만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현실은 영화와 소설보다 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 같은 일, 코로나19 팬더믹 상황 같은 일이 일어날 줄이야....
고마쓰가와 여고생 살인사건과 이진우에 대한 글도 있었다. 이진우가 범죄를 일으키게 된 사회적 배경, 가정 환경 등에 대해서도 고려하고 있지만, 역시 "범죄 자체는 더없이 이상한 것으로, 책임을 단순히 사회의 죄로 돌릴 수는 없다"라고 하고 있다. 마쓰모토 세이초가 전쟁은 반대했지만,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인식, 재일조선인에 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러한 것에 대한 세이초의 포지션에 대한 연구가 있는지도 궁금하고 실제로 어떻게 생각했었는지와 관련한 글이 있는지도 궁금하다.정읍에서 군대생활을 했던 그가 65년 이후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도 궁금하다.<북의 시인> 같은 걸 읽어보면 좋을 것 깉기도 하단 생각이 든다. 80년대에 번역되어 있군... 조만간 읽어 봐야겠다.
또 흥미로웠던 부분은 전후 3대 국철 사건에 대한 마츠모토 세이초의 자료 수집과 추측, 그리고 <일본의 검은 안개>와 GHQ 등에 대한 세이초의 포지션 같은 것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일본의 검은 안개>는 아직 안 읽었으니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미국에 대해서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로 쓰여질 수 밖에 없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른 말이지만 염상섭 <삼대> 뒷부분이 미스터리해 지는 것도, 총독부의 검열과 관련지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츠모토 세이초 사진을 보니 뭔가 심술궂은 장난을 칠 것 같은 인상이던데. 어떤 사람이었을까.
야튼 이번 달도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마쓰모토 상!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나는 요즘의 추리소설이 너무 동기를 경시해서 불만이다. 트릭에만 중점을 둔 폐단인데, 해결 부분에 형식적으로 슬쩍 동기 비슷한 것을 붙여 놓은 걸로는 놀이에 불과한 글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동기를 주장하는 일은 그대로 인간을 묘사하는 것과 통한다고 생각한다. (중략) 나는 동기에 사회성을 더 덧붙이자고 주장한다. 그렇게 되면 추리소설도 훨씬 폭이 넓어지고 깊이를 더해서 때로는 문제도 제기할 수 있지 않을까?(22-23) - P22
반전적인 의도로 쓰였어도 ‘추리소설‘인 한, 작가의 사상적 의도는 독자에게 직접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추리소설의 형태로 읽을 때, 독자가 받아들여서 즐기는 것과 작가의 사상적 의도는 서로 분열된다.( - P30
간단히 말하면, 탐정소설을 ‘유령의 집‘ 가건물에서 사실주의가 있는 바깥으로 꺼내고 싶었다 - P32
그러나 정말로 ‘사실은 소설보다 기이‘합니다. - P73
거칠고 무섭게 만드는 데 중점을 둔 소설은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그보다도 생활에 밀착하여 우리 자신이 언제 말려들지 모르는 현실적인 두려움을 그리는 편이, 아무리 담담하고 조용한 문장으로 쓰여 있어도 훨씬 큰 전율을 느끼게 합니다 - P76
수기는 가족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가족과 매우 가까운 소년의 유형은 대체로 외부에 대해서는 냉정하다. 대략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취직난이나 사회에 나온 뒤에 겪었으리라 예측되는 불우함 등 현대 기구의 틀 바깥에 놓인 청년의 허무감이 이 범죄의 배경에 있지 않을까? 재일조선인이라는 특수한 위치도 그의 허무감을 한층 더 조장했으리라.(중략) 청소년 범죄자 대부분이 가정에서 고독하고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함께 생각해 보면,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어디에 있는지 알 듯하다. (151-152) - P151
일상의 평범한 생활에는 소설 이상의 공포가 있다 - P165
나는 처음부터 ‘고유한 의미의 문학‘ 같은 것을 쓸 생각은 없었다. 기성 틀에서 벗어나도 상관 없었고 내 생각대로 자유로운 문장으로 발표하고 싶었다. 가장 효과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지금까지의 형식 등은 아무래도 좋다고 여겼다. 그에 이어지는 일련의 이상한 사건은 모두 이런 방법으로 썼다. - P201
물론 자료만으로는 사건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없다. 자료와 자료 사이에는 계속성도 없고 관련성이 없는 것도 많다. 즉, 커다란 공백의 구멍이 뻥 뚫려 있다. 나는 역사가가 자료를 가지고 시대의 모습을 복원하려는 작업을 모방한 방법을 썼다. - P203
GHQ가 한국전쟁을 구체적으로 계산하기 시작한 것은 1949년 무렵부터일 것이다.
즉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일 년 전이다. 이 해에 마닐라에 있던 CIA가 일본으로 옮긴 것도 이를 증명하는 한 가지라고 하겠다. 1949년에 시모야마 사건, 미타카 사건, 마쓰카와 사건, 아시베쓰 사건 등 철도에 관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들이 모두 철도와 관련된 점에 주목했으면 한다. 작전과 철도는 불가분이고, 수송 관계는 작전의 한 영역이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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