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란한 유리 낭만픽션 8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현란한 유리>는 마쓰모토 세이초의 1965년 작품집이다. 장편이라기보다는 연작소설집 같은 느낌이다. 편집후기에 "마쓰모토 세이초의 방대한 작품 중 드물게 '조선 경험'이 반영된 소설이어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었습니다"라고 되어 있는데, 역시, 한국과 관련된 부분이 아주 흥미로웠다.

 

우선, 1964년이면 한일협정 반대 시위가 한국에서 절정에 달해 있었을 테니, 일본에서도 한국과 관련된 보도나 말들이 많았을 것이다. 마쓰모토 세이초도 당연히 '조선 경험'이 떠올랐을 것이고, 그것이 추리소설에 반영되었던 것 같다.

 

좀 다른 얘기지만 <친일문학론>을 쓴 역사학자 임종국 선생님의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임종국이 친일과 관련된 많은 연구들을 하게 된 계기를 녹음해 놓은 걸 들은 적이 있다. (정확하지 않지만) 옆집인가 이웃에 살던 일본인들이 1945년 8월 15일이 지나자 다시 다 일본으로 돌아가야 하게 되었을 때,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20년 후에 꼭 다시 올꺼다!!!"라고 하면서 갔다는 에피소드를 얘기하면서 일제 식민지 시기에 있었던 역사를 절대 잊으면 안된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해방 이후 20년이 되는 해에 기만적인 '1965년 한일협정'이 이루어졌다. 그 일본인이 진짜 '조선'이었던 한국으로 돌아왔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64년 65년 이 즈음에 한반도는 어떤 이유에서든 일본인의 머릿속에 다시 귀환한 '기억'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집 내에 있는 <백제의 풀>과 <도망>이 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전쟁중 조선에서 군생활을 했던 마쓰모토 세이초의 경험이 드러나 있는 듯하다. "여름이 덥고, 아름다운 조선"의 기억과 후방의 일상과 패전 직전의 일본으로의 도망이 전경화 되고, 식민지 민중에 대한 기억은 후경화 되어 있다. 지금 작품을 분석할 순 없지만, 추리소설이라는 대중문학과 패전의 기억을 분석하는데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세이초가 있었던 병영, 이 작품들에 나오는 병영들은 1945년 이후에 미군 기지가 되었겠지...하는 연결성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살인은 일본 기지가 있을 때에도, 미군 기지가 있을 때에도 일어났을 터이니...또, <현란한 유리> 속의 작품들이 주로 전후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한국전쟁'이 중간중간 등장하는 것도, 일본인, 마쓰모토 세이초의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을 추측해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전공투의 시위를 소재로 한 작품도 기발했다. 나는 작품만 읽어서 세이초가 전공투에 대한 입장이 어떠했는지 잘 모르지만 제국의 엘리트를 만들었던 제국대학을 비판하는 <동경제국대학> 같은 작품을 썼으니 아마도 전쟁과 제국 시대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었으리라 생각된다. <동경제국대학>은 1월에 읽었었는데, 이러한 내용들이 연결되는 듯해서 흥미로웠다. 또, 지난달에 읽었던 세이초의 반생기에 전후에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했던 일들과 관련된 작품들도 눈에 띄어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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