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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상 - 한국근현대민족문학총서 6
이기영 / 풀빛 / 1992년 1월
평점 :
품절
올해는 세이초에 이어서 이기영을 매달 한 권씩 읽기로 했다. 처음 읽기로 한 것은 <땅>. 해방 이후 토지개혁을 하고 48년 이북의 헌법과 정부가 생기기까지의 내용이었다. 1988년 해금 이후 1992년에 나온 이기영 선집 시리즈로 출판된 것을 읽었다. <고향>은 여러 출판사에서 계속 출판되고 있는데, 해방 이후의 이기영 작품들은 1992년에 나온게 다인듯 하다. 생각해보면, 90년대 초반에 카프 작가들 연구하는 연구자들은 얼마나 신났을까? 작품을 모아서 책으로 다시 출판할 수 있게 기획하고, 책 뒤에 월북 이후의 행적을 정리해 두고, 작품론을 열심히 써서 첨부하고, 너무 신났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뭔가 형제애적? 민족주의의 향기가 물씬 나는 듯한 느낌이지만, 책이 작품론도, 연보도 참 소중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땅> 하권에 첨부된 작품론(이상경)에 이기영과 이기영의 문학에 대해 거의 문외한이다시피 한 나에게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내용들이 실려 있었다. <땅>은 이기영의 해방 후 첫 장편소설인데, 48년, 49년에 나왔다. 1960년에 정정판을 내는데, 한국에 출판된 것은 이 정정판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북에서는 1973년에 다시 개작되었다고 하는데, 김일성 찬양을 대폭 삽입하고, 소련 찬양을 삭제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인공 곽바위가 60년 판에서는 첩의 경력을 가진 싱글 여성이었는데, 처녀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기영 연구 논문들 제목에 여성인물 연구가 꽤 되는 거 같았는데, <땅>의 이런 개작 모습도 연구 내용에 들어가는지 궁금해졌다.
서사의 흐름 속에 해방 이후 이북의 제도정비와 법이 제정되는 모습들이 드러나고 있는데, 노동법령, 농업현물세 제정, 남녀평등권 법령, 중요산업 국유화 법령 등등이 차례대로 시행되자, 소설 속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구체적으로 변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흥미로웠다. 1948년 이북의 헌법이 어떤 내용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너무 궁금해서 검색해 보았다. (http://www.ipa.re.kr/ipa2008.artyboardv15/mboard.asp?exec=view&strBoardID=bbs_mnu06_07&intPage=3&intCategory=0&strSearchCategory=%7Cs_name%7Cs_subject%7C&strSearchWord=&intSeq=2231)헌법이 너무 알기 쉬운 단어로 짧은 문장으로 명료하게 쓰여 있어서 깜짝 놀랐다. 특히 제6조는 <땅>과 토지개혁과도 관계가 깊다. 18조의 교육에 관한 조항이나, 23조 혼인 및 가정에 관한 조항이 놀라웠다. 무엇보다 놀라운건 103조. 수부가 서울이라는 것. 85조의 일본통치시대에 판사 또는 검사로 복무한 자는 판사 또는 검사가 될 수 없다라고 명기한 것도 놀람. 48년 남한의 헌법과 이북의 헌법, 일본 헌법을 같이 비교해 보면 엄청 재밌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런 연구는 이미 있겠지?
<땅>이 73년에 개정되었다고 했는데, 72년 북쪽에서는 사회주의 헌법으로 개정을 했다는 것이 떠올랐다. 72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도 지내고,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도 지낸 높은 분이 된 이기영은 그 시대의 정신?이나 이데올로기를 작품에 담아서 개정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작품론을 쓴 이상경은 "<땅>에서 이룩한 소설적 성과가 일제시대의 강압적인 상황하에서 이루어내었던 <고향>의 수준에 훨씬 못미치는 정도에 머무른"다고 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스스로 농촌에서 자랐고 소작농 생활을 겪었으며 식민지 시대의 궁핍을 어느 작가보다도 뼈저리게 경험한 작가, 농촌사회에서 식민지적 자본주의화가 미친 영향과 그것의 극복 방향을 늘 자기의 소설 세계로 담아왔던 이기영에게 있어서 경작하는 농민이 땅을 가진다고 하는 토지개혁은 그야말로 '개벽'이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기영은 일시 작가이기를 잊고 그 사건에 감격한 단순한 체험자의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한다. 인물의 형상화가 잘 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나, 개연성이 없는 부분 등에 대해서 잘 지적하고 있는 작품론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인물들이 가진 미래에 대한 '희망', '들뜸' 같은 것을 나도 감각할 수 있었다. 내가 내손으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나도 땅을 가질 수 있다!(48년 이북의 헌법에서는 "소작제도는 영원히 폐지한다. 토지는 자기의 로력으로 경작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다."라고 되어 있었다.)는 그 벅참 같은 것이 읽는 내내 행간과 책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 몰라..... 이후에 이북의 사회가 어떻게 됐는지 난 잘 모르겠고..... 이 땐 정말 뭔가 기쁘구나! 하는 감각?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민주주의"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감각을 가지고 이해하기 시작하며, 민주주의라서 좋구나!라고 생각하는 장면들도 너무 좋았다.... 젊은이들이 "우리는 혼인도 민주주의로 해야겠으니..."하면서 조혼이나 부모님이 정한 혼인에 반기를 들고 연애결혼으로 고고 하는 것도 재미있고 웃음이 났다. 이 "민주주의의 기쁨"의 기간이란 것이 어느 정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야튼, 흥미로운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