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칼 힐티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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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그 제목만 보아도 그윽한 사색, 안온한 휴식, 그리고 근원적 평화
에 젖어들게 하는 게 있습니다. 사실 책을 처음에 휘릭 한 번 훑으면, 이 책은 제목을 배신하는 그런 류입니다. 특히 현대인들처럼, 쉽게 손을 뻗어 그 직접 효용만 취하고 남은 과대포장용기는 휴지통으로 직행하게 하는 나쁜 습관에 젖은 이들에게는, 이 책의 내용은 실망감까지 안길 수도 있습니다.

"뭐야 이거, 잠이 안 와서 도움을 좀 받으려 했더니, 웬 설교?"

이 책은 무려 한 세기도 넘은 전에 쓰여진 책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전, 저자 칼 힐티는 이미 그런 미래의 독자들이 보일 법한 경박한 반응을 다 예측이나 하고 있었다는 듯 이렇게 말합니다.

"수면제란 결국 인체와 이질적인 화학 약품의 거친 처방에 불과하다. 당신이 잠을 못 이루는 이유는 당신 영혼의 가난과 불안정 때문이며, 이 원인을 다스리지 않고는 그 불면의 고통으로부터, 무슨 약을 쓰더라도 해방될 수 없을 것이다."

얼마나 명쾌하고도 앞을 내다 본 단언일까요. 불면에 대해 그저 기술적이고 대증요법적 접근만을 취하는 입장은, 이 책이 쓰여진 때로부터 근 한 세기 동안 엄청난 양적 연구 결과를 축적해 왔습니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이 벌어들인 돈만 해도, 따로 flow를 측정하자면 천문학적 액수일 겁니다. 하지만, 불면증이 무슨 암이나 에이즈처럼 까다로운 구조를 가졌다고, 때로 치명적 결과를 낳기도 하는 이 질환에 대해 무슨 특효약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없습니다. "불면증"은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난치병"으로 남아 있는데, 이는 그 치유를 위한 접근 방법이 근본에서부터 잘못되었음을 뜻할 수 있습니다.

칼 힐티는 "마음을 낫우지 않고는, 당신은 결코 불면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방법만 잘 찾아 들어갔으면, 불면증은 과학의 도움 없이도 이미 (최소) 한 세기 전에 정복될 수 있었던 질병인 셈입니다. 이 책을 읽어 보니, 과연 사람이 불면증 아니라 그 어떤 고질의 난치병으로부터도, 마음만 깨끗이 다스리고 다잡으면 못 나을 바 없지 않을까 하는, 먼 해원으로부터의 웅장한 노도와 같은 보호감이 밀려 왔습니다. 한 세기 전 칼 힐티가 비록 우리가 지금 누리는 만큼의 물질적 풍요는 누리지 못했을망정, 깨달음과 마음의 안식 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나 조지 소로스, 혹은 빌 게이츠도 다다르고 향유하지 못했을 경지를 이미 보고 느끼고 개척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톨스토이는 "사람에게는 과연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를 그의 우화 속에서 자문해 본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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