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해양분쟁과 중국의 회색지대 전략 이어도연구회 연구총서 6
고충석 외 지음 / 인간사랑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3년 전(2020.11)에 출간되었지만 오히려 긴장이 고조되는 동아시아 정세에 대해 시사해 주는 점들만 보면 지금이 더 의미심장한 독서가 될 듯합니다. 동아시아 바다는 2016년 헤이그 상설중재법원의 결정을 중국이 정면으로 무시하며 필리핀과의 분쟁을 더 확대할 기미를 보이던 때,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분쟁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일본을 상대로 하여 첨각열도(조어대, 조어도)를 둘러싼 대립을 확대하여 세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중국은 수천 년 동안 이어 오던 세계의 중심이라는 고유의 스탠스에 완강하게 집착하기 때문에 주변국은 당분간 이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 역시 이어도를 둘러싸고 중국과 다툼이 있습니다. 이 총서 역시 그 분쟁 아닌 분쟁에 대한 종합적 시야를 제공하고자 기획되었으므로 우리 독자는 이어도 문제를 포함하여 왜 동아시아의 바다가 이처럼 시끄러운지 숙고할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겠네요. 무엇보다, 우리의 영토가 강대국에 위한 위협 앞에 그대로 노출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모두 9장으로 구성되었는데 특이하게도 고충석 이사장이 직접 쓴 1장에서 책의 모든 내용을 직접 요약합니다. 따라서 혹시 책 전체를 읽을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책 전체를 개관한 후 본격적인 독서를 하고 싶은 분은 1장을 특히 꼼꼼히 읽는 것도 좋겠습니다. 

2장은 이서항 한국외교협회 부회장이 집필했는데 p34에서 "회색지대 전략"의 개념에 대해 자세히 서술합니다. 사실 이 대목이 제겐 매우 심각한 의미로 읽혔는데, 지금 러시아나 중국이나 배후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마치 제3자의 위치에서 중재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알고보면 백투백으로 품앗이를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분쟁엔 중국이, 중국의 분쟁에는 러시아가... 또 이 와중에서 가뜩이나 세계적으로 인심을 잃은 미국은 오히려 전쟁의 주범으로 몰리는 등 총체적 난국입니다. 적어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명백하게 러시아가 선제 침공한 사건인데 어느새 미국은 러시아와 동등한 전쟁 책임을 써 가는 분위기입니다. 

이 책에서는 전쟁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화는 더욱 아닌 회색지대 상태를 동아시아의 바다가 상시 유지하는 이런 상황을 중국이 의도한 전략이라고 파악합니다. 고대부터 역사학자들이 갈파한 전략 중에 살라미 책략이라는 게 있는데, 슬금슬금 현상을 변경해 가던 중 눈뜨고 보면 어느새 전체를 다 차지한 채 기정사실화(fait accompli)하는 패턴을 말합니다. 중국은 2010년 당시는 물론 지금도 단독으로 전쟁을 일으켜 주변국을 제압할 역량은 되지 못하므로 이런 식으로 의도를 관철해 가는 거죠. 

이 2장에서는 또한 중국 해상민병대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는데 이 조직은 백만 병력, 15만 척 선박 보유 상황이 추정된다고 합니다. 뭐 상상이 안 가는 만큼의 엄청난 규모인데,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정규군 전력이 생각 외로 적다 싶어도 이런 반관반민의 "민병대"가 있다 보니 평시나 전시나 중국의 군사력을 결코, 결코 경시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성계가 처음부터 사불가론을 들고 나온 것도, 자신이 십 수 년 전에 고려 영토 안에서 직접 상대해 본 홍건적 병력이란 게, 그 질을 떠나 양적인 측면에서 도저히 견적이 안 나오는 상대란 점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무서운 점은 군부 엘리트들에 의해 구체적인 상황이 시뮬레이션되며 그 와중에 새로운 전략(예를 들어 p98의 양배추 전략)이 항상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략은 전략일 뿐이며 구체적으로 전쟁이 터졌을 때 얼마나 효용을 발휘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프로이센의 맹장 몰트케가 말했듯이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이 있으나 막상 전쟁이 터지고 보면 그 계획이란..."인 법이며 어떤 오류 어떤 맹점이 숨어 있었는지는 그저 미지의 베일에 싸여 있을 뿐이죠. 슐리펜 계획 역시 1차 대전이 막상 터지자 그저 탁상공론으로 전락했습니다. 

지금이 과연 전쟁인지 평시인지 애매모호한 상태를 유지하며 어느새 전략 목표를 달성하는 치밀함, 이 역시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안슐루스, 주데텐 합병 등을 연이어 관철시킬 때 쓰던 책략이었습니다. 프랑스는 당시 군사력, 경제력 등 모든 면에서 패전국 독일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우월한 위치였으나 국론이 사분오열되고 정치인들이 사리사욕에 눈 멀어 정신나간 정쟁을 벌이는 통에, 전쟁 개시 후 불과 6주 만에 패망했습니다. 20세기에 국가적으로 큰 망신을 당했다고 여기며 주변국, 특히 한국을 언젠가는 손 봐 줘야 한다고 절치부심하는 중국이 과연 앞으로 미국의 (사실상) 경제 봉쇄 조치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지 궁금해집니다. 물론 제대로된 한국인이라면 그저 "궁금한"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지만 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