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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가지다
주연화 지음 / 학고재 / 2022년 11월
평점 :
미술품은 상속이나 양도에서 세제 우대를 받기 때문에 부자들의 재테크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하며 최근에는 MZ 세대 중심으로 저런 경제적 측면이 꼭 아니라 해도 그저 순수한 심미적 욕구에 의해 관심이 집중되거나 선호된다고 합니다. 어차피 개인의 만족을 위해 뭘 모은다면 꼭 시장 가치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겠으나 기왕이면 뜻있는 동호인들과 소통도 하고 투자 목적까지 달성할 수 있을 때 더 큰 보람을 느낄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감상과 투자 그 무엇에 주안을 두든 간에 작품 자체를 더 잘 알고, 미술품 시장에 대해 더 정확한 이해가 뒤따를 때 나 자신의 물질적, 정신적 만족이 더 커질 수 있겠네요.
마르셀 뒤샹은 고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분수>라는 제목(컨셉트)의 변기 재활용(?) 작품으로 일단 유명한, 지난세기의 미술가입니다. 그의 등장과 새로운 활동은 향후 미술품 창작의 공간과 거래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 많은 걸 시사했다고 평가됩니다. 책 p41에서 저자께서는 그의 작품 "자전거 바퀴"를 평가하며 미술품 작가의 개념과 세계관에 대해 친절히 설명합니다. 그의 등장 이후 평론가와 대중은 "오브제"의 의미에 대해 근본에서부터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예술 작품이란, 대중한테 주목을 받아야 그 성취가 증명됩니다. 반대로 대중한테 인정 받는 것만 신경 쓰는, 이른바 상업예술만 너무 성행해도 그건 그것대로 문제이겠는데, 저자는 애초에 고상한 순수예술과 상업 통속 예술 사이에 경계가 있을지에 대해 의문(p57)을 표시합니다. 고 백남준도 "예술은 어차피 고등 사기"라는 말을 한 적 있습니다.
p75에도 나오듯이 비단 미술품뿐 아니라 모든 상품, commodity, 증권, 부동산 등 인간의 소유욕이 발동되는 목표물들에는 투기 수요라는 게 존재합니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가 갈파했듯이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기도 하는 것이고, 그 자체로는 사람의 생존에 아무 기여를 못 하는 아이템들이 터무니없다 싶은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여기서 재미있는 지적을 하시는데, 주식 같은 것은 일시적으로 시장에서 저평가되어도 그 회사나 공장의 생산력이나 매출에 직접 지장이 생기지는 않으나, 미술품은 한번 그 작가와 함께 가치가 내려가면 회복도 힘들고 또 그때부터 작가의 창의성, 생산성 자체에도 타격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나친 투기적 수요(의 개입)는 작가와 미술계 전반에 해롭다는 취지이시겠는데... 이런 이치는 사실 주식도 큰 차이가 없어서, 오른다 오른다 하다가 결국 주저앉은 종목, 세력이 해먹고 나간 종목은 이후 내내 회복이 힘듭니다. 물론 저자님 지적대로, 주식에서는 예를 들어 시황이 나쁘다고 이에 회사가 "직접" 그 매출에 타격을 받거나 하진 않습니다만.
cultivated class, 즉 "교양 있는 계층(p85)"의 존재... 사실 미술품 시장이란, 일차로는, 대체 미술품에 대해 관심이나 소양이라는 게 있기나 하고, 누가 이렇다더라 찔러 주는 이야기에 일시 혹하거나 트렌드에 마구 쏠리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고유한 느낌, 유니크한 열정(enthusiasm), 흔들리지 않는 안목을 갖고, 전시회나 경매장에 자발적으로 찾아가 자신의 정직한 욕구에 의해 구매도 하는, 교양 있고 예산도 있는 소수, 일부가 일단 선도를 해야 시장에 공정가격 비슷한 게 생기는 게 아니겠나 생각합니다. 변기통이 그저 변기로만 보이는 대중, 혹은 못 배운 속물적인 졸부 등이, 애초에 오브제에다 대고 무슨 의미를 찾거나 예술적 감흥 같은 걸 발동시킬 수가 없습니다. 증시에도 시장 조성자라는 게 있듯이 말입니다.
중세 극소수 왕족 귀족이 커미션을 주고 미술가들에게 활동 공간을 마련했을 때에는 예술이라는 게 천편일률로 종교 테마만 표현할 수밖에 없었겠습니다. 르네상스 들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더 솔직히 표현하는 계층(역시 안목과 재력을 동시에 갖춘)이 등장하자 예술도 그에 상응하여 발전했으며, 책 p122 이하에 나오듯 19세기 들어 자본주의와 시민 계급의 발달이 완전 성숙기에 접어든 프랑스 파리가 미술품을 비롯 각종 문화의 중심지가 된 건 당연했겠습니다.
이러던 게 20세기 들어 미국으로 미술 발전의 중심이 옮겨가고(결국, 돈 있는 곳에 예술도 옮아가는) 종전과 달리 팝아트 등 보다 대중적 성격을 띤 미술이 주류를 이루게 된 과정도 일관된 설명이 가능하죠. 또 이때부터 "브랜딩"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는데(책에서는 p127 이하에서 스컬 옥션의 예를 듭니다) 이제 일반 상품과 미술품 사이의 경계마저 점차 모호해져 가는 시대의 흐름을 드러낸다고 하겠습니다. 사실 소더비 등은 명작을 거래할 뿐 아니라 그 자체가 고급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일류 브랜드입니다.
종전 시대 구간에 갤러리와 큐레이터들의 탁월한 입지와 품격, 평판, 안목이 중요했다면, 이런 영향력의 일부를 이제는 소셜 미디어가 잠식하여 가는 추세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책을 사도 특정 유튜버가 이 책이 좋다더라 방송에서 한번 띄워 주면 그 책에 관심도가 늘어나는 세상입니다. 또 증강현실, NFT 등이 얼마나 미술품 창작의 장(場)과 거래 기회에 깊숙이 침투했는지는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투자 대상, 재테크 수단으로만 미술 작품을 본다 해도 최소한의 어떤 교양과 지식이 갖춰져야 첫걸음을 뗄 수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또 이런 심미안이라는 게 결국은 세상 전체를 조화롭게 받아들이는 관점과 태도 등과 불가분이라는 점도 확인 가능했네요.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