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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권력 지도 - 세계 경제패권의 미래를 포착하다 ㅣ 비즈니스 지도 시리즈
김재현 지음 / 어바웃어북 / 2018년 5월
평점 :
"중국 경제는 그동안 공산당의 탁월한 영도 하에 고속 성장을 했으며...."
"내려가."
"네?"
"내려가라니까."
대개
무지몽매한 기층민중은 그저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되면 정권에서 폭압을 휘두르건 자유를 박탈하건 비굴하게 입을 다무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미 서유럽 제국(諸國)에 생활 수준이 근접해 가는 중국의 중산층, 혹은 교육 받은 엘리트 계층은 정치 현실에
대해 매우 비판적입니다. 저자는 책 중(p185 이하)에서 분명히 태도를 밝히는데, 중국의 중산층이 정권에 대한 지지를 유지하는 건
어디까지나 "경제성장이 지속된다"는 전제를 깔고서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자는 중국의 현실을 두고 "넘어지지 않기 위해 계속
달려야 하는 자전거"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이미 당국에서는 "신상태(新常態. 간체자로는 新常态)"를 운위하며 예전과 같은 초고속
성장 패턴을 다시 보기 힘들 것이라는 듯 기대치를 낮추는 제스처인데, 과연 앞으로 중국의 정치 지형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지켜볼
일입니다. 최근 시진핑이 1인 독재 체제를 강화하는 것도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급한 사정이 숨었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맨 위 문단의
대화는 이 책 중에서 저자가 실제 목도한, 어느 한국 유학생과 중국 북경대(이게 중요합니다) 교수 사이의 대화입니다. "공산당의
위대한 영도" 운운은, 전부는 아니라도 상당수 엘리트층의 입맛에 대단히 맞지 않는, 일각의 분위기를 선명히 반영하는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죠. 2년 전쯤에 도올이 새 책을 내었었는데, 거기 보면 중국 공산당의 영도 체제를 놓고 "세계사에 일찍이 없던
기적"이라든가, 몰락한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를 두고 "인덕이 부족"하다든가, 시진핑을 두고 온갖 역경을 헤치고 인민 대중의
신망을 한몸에 모으게 된 큰 인물이라는 식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저 북경대 교수가 행여 그 책을 읽기라도 하면 뭐라고 평가를
내릴지 몹시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중국관변학자들보다 한국의 몇몇 지식인이 몇 발짝을 더 내디디는 국면을 보는군요. 반미
감정은 386세대들의 공통정서라서 뭐 그러려니 하는데 그렇다고 이게 맹목적인 친중으로 치닫는다면 그건 현지 중국인들마저 비웃을 일
아닌가 해서요.
중국경제의 현실을
분석한 책은 대개 "꽌시" 타령을 하고 뭘 인맥을 잘 다져 놓으라는 둥 평소에 떡밥을 두둑이 먹여놓으라는 둥 천편일률적인 충고가
실려 있습니다. 그러나 대개 구체성이 부족한 데다, 이걸 (잘못)읽은(혹은, 풍설로 주워 들은) 한국인 사업가들은 한국식으로
"접대"를 시도하며 더 큰 무리수를 두다 돈은 돈대로 날리고 성과는 전혀 못 얻고 망신, 경멸은 그것대로 당하는 등 탈탈 털리고
건강은 건강대로 망치고 한때의 잘나갔던 영화를 뒤로 한채 거덜이 나 귀국하는 비참한 신세를 겪는 일도 흔히 봅니다. 이럴 때일수록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불태"라는 고대 중국 병법가 손자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죠. 책 제목이 "중국 경제 권력
지도"입니다. 대개 중국의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이 유사한 지형 상에 분포한다고 여기지만, 디테일로 들어가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데, 그간 우리가 중국에 대해 잘못 알던 상식도 화끈히 교정해 주고, 불리한 건 불리한 대로 팩트를 제시받는 등 유익한
점이 매우 많았습니다.
저자는 중국의
반부패 사정(司正)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눈길로 봅니다. 몇 년 전 민중들도 "우리 시 주석 눈에 잘못 걸리기만 하면 제아무리
고관 대작이나 부호들도 하루아침에 목이 달아난다"며 통쾌해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무지몽매한 군중심리의 발로에 지나지
않으며,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정적(政敵)의 제거, 숙청" 수단 이상이 아니라는 겁니다(서양 언론의 보도 등에도 근거). 경쟁
상대의 부정부패에는 단호히 칼을 빼어 들고, 자측의 비리에는 관대히 눈을 감는다면 이런 사정 조치에 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자는
신 왕조가 구 왕조를 대체하며 들어서고 번영하다 몰락하는 3단계 이론이 지식인들 사이에 큰 지지를 얻는 중이라며 이를
소개합니다. 신왕조 역시 구왕조를 복제한 시스템에 불과한데, 다만 그 과정에서 기득권이 대폭 해체되므로 사회의 숨통이 트이고
생산력이 크게 증대한다는 겁니다. 이때 벌어지는 경제 활성화는 기층 민중으로부터까지 큰 지지를 이끌어냅니다. 이건 중국뿐 아니라
한반도 역사사의 고려-조선 교체기를 상기해도 됩니다. 정도전이 그렇게 큰 신망을 모았던 건 권문세족 지배체제를 해체하고 농민에게
토지를 돌려줬기 때문인데, 1948년 당시 삼칠제 정도의 미미한 유상몰수 유상분배도 당시 농민들에게 "그게 어디냐"며 큰 환영을
받았었죠. 역사 교과서나 한길사 간(刊) <해방전후사의 인식>에도 다 나오는 사항들입니다. 그러던 게 역시 적폐가
쌓이고 쌓이면 결국 구 왕조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게 되고, 모순과 부패가 시스템 감당 수준을 넘어서면 붕괴하며, 이런 패턴이 전
역사를 통해 지겹게 반복된다는 거죠.
저자는
당송 팔대가 중 한 사람인 유종원의 <봉건론(封建论, 封建論)>을 인용하며, 왕실은 민(民)을 조종하여 대호(大戶)를
견제할 수 있지만 군중심리의 변덕스러운 불똥이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날카로운 지적을 덧붙입니다. 이게 성공적이었던 사례로는
마오의 문화대혁명 중 홍위병을 악랄하게 충동질했던 경우가 있었죠.
마윈의
알리바바가 성공한 이유도, 이미 구미에서는 일찌감치 해결된 "트러스트"의 문제에 대해, 간신히 중국 소비자들에게 솔류션을 제공한
그 이상이 절대 아니라고 저자는 단정합니다. 세계를 향해 발돋움하려는 그의 야심이 과연 잘 성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퀘스천마크가 달려 있는데, 앞에서도 지적했듯 이미 유럽이나 미국 등 구매력 높은 시장은 그런 팩터에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죠. 며칠
전 마윈이 한국 기업의 중국 시장 진출을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으나 그런 허울 좋은 감언이설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도 극히
의문입니다.
중국은 전 경제 섹터에
대해 강력한 규제를 실시하지만 유독 인터넷 기업들에 대해서는 대단히 완화된 입장인데, 그래서인지 향후 엔터테인먼트의 미래를 쥐고
있다 할 게임 시장에서의 중국 기업 약진이 매우 놀랍습니다. FT는 최근 "이제는 미국이 중국을 카피하는가?"란 제하의 기사에서
왓츠챕이 중국의 위챗을 모방한 계정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분석을 했다고 저자는 소개합니다. 물론 의미 있는 현상이겠으나 이만큼 경제
규모가 커진 중국이 아직도 남의 기업 전략이나 기술을 훔쳐 오고 베끼는 수준에서 못 벗어났다는 사실이 더 심각하다고 봅니다.
반면 저 위챗 사례는 극히 일면의 반영 아니겠습니까. 또 저자도 지적하듯이, 전근대적인 게임 규제나 선입견은 이제 한국 정부가
과감히 떨쳐 버려야 할 시점이라고 봅니다. 정권도 바뀌었는데 왜 이런 건 바보같이 유지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게임과
VR, AR에 가장 머리 좋은 젊은 인력이 대거 투입되어야 한국처럼 놀기 좋아하는 사회가 그 체질과 잠재력을 산업화,
현금화(?)시킬 수 있습니다. 시진핑도 "왜 중국은 태후(태양의 후예) 같은 드라마를 못 만드냐"고 한탄도 하지 않았습니까.
책을
보니 <인민의 이름으로>라는 드라마가 얼마 전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도 합니다. 불과 며칠 전 의식불명이란
충격적 루머(현재는 그저 산후 조리중이라고 다시 발표가 났습니다만)로 다시 국내 네티즌의 관심을 모았던 추자현의 <회가적
유혹(번역은 "아내의 유혹"인데 다분히 의역이죠)>의 기록을 근 6년만에 깨뜨렸다고 하네요. 이 드라마의 놀라운 점은 그간
소재로 금기시되어 온 "정치인의 부정부패, 정경 유착" 등을 정면 조명했다는 사실입니다. 저자는 덧붙입니다. "만약 공직자 재산
공개 제도 등이 시행되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나라를 파멸 직전까지 몰고간 어느 무능한 대통령이 한국에 있었으나, 이
자가 그래도 하나 잘 한 일이 바로 "공직자 재산 공개, 금융 실명제" 같은 업적이었습니다. 과연 중국은 이런 신랄하고 엄혹한
시험에 마주친다면 감당을 해 낼 수 있을까요? 이게 정말 되면 G2가 아니라 그를 넘어 아예 세계 패권국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