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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더스트 ㅣ Nobless Club 2
오승환 지음 / 로크미디어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처음 ‘뉴욕 더스트’를 읽고 싶었던 것은 표지의 문구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풋내기 사회 초년생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연쇄 살인범으로,
첩보 조직의 숨겨진 암살자에서 뉴욕 한 귀퉁이의 꽃집 주인으로,
피 냄새를 씻기 위해 총 대신 꽃을 선택한 남자』
이 문구에서는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단어들을 한 문장으로 엮어놓았다. 풋내기 사회 초년생과 연쇄 살인범, 암살자와 꽃집 주인은 한 남자가 살아간 길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 남자의 삶이 궁금했다. 어떤 사연으로 이처럼 힘든 삶을 살았을까? 책을 읽기도 전에 이 남자에게 깊은 연민이 생겨났다.
‘뉴욕 더스트’는 오승환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당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다. 국제 관계에서 국익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는 갖가지 부정행위와 그것을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무관심한 사람들, 일상생활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타인을 궁지로 몰아넣는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알 것 같았다.
이 책은 작가의 말처럼 그저 발버둥 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진후이면서 라훌라이면서 존 이엔인 한 남자의 생존을 위한 전투 같은 삶을 그려내고 있다. 때는 통일을 준비하는 남과 북, 야쿠자들의 전쟁으로 혼란한 일본, 내전 발발 직전의 중국의 동아시아와 그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이 각국의 이익을 위해서 첩보 활동을 벌이고 있고, 한 남자의 삶이 타인의 의해 뜻하지 않게 흘러간다.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한 남자의 고달픈 전쟁이 펼쳐진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하늘에서 부여받은 권리가 있다. 이것이 천부인권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런 사상을 주입받았고 인간의 당연한 권리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지만 인권을 보호받기 위해 우린 국가라는 권력을 인정해야하고 그로 인해 힘을 가진 집단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인권의 침해를 받는 일이 발생하게 된 듯하다. 소설에서는 당연한 인권이 권력에 의해 조정당하고 침해당한다. 과학문명이 첨단화 될수록 인권의 침해 정도도 더 치밀해지는 것 같다. 한 개인의 삶이 철저하게 조정 당할 수 있다니...본인의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해 살아가게 되는 삶을 스스로의 선택인 줄 알고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보면 그 권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시나리오 각본대로 움직이게 만들어진 삶, 선택이라는 것도 한정된 삶, 그렇지만 결국은 주인공 스스로가 선택하고 걸어온 자신의 삶이 되어버린 이야기다. 스스로를 되찾기 위한 전쟁인 것이다.
시간적순서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면서 중간 중간 과거의 이야기를 집어넣어 스토리 전개를 더 흥미롭게 한다. 이야기는 한 가지 이야기로 쭉 흘러가 소설에 몰입할 수 있게 했고, 반전은 있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 대부분이 그 반전을 예측할 수 있는 복선이 깔려있다.
영화나 소설이나 서양을 배경으로 하고 외국인이 주인공인 첩보 이야기는 흔하고 흔하다. 그렇지만 한국적인 첩보 소설은 이번에 처음으로 만났다. 한국적인 이야기.... 분단된 국토, 강대국들의 사이에 낀 작은 나라...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을 텐데 그런 이야기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뉴욕 더스트’는 한국적인 첩보 소설이라는 것만으로도 읽을거리가 풍부했는데 거기에 한남자의 삶이 녹아있어 재미까지 더해졌다. 일반적으로 서스펜스 스릴러는 잔혹하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잔인하다는 생각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더 들었으며 불필요한 잔혹행위는 묘사되지 않아 읽는 내내 불편함 맘 없이 소설을 즐길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노블레스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