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에 달 뜨면
백동호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항상 그랬다. 우리나라의 암울한 역사를 접할 때면 그 역사의 참담함과 억울함보다는 그 후 우리의 대처에 더욱 화가 났다.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까닭에 수많은 외침을 당했고 그로인해 수많은 백성이 그 댓가를 치렀다. 그럼에도 그 후 우리 정부나 국민은 철저하게 우리가 당한 일들을 파헤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하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 감추거나 알려고 하지 않거나 빨리 잊어버리려 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점이 역사의 아픔보다 훨씬 마음을 씁쓸하게 했다. 백동호 작가의 『보리밭에 달뜨면』은 한번 더 그 사실을 입증한 샘이다. 나환자를 상대로 생체실험을 했다니...처음 듣는 소리라 더욱 놀랐고 소설을 읽을수록 그것이 사실이라 여겨져서 더 더욱 놀랐다. 한때 만주에 위치한 731부대에 관한 영화가 나오면서 마루타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고 그 잔인함에 치를 떨었던 적이 있었다. 애국이라는 이름하에 아무런 죄책감없이 같은 인간을 상대로 극악무도한 짓을 서슴치 않았던 일본인에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혐오감과 적대감을 느꼈다. 일본소설이나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나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길 정도로 일본에 대한 감정은 좋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전쟁승리를 위한 도구였다고 해도 한센인이라는 사실만으로 통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생체실험으로 목숨을 앗아가다니... 이건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보리밭에 달뜨면』은 일제 강점기에 소록도에서 자행된 나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에 대한 이야기다. 한센인 한상혁의 삶을 따라가면서 그 시대 문둥이로 억압과 핍박을 당한 한센인들의 삶을 재조명했다. 소설은 산에 숨어 살던 한상혁이 문둥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매질을 당해 정당방위로 살인을 저지르면서 시작된다. 마포교도소에 입소한 한상혁이 독거사동 죄수들에게 문둥이라는 이유로 적대와 위협을 받을 때 옆방 죄수 정환채와 대화를 나누면서 과거의 자신의 한많은 삶을 이야기한다. 일제 때 잘못된 보도들로 인해 일반인들의 한센인에 대한 반발은 더 심해졌고 유랑생활마저 힘들어질 때 소록도에서 제4대 원장인 수호가 나환자 낙원 건설이라는 타이틀을 내건다. 많은 한센인들이 스스로 보금자리를 찾듯 소록도로 몰려들지만 나환자들의 낙원 건설이라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731부대의 명령 하에 나환자를 생체실험하기 위한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가족에게조차 버림받는 나환자의 처지를 이용해서 가혹한 강제 노역을 시키고 생체실험의 마루타로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사카의 의해 파상풍균과 괴저균을 이용한 생체실험 대상이 된 것이다. 1만명이 넘는 한센인들이 생체실험으로 아까운 목숨을 버려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듯하다.

  작가는 이 소설이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한 말 그대로의 소설이라 말하면서도 이 글에 인용된 각종 근거 자료들은 사실을 그대로 기록했다고 한다. 이 소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당시 관련자 증언, 소록도갱생원 연보 및 관련 서적, 신문기사, 잡지기사들이고 그 내용들을 소설 곳곳에서 인용하고 있다. 사실을 바탕으로 쓴 허구이다. 그렇다면 소록도에서 나환자들을 상대로 자행된 생체실험은 존재했다고 보여 진다. 어두운 역사의 한 부분으로 아무도 모르게 묻혀 버릴 뻔한 일을 작가가 오랜 노력으로 대중에게 밝혔다. 억울한 삶을 살았던 한센인들의 삶을 우리는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끄집어 내야할거 같다. 더 이상 모른척 한다면 같은 인간으로서 자격이 없다. 이 책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역사를 표면화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통해 역사를 바로 알고 한센인들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한다면 사실에 한발짝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시은 2009-06-28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평 잘 보고 갑니다. 공감가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