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내지 못하는 남자를 안다.

잘 화내지 못하는.

참 착한 사람이지만 그래서 나를 화나게 하는 남자를 안다.

이런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 언제나 좋은 사람인 그가 왜 미울지 생각해본다.

아니 사랑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건지 생각해본다.

그에게 오는 연락에 나는 의식적으로 아니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잡고 그의 물음에 답을 한다.

이런 내가 싫다.

그를 사랑하는 내가 싫다.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이 부담스럽다는 그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는 내가 싫다.

비가 온다. 그리고 어떤 영화가 생각난다.

비 오는 날 이별을 하는 한 부부가 나오는 영화.

그 영화 속 남자 주인공 같은 내 남자. 그리고 그래서 화조차 제대로 낼 수 없는 나.

나는 본디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아니였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나는 자주 화가 난다.

아주 자주 화가 나서 그에게 화내고 싶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모든 것은 멈춘다.

이 글을 쓰며 이틀만에 처음으로 '아'하고 말해본다.

아 내 목소리가 이러했구나. 내 목소리에 섞여있는 쇳소리가 어쩌면 그의 귀에 날카롭게 박혀 아프게 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나 나는 여전히 원한다

그가 나에게 화내주기를. 그가 화를 못 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런 날이면 또 다시 우울해져온다.

아니 그를 사랑하고 나서 나는 우울한 날들이 더 많아졌다. 많아짐에 따라 나는 더욱더 날이 서 이상한 사람이되어간다.

참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앞에서는 그러지 못하는 내가 싫다.

타인의 삶에 관여할 이유도 그래서도 안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살았었는데 그와의 미래를 계획한적도 없으면서 자꾸만 그의 삶을 공유하고 싶은 내가 싫다.

내 어떤 일들에도 그를 끼워주지 않으면서 그저 그의 삶에서 내가 큰 역활을 하고 싶어하는 것만 같아서 싫다.

이런 내가 나도 싫은데 그는 어떠할지 생각한다.

이제는 내가 지칠것만 같다. 나도 내가 지친다.

그만해야하는 걸까.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사랑하고 살고 있는 걸까. 이제 삼십하고 몇년을 더 살았다. 이제서야 이걸 알게된 나는 참 싫다.

아직 어린아이일까. 아직도 이런 걸까.

나는 오늘도 생각한다. 그가 나에게 화내는 것을.

그가 나에게 화내주기를.

혹시 그도 그 영화의 남자주인공처럼 화내는 것의 중요성을 원래부터 화를 잘 못내는 사람인 건인지 화낸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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