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만, 조금 느릴 뿐이다 - 어쩌면 누구나 느끼고 경험하고 사랑했을 이야기
강세형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별을 하기로 했다. 

스무살 무렵 그를 만났고 우린 연인도 친구도 아닌 관계로 오랜시간 함께했다.

이별을 하려고 했다.

아니 이별의 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한참이나 연락이 없었다.

내가 모진말을 했고 그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였으나 내게는 항상 먼저 손을 내밀던 그 사람에게 연락이 없었다.

사실 하루쯤 연락이 없었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고 온 몸이 떨려왔었다.

이젠 그도 지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당연한 것이 나는 너무 변덕스러웠고 남들이 밀당을 할때 밀밀을 하고 있었다.

결혼을 할 생각도 그렇다고 그와 함께 살 생각도 없었고 그는 내게 자신을 좋아하긴 하느냐고 묻는 시간들이 있었다.

나는 물론 그렇다고 그가 물어볼때마다 대답을 했고 그러지 않을때 그에게 그러한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집으로 올라가도 괜찮으냐고 물었다.

내 온 마음이 바닥까지 퍽하고 주저 앉았다.

안도였을까. 혹은 그의 목소리에 이제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던 것일까.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 내 앞에 그가 서 있다.

그로 인해 다시 한국에 머무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음,,,,,,새해를 이곳에서 맞고 싶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한동안 머물고 있는 작은 아파트였다.

그는 한손에 서류가방을 들고 머플러로 얼굴을 칭칭 동여맨채 내게 들어가도 괜찮냐고 물었고 코끝까지 얼어있는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같은 마음이였을까. 그의 온 마음이 나와 같이 무너져 내렸던 걸까.

따뜻한 모과차를 건내는 내 손이 떨렸고 그 잔을 들어올리는 그의 손 또한 떨렸다.

서류가방 속에서 꽃도 아니고 뭐 대단한 선물도 아닌 책을 한권 내밀던 그.

이런 그라서 그의 곁에 난 있고 싶다.

어설프고 뭐든 허둥거려서 아직도 길에서 꼬마처럼 퍽퍽 넘어지곤 하지만 난 여전히 그의 곁에 짐스럽지 않게 남고 싶다.

우리 이렇게 다시 시작해도 괜찮을까.

그가 말 없이 모과차를 마시고 나를 그의 품속에 따뜻하게 품어줄때 나는 조금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아이마냥 그의 품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나에겐 더 이상 가족이라는 것이 없다. 나에게 가족이 생긴다면 그게 그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그에게 그 날 했다.


책머리엔 그의 정갈한 글씨가 언제나 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이 나를 힘들어 한다는걸 언젠가 부터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나도 당신를 어려워하기 위해 당신과 같은 존대를 쓰기 시작했어요. 우리 여전히 서로에게 어려운 사람이길 바라지만 그래도 우리 함께 하기로 해요. 언제나 당신을 참 많이 아끼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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