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집 아티스트 백희성의 환상적 생각 2
백희성 지음 / 레드우드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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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집 ] / 저자 백희성 님의 직업은 건축가 이자 예술가 이기도 하다. 혹은 작가 이기까지도 한 이야기의 글 솜씨는 왠만한 스토리 텔링의 수준을 넘나든다.


책을 받아는 첫 인상은 무척이나 간결한 이미지이고 북 디자인이 심플 하면서도 책 표지에 파놓은 구멍 속으로 소설의 모티브가 될만한 오브제를 심어 놓았다는 점에서 신선한 접근이다.. " 집을 지나다가 문들 아름다운 짐을 볼때마다 그 집의 우편함에 편지를 적어 넣곤 했다" 로 시작되는 소설은 소설이 아닌 듯한 누군가의 독백처럼 시작이된다.


" 당신의 집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은 한 건축가로 부터 " 라는 무작위적인 기법을 사용 해서 혹 올지도 모를 회신에 기대를 거는 예술가적인 낭만이 숨어 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 간혹 그 편지에 대한 담장으로 초대를 받았고 그 집에 숨어 있는 신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엇다 " 하고  , 그중 이책에 소개된 거의 100여년 됨직한 수도원을 개조한 요양원과 파리 근교의 고택에서 벌어지는 신비롭고 미스터리한 출발점은 독자들의 궁금증을 증폭 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자신의 삶이 구태연하고 무언가 정체되었다고 느낄 즈음 새로운 환기를 위하여 쉼을 선택 하기도 하고 , 새로운 여행을 찾아 나서면 삶은 에너지 충전 작업을 하기도 한다. 건축가이기도 한 소설속의 주인공은 나 -루미에르 클레제는 그러한 쉼과 새로운 충전을 위한

건축물을 찾던중 우연히도 아주 저렴하고도 좋은 여건의 부동산이 나와 있다는 중개업자의 소개를 받고 즐거워 하지만 , 중간 중간 수수께기 같은 퍼즐을 찾아 나서는 미지의 여행가처럼 그 건축물에 얽힌 애틋한 사연과 그 속에 살아 왔던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을 공감 하면서 새로운 건축물을 완성 하여야 한다라는 임무에서는 처음 매우 당활 하였을 수도 있으나 그러한 작업의 적격자가 자신이라는 사실과 하나 하나 밝혀내는 데에 있었다 ,, 장장 50여년 전의 기억을 되돌여 집주인 프아스와 왈처와 그의 아들 피터에게 보내는 애틋한 부정이 집안 구석 수석에 비밀로 숨겨져 있다라는 것이다. 또한 사랑하는 아내 아나톨을 떠나 보내며, 아들 피터의 친모 메를인이 나타 나면서 피터를 그녀에게 돌려 주지만 아이가 자라 언젠가는 자신에게 찾아올 것이란 희망을 가지고 그의 유산이 남겨진 페허가 된 수도원으로 가서 자신의 아내 아나톨 처럼 마음이 다친 사람들을 위한 병원 을 만드는을을 하며 ,또한 보살피며 살기로 마음을 굳히고 그리하여 병원의 이름은 4월 15일의 비밀이 된다.... 그녀와 나 그리고 피커가 만난 그날을 기념해서 말이다. ---


비록 소설형식을 빌어온 팩션 형태 이기는 하지만 한사람의 건축가로서 누군가의 인생의 틈바귀를 설짝 젖히고 들어가 몰래 그속을 들여다본 내밀함이 느껴 진다.  기억과 추상의 공간이라는 집을 통해서 수십년에 걸쳐 살아 온 내력이 고스란히 저택의 비밀속에 남겨져 있는 것이다. 


<프랑스와가 제게 알여준 것이 있습니다. 건축가가 조금 부족한 공간으로 만들면 거기 사는 사람이 나머지를 추억과 사랑으로 채운 다른 접니다. 그때 바로 건축이 오나성 되는 겁니다. > - 이 말에 공감 한다 사람도 그렇지만 완벽한 건축물이란 없는 법이다. 그 건축이 스스로 애기하도 내어준 공간과 이야기에 나머지 사람들의 사랑과 그 가족과 함께 희노애락을 같이한 시간들이 그 세월을 채워 넣는 것이 아닐 런가 .. 당신의 흔적을 어디엔가 채워서 나중에 아이들이 자라서 호호 백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서도 손때묻은 문고리와  다락방을 추억 할수 있다면 집안의 역사요 보물이 아닐수 없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현대 건축물의 획일화된 규격화와 일정 시기가 지나서 폐기되는 현대의 아파트 같은 건축물은 당초 부터 그 사람을 위한 고유한 기억과 추상을 전달 하고 남기를 역할을 하기에 꽤 부족한 측면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프랑스 파리가 아니더라도 외국 특정 국가들의 경우 건축물의 보존 기한이나 건축에 대한 법규 자체가 까다롭게 해서 꼭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환경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허용하는 배경에는 이러한 문화적인 배경역사가 있는것도 아닌지 문득 떠올려 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 보이지 않는 집> 의 탄탄한 기억과 추상을 갖춘 조화로운 건축물이 재탄생 하기를 고대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칩니다.. < 첵력거99 >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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