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 크로포트킨 평전 - 모든 권력에 반대한 창조인 아나키스트
박홍규 지음 / 틈새의시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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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두에 --

     

[[ 로맹 롤랑은 “내가 좋아한 톨스토이가 손으로 쓴 것을 크로포트킨은 몸으로 살았다”고 극찬했고, 폴 애브리치는 “크로포트킨은 신 없이도 성인이 되는 과업을 달성했다”라고 말했다. 러시아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으나 예정된 출세의 길을 가는 대신 아나키스트이자 혁명가이자 과학자로서 일생을 바친 표트르 크로포트킨. 독립운동과 민주화 운동을 위해 열정을 불사른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던 러시아의 사회사상가. 한동안 기억의 저편에 묻어두었던 그를 혼돈의 시간 21세기에 소환했다. 이로써 “모든 것은 모두의 것이다. 모든 것을 모두가 나누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간이 사회의 일부라면 사회는 자연의 일부다. 인간과 사회, 자연이 함께 가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함께 찾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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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키스트 , 사전적정의는 다음과 같다. - Wiki Reference. 

아나키즘(영어: anarchism /ˈænərˌkɪzəm/, 프랑스어: anarchisme 아나르시슴[*])은 사회를 아나키의 상태로 만들려는 정치적 철학적 사상이며, 이러한 사상가는 아나키스트라고 한다. 아나키의 상태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지배자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프루동은 그의 저서 《소유란 무엇인가》에서 아나키는 “주인과 군주의 부재”를 의미한다고 언급했다.[1] 역사적으로는 고대의 공동체에서 비롯하여 갖가지 공동체나 고대의 철학, 사상에서도 연원을 찾아 볼 수 있으나, 근대에 이르러 자본주의와 권위주의의 폐해에 대한 반발로 공산주의사회주의와 함께 발흥하였으며, 펑크 문화 등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아나키란 지배의 부재를 의미한다. 과거의 국가주의자들과 권위주의자들은 지배받지 않는 대중을 무지몽매한 야만인으로 보았고, 지배가 없는 사회를 혼돈이라 매도하며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 했다. 그러한 지배계급의 헤게모니에 대항하기 위해 프루동은 자신을 아나키스트라고 규정 했다. 프루동은 아나키는 혼돈이 아니라 진정한 질서라고(Anarchy is Order=), 위에서 강요하는 질서가 아니라, 민중이 직접 세우는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질서라고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다. 


따라서, 아나키즘은, 단순한 반정부와 반국가 운동이라고 하기 보다는, 주로 계급제( hierarchy)에 반대하는 운동이다. 위계질서(hierarchy)가 권력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조직형태이기 때문이다. 국가는 그 계급제의 최고형태이므로, 아나키스트가 반국가인 것은 당연하지만, 반국가만으로는 아나키즘의 정의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것은, 진정한 아나키스트는 국가뿐만이 아니라, 모든 형태의 위계질서(hierarchy)에 반대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1880~ 1900년대의 격동의 20세기를 시작하면서 태동 하게된 , 아나키스트 혹은 아나키짐은 유래가 깊다. 

한국의 독립 운동에도 기여 하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에 대해서도 아나키스트라는 칭호가 붙는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간략 프레임은 다음과 같다.  우리에겐 의열단 이란 이름으로도 불리워 진다. 

그 일제 강점기 나라없는 설음과 권력 혹은 정부의 존재를 부정하며 , 오로지 민중에 의한 혁명과 생활을 꿈꾸워 왔던 이상 주의자이자 현실적인 대안인 대항일 투쟁,   


https://youtu.be/Cxw8jjVjBVg



마찬가지의 시선으로 보자면 , 러시아의 황제 짜르 시대가 있었고, 프랑스의 대 혁명이 발발 한 이후에도 여러개의 권력 층이 형성 되었다.  나라간 전쟁의 기운이 깃든 그 시절  ㅡ오로지 민중과 , 풀뿌리 , 농민들을 위한 크로포트킨의 , 과감한 자유유의적인 발상은 현대인의 철학적 단상으로 보자면 무모하기 까지 한 ㅡ 어쩌면 공동체의 일원 들이 조화 롭게만 돌아 갈수 있다라고 본 , 순진 무구한 , 이상향의 나라 와 구조 다름 아니다. 


1717년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난 뒤에도 레인의 프로레타리아 혁명 자체를 부정 하며 또한번의 무권력 무소유의 사회를 주창해 왔던 그는  오랜 세월 만큼이나,  민중들의 지지를 받아 왔던 한편으로 ,  권력자 혹은  정책을 담담한 정부의 입장에선 어쩌면 가시와도 같은 존재 이었다. 


지금 100여년이 흐른 , 이후 그의 글을 역작 으로 읽어본 소회는 , 마르크스 , 엥겔스의 사상만으로도 세상을 바꿔 볼 수 있엇다라고 주창 하고 , 젊은 시절을 불태웟던 수많은 혁명가들을 대신 해서 , 여전히 , 그의 전설같은 이타적인 사회 공동체와 생홣은 어쩌면 ,  진화론자 다윈의  적자 생존  그리고  생물과학자인 도킨스의  경쟁 자연법칙과 , 이기적 유전자 기질에 발현한 , 현실 세계의 이상향은 어쩌면 100여년 훨씬 전부터 꿈꾸워 왔으나 이루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 마음 한구석에라도 민초들 혹은 약자들의 공생 관계를 모색해왔던 자본 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뛰어 넘는 새로은 헤게 모니 철학을 구성 해보고자 하는 정치가나 전략가는 아직도 그 의 , 아나키스트적 기질과 철학을 이끌어 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설사 현실이 그러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100여년도 더된 시간이 흘러도 그의 정신에 대한  추모 행렬은  끊이질 않는 이유이다.. Written by E 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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