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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가 들려주는 화학 이야기 - 16개의 결정적 장면으로 읽는 500년 화학사
후지시마 아키라 외 지음, 정한뉘 옮김 / 동아엠앤비 / 2025년 12월
평점 :

이 포스팅은 동아엠앤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학창시절에 배웠던 화학은 어려운 화학 기호와 공식을 암기하고 어떤 공식이 누구의 것인지, 어떤 결과들을 도출했는지 외우기에 바빴다. 덕분에 그닥 재밌게 공부했던 과목은 아니었다. 이번에 보게 된 <화학자가 들려주는 화학 이야기>는 화학을 ‘완성된 결과물’이 아닌, 당대 과학자들이 마주했던 ‘결정적 질문’과 그에 대한 ‘응답의 역사’로 정의해 흥미를 끈다.
특히 이 책은 광촉매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후지시마 아키라를 비롯한 현역 화학자들이 집필한 이 책은 500년 화학사를 16개 테마와 60여 명의 인물 중심으로 재구성하여 과학적 원리가 탄생한 현장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질문-인물-원리’로 이어지는 유기적인 구조에 있다. 저자들은 화학의 기초부터 열역학, 광화학, 심지어 현대의 양자화학까지 방대한 영역을 다루면서도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각 장은 "왜 화학이 정량적인 학문이 되어야 했는가?", "연소란 무엇인가?"와 같은 근원적인 질문으로 시작한다.
예를 들어, 보일과 돌턴, 아보가드로의 에피소드에서는 단순히 법칙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어떤 실험적 한계를 극복하려 했는지, 왜 이전의 가설을 부정해야 했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다 보면 '보일의 법칙'이나 '아보가드로의 법칙'이 단순한 암기 대상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치열한 사유의 산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일본 현역 과학자들의 시선이 담겨 있어, 성과 위주의 요약보다는 사고의 경로와 한계, 그리고 수정된 가설까지 가감 없이 담아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기존의 과학 독해 도서들이 주로 지문 분석이나 정보 습득을 목적으로 한 ‘텍스트 중심’의 접근을 취했다면, 이 책은 ‘맥락과 비주얼 중심’의 입체적 구성을 보여준다.
또한 단순한 비문학 지문 읽기가 아니라, 과학자의 생애와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을 결합한 서사 구조를 취한다. 이는 독자가 과학적 개념을 파편화된 정보가 아닌 하나의 ‘이야기’로 기억하게 만든다. 본문에 수록된 실험 장치 그림과 개념을 풀어낸 도식, 과학자들의 초상과 관련 도판은 추상적인 이론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변환해 준다.
각 장 끝에 배치된 칼럼은 본문에서 다루지 못한 흥미로운 뒷이야기나 현대 과학과의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이는 단순 독해 책에서는 보기 힘든, 교양 과학서로서의 깊이를 더해 준다.

책 곳곳에 실린 과학자들의 인용문은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과학 지식에 인문학적 숨결을 불어넣는다. “우리의 지성으로는 한없이 놀라운 것들을 자연은 최고로 간단하고 단순하게 해낸다”라는 갈릴레이의 말처럼, 복잡한 수식 뒤에 숨겨진 자연의 질서를 찾아내려 했던 과학자들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구성은 청소년들에게는 교과서 속 개념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계기를, 성인들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Scientific Literacy)을 제공한다. 특히 전문적인 배경지식 없이도 술술 읽히는 친절한 문체는 ‘화학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기에 충분하다.
<화학자가 들려주는 화학 이야기>는 지식의 양을 늘려주는 책이라기보다, 지식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주는 책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학 기술은 필수적이지만, 그 기술의 근간이 되는 '과학적 사고법'을 익히기는 쉽지 않다. 이 책은 화학자들이 보이지 않는 원자와 분자의 세계를 어떻게 증명해냈는지 그 집요한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독자 스스로 질문하고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힘을 길러줄 것이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