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린 도시, 서울
방서현 지음 / 문이당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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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문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방서현 작가의 장편소설 <내가 버린 도시, 서울>은 '수저 계급론'이 공기처럼 당연해진 현대 도시의 비정한 단면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 작품은 자본에 의해 철저히 분절된 '서울'이라는 공간을 무대로, 양극화가 단순한 경제적 격차를 넘어 인간의 삶을 집어삼키는 '사회적 재난'이 되어가는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1. 성채가 된 도시: 거주지가 곧 계급이 되는 풍경

작가는 소설의 목차를 '똥수저 동네'부터 '금수저 동네'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의 계층 사다리를 상징하는 단어들로 배치했다. 이는 단순히 지리적 구분을 넘어, 태생적 자산에 의해 존재의 가치마저 서열화되는 서글픈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다.


서울은 겉보기에 세련되고 눈부신 메트로폴리스다. 그러나 작가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 단지와 노후 주택가가 '성채 안팎'처럼 극명하게 갈리는 공간적 분절에 주목한다. 스스로를 화려함에 가려 실상을 보지 못했던 '눈뜬 장님'이라 고백하는 화자의 시선은, 자본주의의 번영 뒤편에 은폐된 추악한 이면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간다.


2. 가난의 미학화: 낭만이라는 이름의 폭력

소설 전반부인 '산언덕에서'는 재개발과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휩쓸고 간 달동네의 모순을 서늘하게 고발한다. 외부인에게 이곳은 '레트로(Retro)' 감성이 충만한 사진 맛집이자 '정'이 살아있는 낭만적 공간으로 소비된다. 하지만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이들에게 달동네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통스러운 생존의 현장일 뿐이다.


작가는 미디어가 가난을 평화롭고 따뜻하게 묘사하는 방식이 실제의 곤궁을 얼마나 잔인하게 왜곡하는지 꼬집는다. 화려한 벽화로 덧칠해진 담장 뒤에서 빈집은 늘어가고, 출입 금지 딱지가 붙은 대문들은 '전시된 빈곤'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3. 대물림되는 결핍: 아이들의 놀이에 침투한 자본

'똥수저 동네' 장은 가난이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갉아먹는지 생생하게 묘사한다. 부부의 일상이 된 욕설과 폭력, 사채 빚의 굴레, 비가 새는 천장과 쥐가 들끓는 단칸방의 풍경은 하이퍼리얼리즘에 가깝다.


가장 비극적인 지점은 아이들의 소꿉놀이 장면이다. 숲속 오두막에서 가족 역할을 수행하는 아이들은 현실의 결핍을 놀이 속으로 그대로 이식한다. 고기반찬이 없다고 투정하고, 흙을 씹어뱉으며 가짜 성찬을 연기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계급의 굴레가 유년의 순수함마저 잠식했음을 보여주는 뼈아픈 대목이다.


4. 저항으로서의 기록: 버려진 존재들의 연대

문학평론가 최의진의 평처럼, 소설은 '고아' 혹은 '쓰레기'라 불리는 주인공 '나'의 시선을 통해 양극화의 재난 속에서도 침묵하는 세상을 가로지른다. 자본의 논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명하며 진보를 외치지만, 정작 가난한 이들을 성벽 밖으로 밀어내는 견고한 시스템은 단 한 뼘도 변하지 않았다.


작가는 이러한 거대한 시스템에 편승하기를 거부한다. 대신 노트북을 펴고 글을 쓰는 행위, 즉 '기록하는 저항'을 통해 다른 세계를 꿈꾼다. 이는 자본의 속도에 발맞추지 못한 채 소외된 이들을 향한 작가만의 따뜻한 위로이자 투쟁 방식이다.



<내가 버린 도시, 서울>은 주거 형태가 곧 신분증이 된 우리 사회의 모순을 '공간'이라는 매개체로 증명해낸 수작이다. 타인의 빈곤을 미학적으로 소비하는 시선을 꾸짖고, 날것 그대로의 고통을 복원해낸다.


작가는 어머니에게 이 책을 바치며, 흐려지는 시력 대신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을 강조했다. 이 소설은 화려한 마천루의 그늘 아래 우리가 애써 외면해온 민낯을 직시하게 함으로써, 진정으로 인간적인 삶이 가능한 공간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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