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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양장) - 살아 있음의 슬픔, 고독을 건너는 문장들 ㅣ Memory of Sentences Series 4
다자이 오사무 원작, 박예진 편역 / 리텍콘텐츠 / 2026년 1월
평점 :

이 포스팅은 리텍콘텐츠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오늘은 잠시 특별한 '로그아웃'을 제안한다. 인터넷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와도 0.1초 만에 연결되는 세상이다. 인공지능(AI)이 매끈한 문장과 멋진 그림을 그려내고, 영상과 코딩까지 1초 만에 쏟아내는 '생성형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24시간 연결되어 있음에도 그 어느 때보다 깊은 고독을 느낀다. 20년 넘게 IT 기술의 최전선을 취재하며 느낀 점은 분명하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외로움'이라는 버그(Bug)까지 수정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SNS 속 타인의 화려하게 편집된 삶을 보며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 이른바 '카페인 우울증(카카오스토리·페이스북·인스타그램)'은 현대인의 고질병이 되었다.
이토록 디지털 피로도가 높은 시기에, 투박하지만 손으로 꾹꾹 눌러쓴 '진심'을 만날 수 있는 책, 《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을 소개한다. 이 책은 80년 전의 작가가 현대의 우리에게 보내는 '위로의 소스 코드'이자, 읽고(Read), 쓰고(Write), 사유(Process)하는 '인터랙티브'한 독서 경험을 제안한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다. 나에게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도무지 짐작되지 않는다." 《인간 실격》 중에서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과 규격에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의 두려움. 어쩌면 현대 사회에서 '가면 증후군'을 앓으며, 괜찮은 척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문장일 것이다.

이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인 《인간 실격》, 《사양》, 《달려라 메로스》 등 12편의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장들(Key Sentences)을 추출하여 엮은 문장 선집이다.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필사(Transcription)' 공간이다. 키보드 대신 펜을 들고 종이 위에 문장을 꾹꾹 눌러 담는 행위는, 마치 뇌를 '디프래그(단편화 제거)' 하듯 흩어진 마음을 정돈하고 깊은 사유로 이끌어 준다.
저자는 독자에게 단순히 텍스트를 눈으로 소비(Consumption)하는 것을 넘어, 손끝으로 체화(Embodiment)하는 경험을 설계했다. 각 장은 '줄거리 요약 - 주요 문장 - 현대적 해설 - 필사 공간 - 사유의 질문'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독서 경험을 극대화하는 매우 탄탄한 UX(사용자 경험)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늘 '정상적인 인간', '성공한 사람', '행복한 모습'이라는 페르소나(Persona)를 연기하며 살아간다. 다자이 오사무는 그 가면 뒤에 숨겨진 인간의 나약함, 찌질함, 그리고 고독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그 드러냄은 비난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는 바로 '살아 있음의 슬픔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견디는 힘'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어쨌든 살아내야만 하는 것이라면, 이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보이는 모습도 미워해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사양(斜陽)》 중에서
이 문장은 다자이 문학이 보여주는 '인간 연민(Human Compassion)'의 절정이자, 힘겨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면죄부와도 같다. 비굴해 보일지라도,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당신의 모습은 결코 죄가 아니라는 위로다.

다자이 오사무는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고 말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자' 했던 작가였다. 그의 문장은 차갑고 예리하지만, 그 서늘함이 오히려 과열된 우리의 머리를 식혀준다. 짧은 서평에 그의 모든 고뇌를 담을 수는 없지만, 책의 붉은 표지처럼 그의 문장들은 뜨거운 생명력을 품고 있다.
오늘 밤, 스마트폰의 블루라이트를 끄고 다자이 오사무의 문장들을 필사해 보는 건 어떨까.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를 마주하는 그 시간은, 지친 당신의 영혼을 위한 가장 완벽한 '시스템 복구(System Restore)'가 될 것이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