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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와 국가의 부(富)
로버트 브라이스 지음, 이강덕 옮김 / 성안당 / 2025년 12월
평점 :

이 포스팅은 성안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IT 시장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화해 왔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에서 2G 폰이 스마트폰으로 진화하고, PC 통신이 초고속 인터넷을 넘어 이제는 하드웨어가 클라우드로,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 코딩 등이 AI와 접목되면서 그야말로 격변의 회오리 속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가고 있다.
해마다 열리는 CES와 MWC 같은 최첨단 IT 기술이 선보이는 행사가 열릴 때마다 우리는 더 빠른 프로세서, 더 선명한 디스플레이, 더 똑똑한 AI에 열광한다. 하지만 이 화려한 디지털 유토피아의 기저에 깔린 가장 본질적인 인프라를 우리는 자주 망각하며 살고 있다. 바로 '전기(Electricity)'.
로버트 브라이스의 <전기와 국가의 부(A Question of Power)>는 단순히 전기라는 에너지를 다룬 공학 서적이 아니다. 이 책은 전기를 "인간과 국가의 권력과 부의 문제"로 새롭게 해석하며,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핏줄인 전력망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한다.

밤에 전기가 나간 집에서는 잠자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특히 전기가 없다면 우리가 매일 손에 쥐고 신주 딴지 모시듯 끼고 사는 스마트폰은 고철 덩어리에 불과해질 것이다. 이처럼 전기가 있는 곳에서 걱정하는 디지털 격차보다 오히려 전기가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에너지 빈곤이 심각하다는 것을 이 책을 읽다 보면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는 5G가 터지지 않으면 답답해하고, 스마트폰 배터리가 20% 밑으로 떨어지면 불안하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 더 충격적인 통계를 들이민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약 45%가 전력 접근에서 소외되어 있거나, 가정용 냉장고 가동 전력보다도 적은 전기를 사용하는 '에너지 빈곤' 상태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IT 기술이 세상을 평평하게 만들었다고 하지만, 전기가 없는 곳에서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무용지물이다. 저자는 3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전히 어둠 속에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를 우리 시대의 가장 결정적인 불평등으로 규정한다. 첨단 기술의 혜택을 논하기 전에, 그 기술을 구동할 최소한의 에너지조차 공급받지 못하는 인류의 절반을 이해하는 것은 글로벌 비즈니스를 꿈꾸는 모든 인들에게 필수적인 감각이 아닐까.

스마트 시티와 인권의 기반은 '코드'가 아니라 '전력망'에 있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미래 도시를 상상할 때 자율주행차와 드론, IoT 센서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전기의 역사와 현대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엘리베이터'와 '조명'을 꼽는다. 500년 전 세계 인구의 5%만이 도시에 살았지만, 전기의 힘으로 건물을 높이 올리고 밤을 밝히게 되면서 2050년에는 도시 인구가 70%에 달할 것이라고 분석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기가 여성의 권리에 미치는 영향이다. 전기가 들어오게 되면서 펌프와 세탁기를 돌릴 수 있게 되었고, 물을 긷거나 빨래를 하는 가사 노동에서 여성을 해방시켰다. 이는 여성이 교육을 받고 경제 활동에 참여하게 만들었다. 전기가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라 인권과 해방의 도구임을 역설적으로 제시한다.
최근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전 세계 전력 수요는 20년마다 두 배로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탄소 중립을 외치며 재생 에너지를 옹호하지만, 24시간 돌아가는 서버와 통신망을 간헐적인 태양광과 풍력만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낭만적인 환경주의 대신 냉철한 현실을 제시한다. 기후 변화에 대처하면서도 폭증하는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재생에너지 외에 원자력 에너지가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천연가스에서 원자력으로 이어지는(N2N) 현실적인 에너지 믹스를 제안한다. 이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IT 산업계가 외면해서는 안 될 불편하지만 중요한 진실이다.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으면 전기가 흐르는 것을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고 살고 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거대한 인프라와 지정학적 갈등, 그리고 환경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또한 IT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우리는 전기에 더 깊이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첨단 기술의 최전선에서 우리에게 그 기술을 가능케 하는 뿌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준다. 스마트폰 화면 너머에 있는 거대한 에너지의 세계가 궁금하지 않은가?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