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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셔가의 몰락 ㅣ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에드거 앨런 포 지음, 아구스틴 코모토 그림, 이봄이랑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평점 :

이 포스팅은 문학동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가의 몰락』은 인간 정신의 와해를 건축물의 붕괴와 겹쳐 보여주는 심리적 공포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화자는 어린 시절 친구 로더릭 어셔의 초대를 받고 균열이 가득한 낡은 저택을 방문한다.
극도로 예민해진 로더릭은 모든 감각이 고통으로 느껴질 만큼 불안에 시달리며, 저택의 균열이 자신과 누이 매들린의 정신까지 병들게 한다고 믿는다.
포가 창조한 공포는 초자연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 내부의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로더릭의 감각 과민, 매들린의 원인 모를 병, 저택의 음산한 분위기는 모두 그 내면의 그림자를 공간에 투사한 결과다.
매들린이 죽자 로더릭은 시신을 지하실에 임시 안치하지만, 폭풍의 밤 그녀가 살아 돌아온 것 같다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결국 피투성이 모습의 매들린이 문을 부수고 나타나고, 로더릭은 충격으로 즉사한다.

그 순간 거대한 균열을 품고 있던 저택은 호수 속으로 가라앉으며 어셔 가문은 완전히 소멸한다. 이 저택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균열을 상징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저택의 붕괴는 곧 로더릭의 정신 붕괴를 시각화한 것이다.
이 작품은 고립의 위험성을 드러내는 강력한 경고이기도 하다. 외부와 단절된 로더릭과 매들린은 점차 자신들의 어둠과 환영에 잠식되며, 저택은 고립된 정신이 투사된 무대로 변모한다. 이는 오늘날 정보 과잉과 관계 단절 속에서 불안과 번아웃에 흔들리는 현대인의 심리와도 정확히 맞닿아 있다.
포가 묘사한 공포는 감정, 예감, 우울, 고독 같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진동이며, 개인이 외부와의 연결을 잃을 때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셔가의 몰락』은 인간의 이성을 지탱하는 얇은 막이 어떻게 찢어지는지를 추적한 고딕 문학의 고전이며, 동시에 내면의 균열을 직시하라는 문학적 경고다. 포가 만든 음울한 저택은 지금도 우리 삶 곳곳에 존재하며, 공포를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무너지는 저택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