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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쇼펜하우어 x 윤동주
김이율 지음 / 미래문화사 / 2025년 11월
평점 :

이 포스팅은 미래문화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독일의 대표적인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적 철학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인간의 본질을 ‘의지’라고 보고, 인간의 근원적 결핍과 욕망이 결국 고통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윤동주는 「서시」, 「별 헤는 밤」 등을 통해 자신의 부끄러움과 양심, 조국에 대한 사랑을 섬세한 단어 선택과 은율에 담아냈다. 그는 역사적 절망과 식민지 현실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희망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추구했다.
『어쨌든, 쇼펜하우어 x 윤동주』는 고통을 철학으로 직시한 철학자와 부끄럽지만 희망을 품은 시인을 한 권의 책에서 마주하게 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비관주의와 희망을 한 화면에 겹쳐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절망을 건너 희망을 쓴다"라는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단언과 윤동주의 시구를 짧은 명제·사유·질문으로 엮어 소개한다. 각 장은 두 인물의 문장 한 줄로 시작해 현대의 불안·비교·상실·관계로 이어지며, 마지막에는 독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마무리한다.
책에서 추구하는 형식은 복잡한 이론 해설이 아닌 ‘사유 노트’의 형태다. 독자는 ‘고통과 권태의 진자 운동’, ‘질투라는 그림자’, ‘소유의 역설’ 같은 꼭지에서 자신의 일상적인 감정선을 따라 철학적 사유를 체험하게 된다.
한쪽에서는 냉정한 자기 진단을, 다른 한쪽에서는 조용한 정서적 위안을 제공함으로써 독자는 그 두 감정의 틈새에서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주제와 만나게 된다.

저자 김이율은 쇼펜하우어와 윤동주라는, 시대와 국적이 전혀 다른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둘 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통된 특징을 만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삶은 진자처럼 고통과 권태 사이를 움직인다"라는 냉정한 문장으로 인간의 결핍을 응시했고,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 절망 속에서 양심의 빛을 찾았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비관은 형이상학적이며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야만 구원에 닿는다고 말한 반면, 윤동주의 비관은 식민지 현실이라는 구체적 절망 속에서 태어났고 그 속에서도 별과 신앙, 사랑을 향한다. 쇼펜하우어가 ‘감정의 소음’을 걷어내는 냉정한 진단을 건넨다면, 윤동주는 ‘그래도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덧입힌다.
『어쨌든, 쇼펜하우어 x 윤동주』를 읽다 보니 하루가 짧게 느껴지는 11월에 접어들었다. 겨울을 재촉하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주말 밤이다. 쇼펜하우어의 냉철함과 윤동주의 희망 사이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