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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사계
손정수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8월
평점 :

이 포스팅은 은행나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어렸을 때 읽었던 세계문학전집에는 《주홍 글자》, 《폭풍의 언덕》, 《노인과 바다》 등 내로라하는 문학계 거장들의 작품들이 실려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다시 읽어 본 이래, 시간이 많아 지나 좀 더 자세하게 다시 들여다볼 기회가 생겼다.
《고전의 사계》는 30년 가까이 한국문학을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쳐온 문학평론가 손정수 교수가 해외고전 비평 에세이로 소개한 책이다. 이 책은 고전을 단순히 ‘오래된 명작’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게 하는 살아 있는 텍스트로 다시 불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1818년 발표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과학과 윤리의 문제를 넘어 오늘날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재조명되고,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당시 검열과 금기의 흔적을 벗고 퀴어문학의 맥락에서 새롭게 읽히고 있다. 《주홍 글자》, 《폭풍의 언덕》 등 200년이 지난 작품들이 여전히 우리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바로 그 해답을 찾아가는 ‘사계절의 독서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고전의 사계》는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대신, ‘여름-가을-겨울-봄’이라는 계절 구조를 통해 22편의 고전을 엮어 소개한다. 이는 노스럽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에 등장하는 뮈토스(신화 구조)를 바탕으로 한 방식과 닮아 있다. 계절의 흐름을 따라 여기 소개된 책들을 하나씩 읽다 보면, 독자는 마치 한 인간의 삶을 따라가듯 작품과 시대를 체험하게 된다.
'여름'은 현실의 압력을 뚫고 나오는 환상의 힘에 빗댈 수 있는데 《프랑켄슈타인》, 《폭풍의 언덕》 등이 이러한 계절에 어울리는 작품이다. '가을'은 삶의 미궁과 이야기의 미로 속으로 끌어당긴다. 《마담 보바리》, 《라쇼몬》 등으로, '겨울'은 인간의 고뇌로 빚은 시대의 초상을 그린 《죄와 벌》, 《페스트》 등이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봄'은 소설의 열린 결말과 인류의 미래를 주제로 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로드》 등과 어울린다.
손정수 교수는 작품에 대한 소개만이 아니라 그 작품을 써 내려간 작가의 생애와 삶의 조건까지 함께 읽는데 초점을 맞춘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라쇼몬》을 나쓰메 소세키와 연결 짓고,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그의 삶과 함께 풀어내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고전이 단순히 텍스트에 머무르지 않고, 한 인간의 고뇌와 시대적 고민이 투영된 생생한 기록임을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고전을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닌, 오늘 우리에게 여전히 말을 거는 텍스트로 읽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당시에는 검열된 텍스트였지만 오늘날에는 퀴어문학의 맥락으로 재해석된다.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의 욕망과 책임이라는 주제를 넘어 인공지능 시대의 윤리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로드》와 같은 현대 고전들은 현재적 불평등과 인류의 미래를 질문한다. 또한 앞서도 잠깐 언급한 것과 같이 《고전의 사계》는 단순한 고전 해설집이 아니다.
고전을 통해 ‘다시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여정이다.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 “우리가 아직 미완의 존재이기에, 끝없이 완성됨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뜨거운 여름으로 시작해 차가운 겨울을 지나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봄에 이르기까지,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