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천하와 천조의 중국사 - 하늘 아래 세상, 하늘이 내린 왕조 ㅣ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단죠 히로시 지음, 권용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3년 8월
평점 :
현대사회에서 중국이란 나라는 어떤 이미지로 비춰지고 있을까? 2021년 9월 기준, 중국은 세계에서 GDP(국내총생산) 기준으로 2위의 국가로 발돋움했다. 중국은 이제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로 인정받고 있고, 제조업과 수출 등을 통해 세계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은 이러한 강력한 경제력을 기반으로 전 세계에서 정치적, 군사적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일본은 물론 동남아시아 등 여러 주변국들과 크고 작은 마찰을 빚고 있다. 특히 역사관에 대한 중국의 기조는 오랜 시간 동안 다져지고 굳어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번역 출시된 <천하와 천조의 중국사>에서 이 책의 저자는 2016년 봄까지 근무했던 교토여자대학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토대로, 미국 다음으로 강력한 나라로 성장한 중국의 역사를 되짚어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저자는 중국의 역사를 '천하(天下)'와 '천조(天祖)'라는 키워드를 통해 고대 춘추전국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어떤 변화들이 있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중국의 기조는 무엇인지 분석해 소개했다.
p.18
천조라는 것은 글자에서 읽히는 것과 같이 '천자의 조정'을 가리킨다.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였던 중국은 전통적으로 스스로를 높이는 의미를 집어넣어 자국을 그렇게 불렀다. 이 단어 자체는 역사 용어인데, 아마도 기원 전후의 한나라 때에 생겨난 것으로 여겨진다. 그 이후 역대 왕조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최후의 왕조인 청나라 시대에 서구 열강의 침략이 활발해진 이후에도 청은천조대국으로서의 긍지를 완강하게 계속 지켜나갔다.
p.74
고대 중국인 속에서 발생했던 중화(중하, 화)라는 관념은 항상 이적(오랑캐)과 대비되는 것으로 발전해 왔다. 이러한 화와 이의 구별(유가의 말에 따르면 '화이의 별'이라고 부른다)은 중화 왕조의 대외 정책을 일관하는 구조였고 역대 왕조들은 화와 이의 차이를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을 행했다.
일본인 저자의 시각으로 씌여져 있어서 우리나라의 역사관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중화 제국, 즉 중국의 기조는 천조의 논리에 따르기만 한다면 모두 정당화되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이러한 기조는 역대 중국의 왕조들이 어떻게 현실 정치에 그러한 논리들을 적용하고자 애썼는지를 다양한 일화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중국이 따르고 있는 기조로서 '천하'는 중국에서 하늘(천) 아래의 세상(하)을 의미하는 말로, 주로 왕의 통치와 국가의 질서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다. 또한 '천조'는 하늘(천)의 조상(조)을 의미하는 말로, 중국의 전통 종교나 유교적인 관점에서 사용되었으며, 천지(하늘과 땅)의 자연적인 힘과 정신적인 존재를 나타낸다.
이를 좀 더 쉽게 정리해 보면 '천하'는 중국의 사회와 정치 체제를 나타내며, '천조'는 종교적인 의미와 유교적인 지도자의 덕과 권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이 두 용어가 중국의 역사, 문화, 철학에서 얼마나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고, 얼마나 다양한 관점에서 활용되어 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p.156
단적으로 말해서 왜왕은 대천하에서의 동이(번왕)와 소천하의 천자라는 이중 잣대를 지니고 있었다. 이때 두 가지 기준의 조화를 이루어내기 위해 왜국이 선택했던 방책은 책봉을 받지 않으면서 조공하는 것이었다. 책봉을 하지 않아도 수의 입장에서는 왜국이 조공국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고, 왜국의 입장에서는 수의 신하가 아니라는 점이 입증되는 것이다.
p.262
쿠빌라이의 중화 왕조 겉모습 만들기는 물론 연호 개정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지원으로 연호를 바꾸고 3년이 지난 1267년, 드디어 쿠빌라이의 국가는 천조로서 본격적인 수도 건설을 시작했다. 하늘의 아래인 천하의 중심에 천조의 수도가 있다.
앞서도 짚었던 것처럼 천하와 천조는 중국의 역사와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들로 사용되어 왔다. 저자는 중국의 역사에서 천조 체제는 시대에 따라 내실을 크게 변화시키면서도 천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현대사회에도 살아 숨 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큰 논란이 됐던 '동북공정'이나 '문화전쟁' 같은 중국 중심의 대외 팽창정책은 어떤가? 여기에는 천하, 천조 외에도 화이관, 중화사상 등과 같은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기조들이 포함되어 있다. 결국 중국은 자신들을 전 세계의 중심인 천하 시스템(천하 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중국의 역사, 철학, 문화 등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정치 체제와 사상의 기초로 작용해 왔다. 천하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노력과 함께 천조의 영적인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자처하는 중국은 자국의 역사를 토대로 이제 글로벌 중심 국가로서 기틀을 확고히 해 나가겠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p.312
영락제는 22년 동안의 치세에 화이일가의 형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화려한 대외 정책을 전개했다. 그 시작은 즉위와 동시에 주변의 여러 국가들에 사신을 파견하여 적극적으로 조공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이에 응하여 많은 국가가 내조했는데, 그중에서도 영락제를 기쁘게 했던 것은 일본 국왕 아시카가 두 번이나 전쟁에서 패배를 맛보게 했던 일본이 스스로 영락제의 즉위를 경하하며 조공을 했던 것이다.
p.364
결국 대천하를 이탈했다는 일본조차도 대천하와 논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니 중화 문명이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 끼친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천하의 천하 질서는 은연중에 중국의 주변 여러 국가들을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조선, 일본과 함께 또 하나의 동아시아의 주요 국가인 베트남(대월)을 살펴보게 되면 보다 명료해진다.
이러한 중국 중심의 천하, 천조 관념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되어 왔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러한 것들을 잘 파악한다면 전통적인 중화 제국의 행동원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중국 역사를 관통하는 천하와 천조의 전모를 파헤치는 과정에서 드러난 중국의 역사적 사실들을 살펴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를 준다. 이와 동시에 중국사 전체를 조망해 보고 주변국들의 변화 과정들을 읽다 보면 우리나라와 일본 등 동아시아의 변화들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오늘날 중국이 어떤 기조 아래 움직이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특히 이 책은 중국 관련 정세 변화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은 독자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줄 것이다.
이 포스팅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