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 드링크 - 인류사 뒤편에 존재했던 위대한 여성 술꾼들의 연대기
맬러리 오마라 지음, 정영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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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발전과 역사를 알 수 있는 기록물에는 술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물론 그 중심에는 남자들의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영웅호걸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술과 여자는 액세서리처럼 따라붙는다는 느낌이 있었다.


<삼국지>에서도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결의를 맺는 날에 술은 빠지지 않고 등장했는데, 남자들의 결의를 다지는데 술이 중요한 도구처럼 활용됐다. 사극 드라마에서는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술을 따르는 역할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술자리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조연처럼 비춰졌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술 권하는 사회'라고 불릴 만큼 술에 대한 술에 대한 남녀의 차별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다양한 모임에서 혹은 개인적으로도 술 한잔 기울일 때가 있는데, 맥주나 소주만 해도 종류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와인이나 칵테일, 양주로 넘어가면 뭐가 뭔지 감을 잡기도 힘들 정도다.


최근 남성 중심의 술 문화와 역사적인 사고방식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한 책이 새로 나왔다. 바로 <걸리 드링크>란 책으로 이 책에서 저자인 맬러리 오마라는 술, 여자, 주류 업계에 대한 이야기 그중에서도 역사의 비주류로 분류되었던 술과 여성들의 히스토리를 한데 모아 소개했다.


p.31

수메르 사람들은 맥주를 '카시 kash'라고 불렀다. 모두가 즐기는 음료를 충분히 공급하기 위해 우르크의 여성들은 맥주를 대량으로 양조했다. 당시 수메르에는 보리로 만든 맥주가 여덟 가지, 밀로 만든 맥주가 여덟 가지, 다양한 곡물을 혼합하여 만든 맥주가 세 가지 존재했다.


p.64

클레오파트라는 술을 좋아했지만 과음을 하지는 않았다. 고주망태가 되어 사고를 치는 쪽은 안토니우스였다. 사실 이집트인들에게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이집트에서 음주는 남녀 모두에게 허용된 행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는 달랐다. (중략) 로마에서 남성의 과음은 이해하고 넘어갈 만한 일이었지만, 여성이 대놓고 술을 밝히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맬러리 오마라는 다양한 시대를 살아간 전 세계의 여성들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술을 마셨는지 알고 싶었다며, 애초부터 음주라는 행위에 왜 성별을 따지게 됐는지, 여성용 술이라는 개념은 또 어쩌다 생겨났는지 등등 술과 여성, 그리고 역사적 삼각관계를 풀기 위해 기록들을 모으고 자료를 수집하다 보니 이 책을 쓰게 됐다고 소개했다.


특히 저자는 인류가 알코올을 탄생시킨 순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에는 여성 음주자들이 존재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해, 수천 년에 걸친 알코올 역사에서 여성이 남성들에게 가려져 뒷전에서도 물러나 있었지만 뚜렷한 존재감을 보여왔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우리가 잘 몰랐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어렸을 때 술은 주로 어른들, 그중에서도 집안의 할아버지나 아버지로부터, 혹은 형에게 배우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했었다. 차례를 지내고 나면 음복이라며 제사상에 올린 술을 한 잔씩 돌리곤 했는데, 어느 정도 자란 남자아이들에게도 술이 한 잔씩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음식을 하는 여자들은 조금 예외였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문화는 저자가 말했던 '누가 음주를 젠더적 행위로 규정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단 생각도 든다. 술과 관련된 여성들의 역사는 잘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어 보니 여자, 술, 역사라는 3가지 키워드는 특별해 조금은 더 특별해 보이는 느낌도 들었다.


p.134

아프리카는 유럽의 식민 지배 시기보다 훨씬 앞서가는 유구한 술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성이 맥주를 양조하는 뿌리 깊은 전통이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에 존재했다.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에서는 탁한 곡물 맥주가 식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p.205

미국이 서부로 뻗어나가면서 음주 문화 또한 확장됐다. 1800년대 초 거친 서부 개척지로 떠나는 사람은 대부분 남성이었지만, 당시의 사회 규범에 도전하는 여성 또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기록을 살펴보면 당시 서부에는 최소 스물네댓 명의 여성 바텐더가 존재했다.



저자는 한 사회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를 알고 싶다면 술잔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 말인즉, 수천 년 동안 여자가 술잔을 드는 행위는 전복적인 행동으로 여겨져 왔기 때문에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다는 말처럼 들린다.


역사를 되짚어 보면 여성은 남성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아 왔고 더 많은 사회적 억압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이면에는 술 문화에서도 여성들이 많이 배제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음주에 누가 성별을 갖다 붙였는지, 언제부터 특정 종류의 술만 존중받게 된 것인지 등 서양의 역사를 토대로 오랜 세월 술과 함께 해온 역사들에서 여성들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다시 되짚어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여성 음주의 역사에 대해서 새롭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음주가 어떤 이유로 금지되었는지, 가부장적 억압과 여성 혐오적인 사회의 기대가 음주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시대적인 배경을 따라 15개의 에피소드로 나눠져 소개되고 있다.


맥주, 와인, 위스키, 칵테일 등 다양한 술과 바(Bar)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특히 가부장제 사회 문화와 맞물려 유구한 술의 역사 뒤편에서 가장 낮은 술상을 차지했던 여자들은 누구였는지, 그들이 무엇을 해왔는지도 새롭게 알 수 있을 것이다.


p.286

클레오 리스고는 금주법 시대의 가장 성공한 밀수업자이자 가장 유명한 밀수업자였다. 기자들은 클레오가 국제적으로 운영 중인 위스키 사업이 세계 최대 규모라고 보도했다. 1923년 영국의 위글리 기자는 나소에서 진행한 거트루드 리스고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클레오파트라, 밀주의 여왕'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고, 이는 이후 그녀의 별명이 됐다.


p.350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인들의 음주 문화, 그중에서도 특히 여성 음주 문화는 다시 한번 큰 변화를 맞았다. 그 변화와 함께 가정에 충실한 주부가 챙겨야 할 한 가지 더 늘었다. 바로 칵테일이었다. 식사 자리에서는 여전히 맥주가 인기였지만, 1950년대 제대로 된 주부라면 맛있는 마티니 한 잔쯤 뚝딱 만들어낼 수 있어야 했다.



과음이나 음주로 인한 사고는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고 있어서 한때는 술이 금지되었고, 불법화되었고, 심지어 극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였던 시대에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이러한 시대에도 여성들은 멈추지 않고 발효주와 증류주를 만들고 팔고 마셔왔다고 소개하고 있다.


고대 맥주 여신으로 불렸던 닌카시를 비롯해 일용할 와인과 맥주를 빚었던 중세 수녀들, 보드카 제국을 건설한 예카테리나 2세, 금주법 시대에 맹활약한 밀매업자들, 쉼 없이 술을 빚은 양조업자와 증류업자들, 여자 술꾼과 주정뱅이 등 술과 관련된 재미난 에피소드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수천 년을 이어온 세계 주류사의 이면에 존재해온 '술 마시는 여자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이야기를 새삼 주목해야 하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펼쳐보시기 바란다.



이 포스팅은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책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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