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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 관한 생각 - 영장류학자의 눈으로 본 젠더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11월
평점 :
남녀 간의 선천적인 차이점과는 별개로 '젠더'에 대한 생각은 역사, 사회, 문화, 교육 등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갈등의 요소로 부각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3월에 치러진 20대 대선을 전후로 20~30대 남녀 간의 젠더 갈등이 폭발했다. 정치적으로 젠더 갈등을 부추기며 표심을 갈라치기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처럼 갈등 요인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차이에 관한 생각>에서 수십 년간 사람과 동물의 행동을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생물학은 기존의 '젠더 불평등'에 대해 정당한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젠더와 생물학적 성이 관련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은 인간 사회에서 전통적인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자동적으로 정하는 것에 지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18
동물과 사람의 행동에서 나타는 성차는 사람의 젠더에 관한 거의 모든 논쟁에서 그 중심에 있는 질문들을 제기한다. 남성과 여성의 행동 차이는 선천적인 것일까? 인위적인 것일까? 그 행동들은 실제로는 얼마나 다를까 젠더는 단 두 가지만 있을까, 아니면 더 많이 있을까?
p.45
수컷 원숭이들은 바퀴가 달린 장난감을 선택했다. 수컷은 모든 장난감을 좋아한 암컷에 비해 외골수 성향을 보였다. 수컷이 봉제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탓에 이 장난감들은 대부분 암컷의 차지가 되었다. 어린이들도 이와 비슷한 패턴을 보이는데, 남자 아이에게서 특정 장난감 선호가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사실 이러한 젠더 문제는 오래된 관습처럼 풀기 어려워 보인다. 여전히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어 앞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쉽게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차이에 관한 생각>에서는 영장류학자가 바라본 젠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젠더 갈등과 논쟁의 문제를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풀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을 수도 있고,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남녀 모두 인간이라는 점에서 평등해야 한다. 하지만 젠더 문제는 선천적인 차이점에서 비롯됐다기 보다 오랜 세월 동안 쌓아온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가 한몫하고 있다.
이 책은 젠더 문제를 풀기 위해 인간의 사촌격으로 보고 있는 침팬지와 보노보노 같은 영장류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다. 이미 성차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은 존재해왔다. 하지만 이 책은 기존의 연구나 다른 책들과는 달리 영장류를 통해 성차의 비밀을 밝혀내고자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p.87
흥미롭게도 영장류 행동을 연구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도나 사례가 보여주는 것과 같은 종류의 젠더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드물다. 다른 수컷에 비해 수컷다움이 모자라는 수컷이 늘 있고, 수컷처럼 행동하는 암컷도 늘 있다. 이러한 암컷은 다른 암컷보다 거친 레슬링을 즐기고, 더 과감한 게임을 시작한다. 동물의 '성격'은 인기 있는 연구 주제이지만, 과학은 여전히 성 역할의 가변성을 무시한다.
p.132
어쩌면 우리는 내가 텔레비전에서 정치 토론을 볼 때 흔히 하는 행동을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후보자의 입에서 나오는 음파보다 더 신뢰하는 신체 언어에 집중하기 위해 소리를 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머릿속에서 젠더가 어떻게 행동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끄고 단순히 실제로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특히 침팬지와 보노보와의 비교를 통해 그동안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던 여성성과 남성성에 관한 믿음, 권위, 지도력, 협력, 경쟁, 부모와 자식 사이의 유대, 성 행동에 관한 보편적인 가정들에 나름의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의 성차는 문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본성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남녀 간의 다른 성역할과 선호는 생물학적 기원을 가질까? ▲젠더는 나쁜 것이고, 사라져야만 하는 것일까? ▲생물학에서는 트랜스젠더를 어떻게 바라볼까? ▲가부장제는 동물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법칙이고, 남녀 간의 불평등은 생물학적 기원을 가지는 것일까? 등등 많은 논쟁을 불러올 만한 질문들이다.
이처럼 우려 섞인 질문들에 대해 프란스 드 발의 주장은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한편 불편함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젠더 갈등 문제는 꼭 풀어내야 할 숙제다. 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저자는 정면으로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p.221
대부분의 동물 종은 수컷이 화려하고 암컷은 칙칙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반면, 호미니드 삼총사-사람, 침팬지, 보노보-에서는 그 관계가 역전된다. 우리 종에서는 아름답게 꾸미는 행동이 수컷에서 암컷으로 옮겨갔다.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고 그것으로 판단받는 쪽은 여성이다. 물론 성 선택은 양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역할 역전이 일어나려면 수컷이 자신의 선호를 거리낌 없이 밝힐 필요가 있다.
p.298
가장 가까운 우리 친척 영장류에게서는 강간 적응의 징후를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우리 조상이 진화한 조건에서 강간은 절대로 현명한 행동이 될 수 없었다. 오늘날의 거대한 사회에서 익명성은 가해자의 위험을 어느 정도 줄여주지만, 여전히 강간이 일어난다고 해서 강간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수컷 우두머리에 대한 독자들의 잘못된 개념을 바로잡고자 하는 데 있다. 이 개념이 유래한 영장류 연구는 우리와 특별히 가깝지 않은 종을 대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의 가까운 친척인 대형 유인원 연구에서는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수컷이 행사하는 지배력이 약하다는데 주목하고 있다.
특히 수컷이 암컷보다 몸의 크기가 크게 된 것이 암컷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수컷끼리 싸우기 위한 목적에 있다는 것이다. 즉 짝짓기 상대인 암컷에 접근하기 위해 수컷은 몸을 키우게 된 것이고, 전형적인 영장류 사회의 핵심에는 나이 많은 가모장이 이끄는 암컷들의 네트워크에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저자는 남녀 관계에 대해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일반적인 가정들 폭력, 권위, 경쟁, 성차, 믿음, 협력, 유대 등에 끊임없이 도전장을 던진다. 하지만 남녀 간의 차이를 부정하겠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지 않다. 다만 남녀 간의 차이를 포용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역학관계에 대해 좀 더 진진한 대화를 해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이 포스팅은 세종서적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책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