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평전 - 경험하고, 생각하고, 사랑하라
사만다 로즈 힐 지음, 전혜란 옮김, 김만권 감수 / 혜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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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 대해 평하는 글을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 사람의 업적이나 활동에 대한 평가가 어쩌면 주관적인 관점에서 씌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자료들을 참고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이번에 새로 나온 <한나 아렌트 평전>은 '한나 아렌트'라는 인물을 전기문 형태로 다루고 있어 주목된다. 그동안 한나 아렌트에 대한 소개는 그녀의 저서를 중심으로 소개됐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는 1906년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계 미국 정치철학자이자 철학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다.


1, 2차 세계대전을 몸소 겪고 강제수용소에도 수감된 적이 있고, 1941년 나치의 파리 점령 후 미국 뉴욕에 정착했다. 그녀는 전체주의를 통렬하게 비판한 <전체주의의 기원>을 발표했고,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석하고 발표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으로 논쟁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p.23

나 역시 다른 정치사상가들처럼 시대 문제 관심을 가졌다. 그녀가 살던 시대에는 전체주의라는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이데올로기가 등장했으며, 정치 형태는 급변했고, 국민들은 정부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았다. 또한 참여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으며, 문화적 쇠퇴 현상이 일어났고, 사회적으로 악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p.47

나는 삶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고 싶어서' 철학을 택했다고 가우스에게 분명히 말했다. 아버지 서재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한나의 이해 욕구는 존재했다.

"집 서재에는 모든 책이 있었어요. 책장에서 그 가운데 하나를 꺼내면 그만이었죠."




1951년에 출간된 <전체주의의 기원>은 전체주의의 배경을 이해하고 이 절대악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임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조건인 '자유'를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해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도 이슈가 됐다.


특히 이 책은 그녀가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의해 잡혀와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예루살렘에 가서 재판을 참관한 뒤에 썼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그녀는 아이히만은 뜻밖에 평범했다며 '악의 평범성'에 대해 언급해 지금도 이에 대한 논란의 중심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후 50년이 지난 지금도 한나 아렌트를 기억하고 그녀의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녀가 인간과 세계에 근본적 질문을 던짐으로써 자유롭게 사유하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남겼기 때문이다.


p.73

사적으로 모든 끝은 새로운 시작을 나타내고 그 결과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한나는 1933년 망명길에 오르며 1929년 출간한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한 권 챙겼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욕조에 빠뜨리고 말았다. 한동안 다시는 책을 볼 수 없을 줄 알았으나 다행히 게르솝 숄렘에게 책을 보낸 사실을 기억해냈다. 숄렘은 역사가이자 유대교 신비주의 철학자로 한나의 부탁을 받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책을 돌려주었다.


p.97

1933년 2월 27일, 한나는 국회의사당에서 치솟는 불길을 바라보며 이제는 행동할 때임을 직감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한나는 다음과 같이 이때를 회상했다.

"화재를 목격한 순간 책임감을 느꼈죠. 단순히 구경꾼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틀러 정권은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고, 시민의 자유를 억압했으며,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이후에는 시민권 정치 명령을 내렸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생애와 그녀가 쓴 책, 그리고 그녀가 생각한 다양한 철학적 사고에 대해 시간순으로 때로는 사건 중심으로 풀어 놓고 있다. 사후 50년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그녀의 정신은 식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있는데,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러한 세계관이 전해지고 있는지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이 책의 각 장에는 <그림자>,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 <전체주의의 기원>, <아모르 문디>, <과거와 미래 사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혁명론> 등 한나 아렌트의 주요 저서 8권의 핵심적인 내용들이 담겨 있다. 그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이러한 책들이 어떻게 씌여지게 됐는지 알 수 있다.


또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기한 '악의 평범성'처럼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관점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쉽게 읽히지 않는 대목들도 종종 눈에 띈다. 하지만 그 시대의 정치, 사회적 배경을 되짚어 보는 한편 그녀의 삶을 통해 사랑과 용서, 화해 등 철학적인 질문에 그녀의 생각과 감정을 엿볼 수 있다.


p.143

1941년 6월 미국 국무부는 입국 정책을 강화했다. 입국 신청자는 1,137명이었으나 그해 8~12월 고작 238명만 긴급 비자를 받아 미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한나와 블뤼허가 그들 가운데 두 사람이었다. 이들은 리스본에 3개월을 머물고 나서야 미국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p.193

나와 푀겔린은 무엇이 정치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지 서로 이해가 달랐다. 한나는 모든 생각은 경험에서 비롯되며, 다시 말해 사건의 진상을 알아야만 정치 판단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푀겔린은 역사적 사건은 경험을 배제한 기본 정치 원리를 통해 접근할 때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 아렌트 평전>은 그녀의 탄생에서 죽음까지 시간순으로 서술하면서도 여러 가지 일화들을 통해 그 시절에 그녀가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사상에 빠지게 됐는지 알 수 있다. 또한 그녀의 개인적인 면들에 대해서도 소개하는 한편 그녀의 학문과 사상 뒤에 숨겨져 있던 세상을 향한 가슴 뜨거웠던 한 여인의 삶을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강제수용소에 수감됐다가 탈출한 이야기를 비롯해 두 번의 결혼과 노년기까지도 계속된 로맨스 등 삶은 영화와 같다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또한 한나 아렌트와 교류했던 수많은 사상가들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책장 속에 숨은 그림처럼 담겨 있는 흑백사진을 통해 그 시절에 어떤 모습들을 하고 있었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녀는 경험하고, 생각하는 삶을 통해 자신이 속한 사회와 공동체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한편 뜨겁게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떠난 지 5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사유와 삶을 향한 실천정신에 주목하게 된다.




이 포스팅은 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책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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