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손길 페르세포네 × 하데스 1
스칼릿 세인트클레어 지음, 최현지 옮김 / 해냄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죽음의 신 '하데스'와 봄의 여신 '페르세포네'의 사랑 이야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수선화가 피어나게 된 사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를 새롭게 현대판 로맨스 판타지로 엮은 '페르세포네×하데스' 시리즈가 3권의 책으로 출간되어 관심을 끈다.


'페르세포네×하데스'의 첫 번째 표지를 장식한 1권 <어둠의 손길>은 신들의 세계를 마다하고 인간 세계로 내려와 평범한 기자로 살고 싶어 하는 '페르세포네'와 클럽 네버나이트를 운영하며 내기를 통해 사람들의 영혼을 구속하려는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의 운명적인 만남을 주제로 한 러브 스토리다.


이 책의 도입부에서 하데스를 이렇게 평가했다. 하데스는 모든 신 중에서 가장 부자이고, 뉴 그리스의 가장 인기 있는 클럽들에 상당한 돈을 투자하고 있다. 그 클럽 중에서도 자신이 운영하는 네버나이트는 단순한 클럽이 아니라 도박꾼들의 소굴이다.


이곳에서 하데스는 이기는 내기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사람들은 네버나이트에서 영혼을 걸고 그와 카드 게임을 한다. 사람들이 내기에서 이기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무엇이든 이룰 수 있지만 하데스를 이기는 일은 좀처럼 없다.


p.9

완벽한 날이었다. 페르세포네가 여기에 온 건 공부하기 위해서였지만, 테이블 위에 놓인 수선화 다발에 자꾸만 시선이 향하는 바람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가느다란 꽃대가 두세 개뿐이라 꽃다발은 성겼고, 바스락거리는 갈색 꽃잎은 마치 시체의 손가락처럼 말려 있었다.


p.23

네버나이트는 매끄러운 흑요석으로 만든 피라미드형 건물이었다. 창문이 하나도 없었고 주변의 밝은색 건물들보다 높았는데, 멀리서 보면 도시의 경관을 해치는 것처럼 보였다. 뉴 아테네의 어디서든 우뚝 속은 타워가 보였으니까. 하데스가 인간들에게 삶의 유한성을 상기시키기 위해 그토록 높은 건물을 지은 것이라고 데메테르는 말하곤 했다.



이야기 초반에는 페르세포네가 어떻게 하데스와 만나 내기를 하게 될지가 관심의 포인트다. 네버나이트는 선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데 몇 달 동안 대기를 하기도 한다. 신들과 인간이 함께 어울려 사는 뉴 아테네는 뉴욕의 맨해튼을 떠오르게 한다.


이곳에 있는 뉴 아테네대학에 다니고 있는 페르세포네는 불멸의 존재인 점을 제외하면 신적인 능력은 전혀 없는 평범한 신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과잉보호하는 어머니로부터 벗어나서 살고 싶어 인간 세계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어머니의 도움 없이 페르세포네는 뉴 아테네에서 인간들과 살 수 없다.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글래머는 신의 형상을 감추고 인간처럼 보이게 변신시켜 주는 마법이다. 그녀는 매일 글래머로 자신의 뿔을 숨기고 인간들과 어울려 산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와 달리 페르세포네의 손길이 닿은 식물들은 곧바로 시들거나 죽어버린다. 이런 딸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무슨 일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는 데메테르는 항상 님프들로 하여금 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도록 하고 있다.


p.47

손목에 뭔가 어두운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피부 위로 검은색 점 몇 개가 솟아 있었다. 몇 개는 작았고 몇 개는 컸다. 마치 단순하고도 우아한 문신이 새겨진 것 같았다.

그리고 뭔가 잘못됐다.


p.81

지하 세계에 생명이라는 게 있기나 한가? 페르세포네는 하데스의 영토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고, 여태껏 읽은 책들에서도 죽은 자들의 땅에 대한 묘사는 전혀 찾지 못했다. 지형 관리 세부 사항들만 나와 있었는데 그마저 책마다 일치하지 않았다. 내일이 되면 알게 되겠지만 네버나이트로 다시 들어가 지하 세계로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이 차올랐다.



로맨스 판타지 소설답게 이 책을 쓴 작가 스칼릿 세인트클레어는 그리스 신화, 미스터리, 로맨스, 환생 등의 주제에 탐닉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과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현대판 로맨스 판타지물로 재해석되었는데, 3권의 책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손길'이라는 제목이 눈에 띈다.


이 책도 로맨틱 판타지 소설이 갖고 있는 특징들을 몇 가지 보여준다. 하데스는 키가 크고 잘 생겼으며, 돈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 여성들이 좋아하는 매력의 수치가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무의식중에 지하 세계의 왕인 하데스를 만나보고 싶다는 강력한 생각에 이끌려 친구 렉사와 함께 찾은 네버나이트에서 하데스를 만나 카드 게임을 하게 된다.


하데스는 처음에는 페르세포네가 누구의 딸인지 몰랐지만 그녀의 매력에 빠지게 되고, 게임에서 이기자 손목에 하나의 표식을 남긴다. 이 표식으로 인해 어머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페르세포네는 오히려 하데스의 손아귀에 놓인 신세가 된다.


다시 클럽을 찾은 페르세포네는 하데스에게 자신의 손목에 새겨진 표식들을 없애 자신을 놓아달라고 하지만 하데스는 들어주지 않는다. 대신 6개월 동안 지하 세계에 생명을 불어 넣을 수 있도록 정원을 돌봐달라며 페르세포네를 유혹한다. 사실 신들의 족보로 따진다면 페르세포네는 하데스의 조카에 해당한다. 데메테르가 그의 누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들의 이야기에서 이런 집안 내력은 중요하지 않다.


p.130

페르세포네가 눈을 떴을 때, 눈꺼풀이 사포처럼 느껴졌다. 잠시 동안 집 침대 위에 누워 있구나 싶었지만, 지하 세계의 강에서 익사할 뻔했다는 사실이 퍼뜩 떠올랐다. 하데스가 그녀를 그의 궁전으로 데려왔고, 지금 누워 있는 곳은 그의 침대다.


p.146

성공한 적도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체 무슨 뜻이지?

하데스에게 물어볼 것이 더욱 많아졌다. 지하 세계에 관한 문단까지 읽은 뒤, 그녀는 글에서 언급된 꽃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페르세포네의 손길이 닿은 식물들은 모두 시들곤 했다. 따라서 그녀는 내기에서 지고 지하 세계에서 어떻게 계약을 이행할지 궁리하며 밤을 지새우게 되고, 또다시 찾은 네버나이트의 하데스 집무실에서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의 집무실에서 서성이다 벽에 손을 대보고는 깜짝 놀란다.


그의 집무실 벽은 지하 세계로 통하는 문 중 하나였는데, 페르세포네는 호기심에 벽 안쪽으로 손을 넣었다가 지하 세계로 떨어진다. 그리고는 스틱스 강을 헤엄쳐 건너다 강을 떠도는 시체들의 공격을 받아 부상을 당한다. 산자는 물론 죽은 자라고 해도 함부로 들어오고 나갈 수 없는 지하 세계에서 하데스는 페르세포네가 스틱스 강을 건너다 다친 것을 보고 화가 난다.


하지만 하데스로부터 정성껏 치료를 받고 지하 세계의 풍경이 생각했던 것과는 딴판이어서 페르세포네는 하데스에게 더 끌리게 된다. 하데스로부터 받는 호의와 그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들게 된 페르세포네와 하데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 데메테르가 어떤 행동과 선택을 할지 궁금해진다.


이처럼 1편에서는 잘 알려진 신화 속 이야기를 작가가 새로운 배경 속 캐릭터로 각색해 책을 읽을수록 흥미진진한 내용 속으로 빠지게 된다. 페르세포네는 하데스에게 끌리는 마음을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했지만 지하 세계의 모습을 보고 나서는 그에게 끌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다. 이들의 거리감을 좁히는 장치로는 '수선화', '스틱스 강'이 활용되고 있는 점도 흥미롭다.


p.185

"믿어봐요. 이 광경이 꽤 볼 만할 테니까."

그가 손가락을 한 번 튕기자 페르세포네는 뼛속까지 피부가 꽉 조여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거울 안에 숨고 나서도 그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마치 폭포 뒤에서 흐릿한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p.201

그녀는 그의 온기를 가까스로 밀쳐내곤 소파에 놓아두었던 배낭을 어깨에 둘러맸다. 문을 나서다 말고 그녀는 잠시 멈춰 섰다.

"그 지도는 당신이 가장 신뢰하는 이들에게만 다 보인다고 했죠. 죽은 자들의 신에게 신뢰를 얻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그는 한 단어로 답했다. "시간"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하데스, 죽은 자들의 왕이 되다'편을 보면 저자는 '우리는 흔히 하데스를 죽음의 신이라고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데스의 면모를 살펴본다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다른 신들과는 다른 의연함과 순수함, 성실한 모습이 엿보인다'고 이야기했다.


이 책에서도 하데스는 많은 힘을 지녔지만 가장 핵심적이고도 강력한 능력은 환생과 부활, 윤회, 죽음을 감지하는 능력, 그리고 영혼을 거두는 능력을 갖고 있는 걸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인간을 비롯해 그보다 약한 신들을 자신의 뜻에 복종하게는 능력이 있고, 투명해지는 힘도 갖고 있다.


이처럼 이 책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좀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신화 속 이야기와 로맨스 판타지로 새롭게 태어난 이야기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읽진 마시기 바란다. 뒤로 갈수록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를 읽을 때처럼 성적 표현 수위가 높아져 얼굴을 붉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새로운 이야기가 꽤 흥미로울 것이다. 아직 1편이라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이 전개될지 더 궁금하다. 무더위가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에 읽기 좋은 로맨틱 소설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이 포스팅은 해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책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