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적으로 혼자 놀기 - 이순신 장군과 함께한 1년
현새로 지음 / 길나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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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상황을 예견했던 것일까? 사진작가 현새로의 혼자 놀기의 진수가 엿보이는 책을 새롭게 발견했다. <인문학적으로 혼자 놀기 - 이순신 장군과 함께한 1년>은 2017년에 출시됐는데, 이 책에서 작가는 여럿이 함께 보단 혼자 놀기를 권하고 있다.


왜? 혼자 놀기는 인간에게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하지만 2020년 3월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전환되면서 3년째로 이어지는 2022년 8월에도 여전히 사회적 거리두기는 일상적인 활동이 되었다.


비대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다 보면 함께 하기보단 혼자서 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하지만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보면 나쁘지 않다. 내 경우에도 지난 2년여녀의 시간 동안 혼자 책 읽고 사색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p.9

옛사람들은 혼자 놀기를 즐겼다. 글방에서 홀로 서책을 끼고 우주와 인간사의 섭리와 철학을 파고들었다. 인터넷 기술은 아예 없고, 교통도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어쩌면 옛사람들이 글방에서 고독을 즐긴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데도 모른다. 지금은 그때와는 완전히 딴 세상이다. 인터넷과 교통이 발달한 덕분에 다른 사람과 교류하거나 모여서 놀기가 한층 수월해졌다.


p.21

도심의 풍경이 빠르게 멀어진다. 인위적인 것들은 찰나에 사라져버리지만, 자연의 풍경은 멀리까지도 그대로다. 어딘가로 떠날 때면 늘 그렇듯 이번에도 시간과 공간이 부리는 마법을 느낀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공평한 스물네 시간, 집안일을 하며 종종거려도, 이렇게 버스에 몸을 맡기고 가만히 앉아 있어도 시간은 간다. 똑같이 흐르는 시간에 버스는 나를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데려다준다.




사진작가 현새로는 좋아하는 사진 작업을 계속하면서 자신의 활동 영역을 확대하다가 인문학이 주는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사진에 인문학적인 깊이를 더해 꾸준히 자신만의 작업의 한계를 넓히다 보니 프로젝트가 끝날 때마다 성과집처럼 한 권의 책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작가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데는 자격증도 필요 없고 나이도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다. 충남 아산시에 자리 잡은 현충사를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 이순신 장군과 만났던 여정을 <인문학적으로 놀기>를 통해 소개했다. 매주 현충사를 찾아가 걷고, 사색하고, 사진 찍으며 보낸 1년의 시간을 한 권의 책을 통해 함께 할 수 있다.


현충사가 자리 잡은 곳은 원래 이순신 장군이 혼인 후 무예를 연마하며 구국의 역량을 기르던 장소였는데, 훗날 이 뜻깊은 장소에 사당을 세운 것이 지금의 현충사가 됐다고 한다. 그런데 작가는 왜 현충사를 찾아갔을까? 그것은 이순신 장군에 관한 오해를 풀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p.36

저마다 내뱉는 단어는 달라도 감동은 하나였다. 단풍나무를 본 사람들은 내내 탄성을 지르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아름다운 광경을 마주친 것처럼 미친 듯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이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되면 사랑하는 이를 떠올린다. 함께 와서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면서 말이다. 사진을 다 찍고 나니 행복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눈이 누리는 호사에 행복했고, 이런 아름다움을 가족에게 보여 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p.75

홍매화가 만개했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한산하던 현충사가 사람들로 붐볐다. 다른 날보다 휠체어를 미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니던 때가 떠오른다. 고백하자면 유모차를 밀고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 나는 장애우를 위한 시설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막연히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아주 이론적인 생각만 했을 뿐, 실제로 많은 사람이 어떤 불편을 겪고 있는지는 몰랐다.




과거 군사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무관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현충사를 과대 포장하고 성역화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것이 전부는 아니란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작가는 현충사에서 보낸 1년 동안 그곳의 사계절을 감상하는 한편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세상을 관조하기에 더없이 좋았다고 이야기했다. 작가의 혼자 놀기는 현충사에 드나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칼의 노래> 외에도 <난중일기>, <징비록> 등 이순신 장군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을 찾아 읽으면서 사진에 담지 못했던 이순신 장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데도 심취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사진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계절에 따라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현충사의 모습이 꽤 인상적이다. 현충사의 사계절을 담은 사진을 보고 있으면 언제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p.112

현충사의 배롱나무는 무슨 의미를 지녔을까? 나무를 심은 사람이야 특별히 어떤 가르침을 주려는 의도 없이 그저 보기 좋으라고 심었을 수 있다. 그러나 나무는 언제나 보물을 감추고 있다. 만약 인생의 보물찾기에 지도가 있다면 나무 있는 곳마다 보물을 표시한 X표시가 그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배롱나무는 늑장을 부리는 대신 제일 오래 꽃을 피우는 나무다. 봄에 꽃을 찾아 현충사에 갔을 때, 다른 나무들이 제가끔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자기가 제일 예쁘다는 듯 뽐낼 때, 배롱나무만은 잎사귀조차 틔우지 못하고 여릿여릿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었다.


p.120

오늘날 여수, 한산도, 통영 등 각지에 남아 있는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나 비석 등 유적 대부분은 그 지방 백성들이 스스로 세운 것이다. 조정에서 시키지 않아도 백성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장군을 추모했다. 지금도 이순신 장군에 관한 책을 찾아 읽다 보면 장군의 삶에 감화해서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해 책을 냈다는 저자들의 고백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문학적으로 놀기>는 현충사의 사계절을 담은 작가의 사진을 통해 이순신 장군과 새롭게 만날 수 있었던 꽤 흥미로운 책이다. 특히 작가처럼 꼼꼼하게 주변을 관찰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휴대폰으로라도 주변 풍경을 담고 간단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푹 빠져 읽었다.


나이를 한두 살 더 먹어감에 따라 자주 가는 곳이 생기고 있다. 집 앞에 있는 공원을 비롯해 회사 근처에 있는 광화문 광장도 그중 한 곳이다. 가끔 점심을 먹고 효자로를 따라 청와대 근처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곤 했는데. 요즘엔 청와대 개방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어 다른 길로 산책을 다닌다.


경희궁 길을 따라 성곡미술관 주변으로 산책을 다니곤 하는데, 작가처럼 인문학적이진 않아도 혼자 노는데 나름 익숙하니 주변의 풍경을 눈으로 담고 가슴에도 새겨보고 싶다.




이 포스팅은 길나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박기자의 책에 끌리다, 책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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