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리처드 파워스 지음, 이수현 옮김, 해도연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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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에 동물원에 가면 코끼리도 있고 사자도 볼 수 있고, 기린, 곰, 타조, 공작새 등 다양한 동물들을 한번에 볼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자라면서 새장에 갇혀 있는 새들을 보거나 목줄을 풀기 위해 애를 쓰는 동물들을 볼 때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2년 넘게 팬데믹을 겪었던 사람들도 힘들었겠지만 동물들도 힘든 시간을 버텨냈을 것이다. 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깨달았던 시기다. 하지만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과거의 기억들은 조금씩 잊고 다시 자유로웠던 시절로 빠르게 회귀하고 있다.


인간이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 만큼 새들로 비유되는 자연도 자유롭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이기심은 선을 넘어서고 있다. 애완동물 천만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동물학대를 하는 사람들이 있고, 함부로 버린 담배꽁초로 산불이 나면 오랜 시간 동안 풍요로웠던 숲과 나무를 한순간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지 않는가.


p.166

스테이시스 행성은 지구와 많이 비슷해 보였다. 흐르는 물과 우리가 내려 선 초록 산맥도 그렇고, 나무가 우거진 숲과 꽃이 피는 식물들, 달팽이와 땅벌레와 날아다니는 딱정벌레들, 심지어 척추동물마저도 다 우리가 익히 아는 동물들의 친척이었다.


p.167

하지만 스테이시스에서 며칠을 지내보면 여기도 다른 곳 못지 않게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행성은 축이 약간 기울어져 있었기에, 위도마다 단조로운 계절 하나씩만 존재했다. 밀도 높은 대기가 기온 변동을 없앴다. 지구보다 큰 구조판들은 재난을 거의 겪지 않고 대륙을 재활용했다. 근처 행성들이 두꺼운 방어막을 이루고 있어 이를 뚫고 떨어지는 운석도 거의 없었다. 그래서 스테이시스의 기후는 행성의 역사 내내 거의 안정적이었다.




이처럼 사람들의 무관심과 방만한 모습으로 새가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면 결국 인간도 설 자리를 잃고 말 것이다. 리처드 파워스의 신작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Bewilderment)>을 읽다 보니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써 어떤 세상을 만들어주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연약한 소년 로빈의 이야기를 통해 보호받아야 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바로 동물과 아이들, 그리고 그들이 살아야 하는 자연이다. 현재를 사는 사람들은 후대를 위해 더 좋은 환경과 삶의 터전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러한 기조에서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한 편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 또한 평범하지 않은 아이를 아빠나 엄마가홀로 키우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되돌아 보게 한다. 이처럼 이 소설은 여러 가지 생각과 감상에 젖게 하면서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p.16

내 아들 로빈은 언제나 잠을 잘 자지 못했다. 한 계절에 몇 번씩 침대에 오줌을 쌌고, 그러고 나면 수치심에 등이 굽었다. 소음에 동요했다. 텔레비전 소리는 내가 듣지 못할 정도로 낮추기를 좋아했다. 원숭이 인형이 세탁실 세탁기 위해 앉아 있지 않으면 싫어했다.


p.17

학교에서 로빈에게 이틀 정학을 내리고 자기네 의사들을 투입했을 때, 나는 최후의 반동분자가 된 느낌이었다. 설명할 게 무엇이 있단 말인가? 합성 섬유는 로빈에게 끔찍한 습진을 일으켰다. 동급생들은 로빈이 자기들의 잔인한 험담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괴롭혔다. 로빈의 엄마는 아이가 일곱 살 때 교통사고로 죽었다. 몇 달 후에는 로빈의 개가 착란으로 죽었다.




외계 생명체의 흔적을 찾는 우주생물학자 시오를 보면 지구와 같거나 혹은 비슷한 환경을 찾고자 하는 시도를 엿볼 수 있다.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사랑한 동물권활동가인 아내 얼리사를 통해 지구상의 모든 동물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아들 로빈의 생각과 행동들은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책을 덮을 때쯤에 이 소설의 원제목인 'Bewilderment'란 말을 다시 들여다 보게 됐다. 이 말은 '당혹'이라는 표현으로 실제로 당혹스런 상황에 빠지게 된다. 내가 생각했던 스토리와는 거리가 멀어진 느낌도 든다. 어찌됐든 짧게나마 줄거리를 소개하면, 시오는 아내 얼리사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아홉 살된 아들 로빈을 홀로 키우며 아이의 꿈과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의 아들 로빈은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를 가지고 있는 평범하지 않은 아이다. 엄마와 반려견을 차례로 잃은 후 그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 급기야 가족의 추억이 깃든 스모키산맥으로 아빠와 야영을 다녀온 직후, 로빈은 학교에서 친구의 얼굴을 보온병으로 때려 다치게 한 일로 정학을 당하기도 하는 등 평범한 일상과는 다른 삶의 궤적을 그리게 된다.


p.86

'이거 볼래, 아빠.' 로빈은 얼리사가 동물 살해 경쟁 금지 법안을 위해 증언하는 클립을 가리켰다.

"저건 나중에 네가 열 살이 되었을 때를 위해 아껴 두자, 로비. 이쪽에 있는 건 어때?" 주머니쥐 던지기라는 행위에 반대 로비를 하는 얼리사. 연례 '개척자의 날' 행사 기간에 일어나는 돼지 학대에 항의하는 얼리사. 그것들도 골치 아프긴 하지만 로빈이 보고 싶어하는 영상에 비하면 나았다.


p.170

나는 매주의 변화를 알아볼 수 있었다. 로빈은 이제 더 빨리 웃고, 더 느리게 폭발했다. 불만이 있을 때도 더 장난기가 있었다. 해 질 녘이면 가만히 앉아서 새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어떤 특징이 원래 아들의 것이고 어떤 특징이 그 '팀'에서 왔는지 확실히 구별하지 못했다. 매일 작은 변화가 섞여 들며 자연스럽게 정착했다.



한편 조류학자가 꿈인 로빈은 동물권활동가였던 엄마가 생전에 하고자 했던 일을 돕겠다며 파머스 마켓에 나가 판매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로빈이 그린 그림은 지구상에서 멸종된 생명체들로 정교한 아이의 그림 솜씨에 사람들은 놀라고, 이로 인해 로빈은 점점 더 그림에 몰두하게 된다.


학교에서는 평범하지 않은 로빈에게 향정신성 약물치료를 권하지만 시오는 이를 거부한다. 아홉살 아이에게 어떤 약물을 투입한다고 한다고 할 때 어느 부모가 선뜻 찬성하고 나설까. 하지만 일반적인 아이들과 다른 행동을 하거나 그런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색안경을 끼고 대하곤 있진 않은가. 만약 그 아이가 내 아이라면 상황은 180도 달라질 것이다.


시오는 약물로 인해 아이에게 어떤 효과를 미칠지 두렵고, 그게 해결책이란 생각도 들지 않는다. 또한 아들의 별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아내의 친구였던 신경과학자 마틴 커리어에게 자문을 구하고, 그가 제안하는 실험 단계에 있는 '디코디드 뉴로피드백' 치료를 로빈에게 받게 한다.


p.386

모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낼 수 없는 행성이 하나 있었다. 그 행성은 고독 때문에 죽었다. 그런 일이 우리은하에서만 수십억 번이나 일어났다.


p.387

상하이에서는 200만 명이 집을 잃었다. 피닉스에는 물이 없어졌다. 바이러스성 광우병이 소에서 사람으로 옮겨 갔다.



이 기술은 사람을 고통에서 해방시킬 수 있다고 하는데. 부모로써 아이에게 최고의 것을 해주고 싶지만 주어진 환경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로빈은 이 훈련을 통해 어머니의 생전 두뇌 활동 패턴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차츰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그 아이에게 결과적으로 좋은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동물과 자연, 세대의 불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새들이 모조리 사라진다면>은 한글화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자연 파괴로 인한 위기와 경고에 대한 메시지를 다고 있다. 또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 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담겨 있다.


유수의 언론 매체들의 집중 조명을 받는 한편, 전 세계 독자들의 감동적인 후기가 쏟아져 머지않아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영화라는 영상 이미지로 갈아입는다면 어떤 빛깔을 낼지 궁금하다.



이 포스팅은 알에이치코리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박기자의 끌리는 이야기, 책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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