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멋진, 거짓말 - 어쩌다 보니 황혼, 마음은 놔두고 나이만 들었습니다
이나미 지음 / 쌤앤파커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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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황혼,

마음은 놔두고

나이만 들었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빛나던 한때는 있을 것이다. '왕년에 내가 말이야'라고 했던 말을, 이제는 '라때는 말이야'로 바꿔서 말하지만 결국 자신이 추억하던 시절, 잘 나갔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회상이 짙게 배어 있는 말로 들린다.


​<인생이라는 멋진, 거짓말>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자 분석 심리 연구가인 이나미 박사가 황혼으로 접어든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 놓은 책이다. 자신의 주변을 때로는 깊숙이, 때로는 멀찍이서 바라보며, ‘마음은 어딘가에 놔두고 나이만 들었다’며 한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제야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며 안도하기도 하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문득 지난날들을 돌아보자면, '행복하고도 불행했던 그 많은 순간들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하며,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자책과 원망으로 잠못 이루며 흘렸던 눈물이나, 누군가에게 뱉었던 독한 말들도 떠오른다고. 하지만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듯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힘들었던 순간들이 남의 일처럼 느껴질 때가 거짓말처럼 내게 왔듯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피아니스트를 꿈꿨지만 현실에 타협해버렸던 학창 시절, 자퇴서를 품고 다녔던 의과대학 시절, 일요일도 빠지지 않고 이른 아침에 밥상을 차려드려야 했던 시부모 밑에서의 시집살이, 치매에 걸린 시부모를 모셨을 때의 처절한 나날들... 저자는 젊은 날 사는 게 너무 힘들고 버거워 그냥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며, 한때는 집에서고 밖에서도 소처럼 일하다, 폭삭 쓰러져 입원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때는 오히려 죽음을 떠올릴 시간조차 없었다고.


​아이들에 대한 책임, 아픈 부모들에 대한 부담, 자신을 키워준 사회에 대한 염치 같은 것들 때문에라도 섣불리 행동할 수 없었다며, 그렇게 놓아버린 죽음에 대한 유혹들이 육십이라는 나이에 서고 보니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고 말했다. 어쩌면 굳이 힘들게 죽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나이가 들어서, 아무에게도 상처나 죄의식 같은 것을 심어주지 않아도 고되고 무거운 삶을 떠날 수 있는 날이 바짝 당겨져 와 있는 느낌이 든다며.


저자는 자신이 죽을 날짜를 알게 된다는 건 일종의 사형수가 되는 것과 같다며, 그때부터 죽음은 타인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몫이 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자신의 마지막을 알지 못하면 죽음과 관련된 난리법석과 귀찮음과 슬픔과 허무함 따위는 나와 상관없는 듯 평온하게 살 수 있지만, 나의 마지막을 확실히 알게 되면 매일 마지막을 상상하느라 죽음이라는 콤플렉스에 사로잡힐 것 같다고.




<인생이라는 멋진, 거짓말>은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많은 이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저자는 인생이라는 멋진, 때로는 허무한 거짓말에 울고 웃다 보면 어느덧 노년의 삶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며, 살아온 시간을 반추하고 그 이후의 시간을 내다보며 비로소 죽음까지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됐다고 말했다. ‘늙어감’을 받아들이고, ‘사라짐’에 대한 서글픔을 잠재우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나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며 어르신 소리를 들을 만큼의 나이는 아직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나이만 먹었다고 하소연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덜 분노하고 좀 덜 집착하고 좀 덜 애썼을 텐데... 하면서 지난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반대로 분노해야 할 때 제대로 분노하고 끈기 있게 버티고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할 걸 하는 후회도 된다고.


​어렸을 적엔 '육십'이란 나이가 되면 할머니,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게 당연했고, 오래 잘 사셨다는 의미로 자식들이 환갑잔치를 열어 드렸다. 가족은 물론 친인척과 동네 사람들이 모여 흥겹게 먹고 마시며 축하 노래를 다 함께 불렀다. 요즘 육십대는 어떤가?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엔 애매한 나이다. 환갑잔치를 여는 육십대를 최근에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칠순이나 팔순 정도는 되어야 예전 같은 환갑잔치를 열고 있고, 그마저도 사라지는 분위기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길목에서의 삶, 그쯤에 서서 생각해 보는 죽음과 이별,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들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는 나이대도 있을 것이고, 공감되는 나이대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이 얼마 안 있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무(無)’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사는 동안 남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무지 애를 썼고, 이름을 떠올리면 추억으로 미소라도 짓게 만드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고 있지만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 우울하거나 어두워질 일은 없다.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의 삶을 통해 충만함을 느낀다. 무슨 거대한 담론이나 철학적인 내용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지나온 삶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삶아가야 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들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불안하고 마음 졸였던 2020년이 지났지만 백신 접종은 언제쯤 내 차례가 될지, 그동안 확진자와 접촉하지 않고, 확진자로 분류되지 않길 바라며 주말에도 집콕하는 생활을 언제까지 이어가야 할지 답답한 생각도 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잠못 이루는 밤도 많지만 마스크마저 익숙한 모자를 쓰듯 편안해진 요즘, 어느새 추운 겨울이 지나고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계절 봄이 오고 있다. 인생의 봄은 라때는 말이야라고 과거형으로 말하는 대신 바로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사는 것이지 않을까.



이 글은 쌤앤파커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https://blog.naver.com/twinkaka/222266994855


[책에끌리다] 유튜브 서평 채널 https://bit.ly/2YJHL6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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