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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의 사회학 - 디자인으로 읽는 인문 이야기
석중휘 지음 / 도도(도서출판) / 2021년 1월
평점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의미 파악’이란 걸 잘해야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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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의 사회학>에서 저자는 '호구'라는 범주 안에 몰린 사람들, 자기계발서를 통해 호구라는 타이틀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더 이상 호구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지 말고, 그 이면에 숨은 심리를 파악해 나름 세상의 한 축을 이어나가는 ‘줄’로 살아보자고 말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 교수로서 경력을 쌓아 온 저자는 어느 순간 이런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왜 우리는 우리에게 씌운 이중 잣대가 필요했는지, 세상이 존재하는 ‘선’이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 그 안에서 ‘호구’가 어떻게 생기는지, 그 원인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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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랜 시간 동안 디자인 바닥을 누비며 느꼈던 무언가는 ‘갑’과 ‘을’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고, 착하고 일 잘하고, 거절하지 못하는 성향을 가졌다면 종종 ‘호구’로 취급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당당하게 내 것(디자인)을 가져가고도 그에 대한 대가를 주지 않는 것은 경우도 흔했다고 이야기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 즉 배려를 배신으로 갚는 사람들은 어떤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그들은 대개 칭찬을 잘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내보이고, 상대방에 대한 신뢰를 쉽게 표현하는데, 대가를 지불할 때는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때로는 연락도 두절된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호한 경계에 서 있는 ‘익숙함’과 ‘새로움’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어 하는 ‘호구’ 또는 ‘을’이라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책에 담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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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니 신입기자 시절에 일상적으로 야근을 많이 했던 때가 생각났다. 마감일을 맞춰야 하다 보면 밤늦게까지 일하기도 했고, 철야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말 근무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분위기 속에 3개월의 수습 기간이 지나면 함께 일할 사람인지 아닌지가 갈렸다. 이런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면 다른 길을 찾아 보따리를 쌌다.
그때는 그런 일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하기보단 일종의 낭만이란 것이 있었다. 마감하고 새벽 1~2시에도 삼삼오오 모여 소주잔을 기울였다. '으쌰 으쌰' 하는 분위기는 다음 마감 때까지 이어지고 또 다른 마감을 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요즘에는 그런 낭만적인 분위기는 실종된 지 오래전이다. 야근도 안 하지만 주말 근무를 해야 할 것 같다는 말도 꺼내기도 힘든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지만 부서장급들은 여전히 늦게까지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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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는 일종의 법칙이 있다고 말했다. 호구로 불리는 사람들은 대개 거절을 잘 못한다는 특성이 있다. 나름 착하고, 나름 일도 잘 한다. 또 나름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베풀기도 잘 한다. 하지만 눈치가 없어서 상대방의 의도는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세상엔 ‘선(線)’이라는 것이 있고, 기호(記號)와 기호(嗜好)가 있는데, 우리는 나름 경험과 교육을 통해 이 ‘선’의 높낮이를 정하고, 그 변주에 따라 서로의 삶들을 재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호와 기호 사이의 숨은 사인을 알아내려는 노력은 삶을 살아가는 나름의 방법일 것이다.
<호구의 사회학>은 우리가 모호하게 여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재단하고 판단하고 있는, 특히 디자인 분야에서 말하는 '선(線)'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에세이인 동시에 디자인에 대한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 글은 도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https://blog.naver.com/twinkaka/222229770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