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는 길을 묻지 마라
나태주 지음 / 열림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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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시인을 다시 만났다. <풀꽃>을 언제 읽었는지 시간의 기억은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시를 읽었을 때의 감정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시인의 새로운 시집 <사막에서는 길을 묻지 마라>는 우리의 인생을 사막에 빗대어 그만의 언어로 새롭게 풀어냈다. ‘시산문’이라는 장르로 소개된 이 시집에는 나태주 시인의 짧고 간결한 언어들이 정제된 감정들과 함께 녹아 있다.


'사막'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모래바람이 부는 메마르고 거칠 장면이 먼저 연상된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주인공 윌 헌팅은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경험해 본 것들은 없어서 어느 곳의 냄새나 바람의 숨결을 알지 못한다. 내가 느끼는 사막에 대한 기억도 비슷할 것이다. 모래를 품은 사막이 어떤 냄새와 빛깔을 갖고 있는지 시인은 궁금했던 모양이다.



<사막에서는 길을 묻지 마라>는 오랜 세월 시인이 동경했던 사막을 주제로 쓴 시집이다. 사막을 처음 마주했을 때 시인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낙타’에서 ‘모래’에 이르기까지 그가 사막에서 마주한 존재들은 시집을 통해 우리가 인생에서 잊고 살아왔던 가치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일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책 읽을 시간을 내지 못했다. 책을 읽지 않다 보니, 시는 더더욱 멀어져 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보내온 편지에는 시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당시에 <풀꽃>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이 시인의 새로운 시집을 읽다 보니 모래바람을 타고 다시금 가슴을 뜨겁게 한다.


학교 다닐 적에는 '시'에 대한 문제를 푸는 것이 국어 시험을 볼 때 가장 힘들었다. 시인이 시를 썼던 감정을 고스란히 이해하는 것도 어려웠지만 출제자의 의도에 맞는 답을 고르는 건 더더욱 어려웠다. 출제자가 답이라고 정했던 정답이 시인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아들아 지고 있는 짐이 무겁냐 / 부리고 싶으냐 / 모래밭에 발이 빠져 /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으냐 / ... 중략 ... / 지고 있는 짐 버겁다 해서 / 너의 짐 함부로 부리지 않을 것이며 / 다른 낙타에게 대신 / 지고 가게 하지도 않을 것을 / 나는 믿는다 고마운 일이다'

- 아들 낙타에게 -



삶의 무게는 나이가 들수록 가벼워질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더 힘들고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다고 등에 진 짐을 함부로 내려놓을 수도 없다. 시인의 말처럼 '등에 진 짐이 살을 파고들어도 그것은 / 아직은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니냐'라는 이야기에 공감하면서 무릎을 치게 된다.


햇볕만 가득한 곳은 언젠가는 사막이 된다는 말이 있다. 비도 오고 눈도 와야 메마른 땅이 되지 않고 곡식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되듯, 어느 누구라도 좋은 날은 있으면 안 좋은 날도 있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시간도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이 인생이다.





<사막에서는 길을 묻지 마라>는 시인 나태주가 사막으로 여행을 떠나서 그곳에서 보았던 세상 속에서 삶의 진리와 이치를 깨닫고 다시 생각해 보는 과정에서 씌여졌을 것 같다. 치열한 삶을 뒤로하고 휴식의 공간으로 사막을 찾은 시인은 무엇을 보았을까. 사막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그동안 시인이 말해 왔던 '풀잎'처럼 초록의 빛깔 대신 거센 모래바람이 불고 신기루로 사람의 눈을 현혹하기도 하는 세상 속에서 시인은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다.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읽다 보니 사막에 가보고 싶어졌다. 막연히 동경하고 미지의 세계였던 사막에서 나는 무엇을 보고 싶은 것일까. 그곳에 가보면 알지 않을까.



누군가 아름답게 / 비워둔 자리 / 누군가 깨끗하게 / 남겨둔 자리 / 그 자리에 앉을 때 / 나도 향기가 되고 / 고운 새소리 되고 / 꽃이 됩니다 / 나도 누군가에게 / 아름답고 깨끗하게 / 비워둔 자리이고 싶습니다

- 빈자리 -





시인은 쉽게 사막에 갈 기회가 없었다며, 실제 사막을 처음 만난 건 회갑 나이 무렵이었다고 소개했다. 미국으로 문학 강연 초청을 받아 라스베이거스와 그랜드캐니언을 찾아가는 길에 모하비사막과 네바다 사막을 처음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몇 차례 걸쳐 사막을 찾으며 그는 사막이란 모래와 하늘과 바람만 있는 곳이 아니라, 더러는 풀과 나무가 자라기도 하고, 꽃이 피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산도 있고 언덕도 있고 골짜기도 있고 강물도 흐른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확인했다. 이제 시인은 더 이상 사막을 꿈꾸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인생에 인생을 묻지 않고, 인생에서 길을 찾지 않듯, 사막에서는 길을 묻지 말라고 말했다. 발길 닫는 곳이 길이고, 멈추는 곳이 집이고, 눕는 곳이 그대의 방이라는 것이다. 인생에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그냥 열심히 살아보라는, 삶이 다할 때까지 그냥 살아보라는 시인의 말이 새삼 가슴 깊은 울림으로 남는다.




이 책은 열림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 출처 : https://blog.naver.com/twinkaka/222146332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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