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벨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바야시 야스미의 신작 <팅커벨 죽이기>는 네버랜드를 배경으로 모험을 떠났던 피터 팬과 웬디, 그리고 웬디의 동생들이 다시 네버랜드로 향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죽이기 시리즈’로 잘 알려진 그의 작품은 동화와 미스터리를 융합해 재구축한 세계관을 비롯해 잔혹과 환상을 넘나드는 스토리로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다. <팅커벨 죽이기>는 <앨리스 죽이기>, <클라라 죽이기>, <도로시 죽이기>를 잇는 네 번째 이야기다.


그의 작품은 기존의 영화나 드라마, 게임, 소설에서 등장인물이나 설정, 모티브 등을 가져와 새로운 이야기로 구성하거나 아예 새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스핀-오프(spin-off)'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빨간 모자>, <헨젤과 그레텔> 등 우리나라 아이들도 즐겨 읽는 유럽 동화의 원작이 실상은 잔혹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잔혹동화라고도 알려져 충격을 준 일도 있어서 또 다른 형식의 잔혹동화 속 이야기일지 궁금하다.




고바야시 야스미의 '죽이기 시리즈'에는 기존 작품의 주인공이 등장하지만 실상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고 사건을 해결하는 진짜 주인공은 도마뱀 '빌'과 빌과는 꿈으로 연결되어 있는 '이모리'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처음 출시됐던 <앨리스 죽이기>에서 도마뱀 빌은 이상한 나라에서 앨리스를 만나 모험을 시작하면서 등장한다.


이후 출시된 <클라라 죽이기>에선 물에 빠졌다 어떤 호수에서 정신을 차린 빌이 호프만 우주의 사람과 살인사건을 수사하고, <도로시 죽이기>에선 뜨거운 사막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 후 오즈의 나라로 가서 활약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신작 <팅커벨 죽이기>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낸 빌은 네버랜드로 향하는 피터 팬, 웬디 일행과 다시 만나 살해당한 팅커벨 수사에 나선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어른이 되어 버린 '피터 팬'과 마법 섬에서 다시 만난 피터의 맞수 '후크 선장'의 대결을 그린 영화 <후크(Hook, 1991)>가 생각났다. 버킷 햇을 쓰고 장난꾸러기 같은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살 것 같았던 피터 팬은 과거를 잊고 고소공포증이 있는 40세 중년의 변호사가 되어 있다. 아내와 두 아이를 두었지만 일에 빠져 가족들을 소홀히 대하는 가장이 되어 있다. 요즘 같은 위드(with) 코로나 시대에 아이들과 함께 보면 좋을 영화다.





"저기, 피터." 웬디가 물었다.

"방향은 이쪽이 맞아?"

"방향? 무슨 방향?"

"그야 네버랜드로 가는 방향이."

"흠, 왜 그게 궁금한데?"

- 9페이지



고바야시 야스미 작품을 읽다 보면 어렸을 재밌게 읽거나 보았던 동화나 애니메이션 속의 잔잔한 감동들이 동심 파괴하듯 무참히 짓밟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팅커벨 죽이기>에서도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었던 피터 팬은 아이들을 귀찮은 존재처럼 여기는 것 같다. 그나마 웬디는 영화 <후크>에서처럼 친절한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팅커벨 죽이기>에서 네버랜드로 날아가는 피터 팬을 따라가는 나선 웬디는 나뭇잎을 꿰매서 만든 옷을 입은 피터가 겉모습은 열 살 정도로 보이지만 말투나 태도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진 모습에 놀란다. 지난번 모험 이후 피터 팬은 봄철 대청소할 때 네버랜드로 데려가기 위해 웬디를 데리러로 오겠다고 약속했지만 봄이 아니라 여름에 데리러, 그것도 한밤중에 찾아왔다.


한편 한밤중에 잠에서 깬 그녀의 동생들도 네버랜드로 함께 향하게 되는데, 오랜 시간 동안 먹지 못한 아이들이 배고파하자 피터는 퉁명스럽게 말하곤 훌쩍 떠났다가 독수리와 싸워서 물고 있던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깃덩이를 날 거 그대로 주며 먹으라고 한다.




웬디는 입을 크게 벌리고 고깃덩이를 덥석 깨물었다.

그리고 살점을 물어뜨었다.

입안에 철과 소금 맛이 번졌다.

"아야!" 고깃덩어리가 소리쳤다.


--- 중략


"부탁이야! 날 먹지 마." 고깃덩이가 애원해따.

"벌써 조금 먹었는데." 웬디는 미안해하며 말했다.

- 23~24페이지



<도로시 죽이기>에서 등장했던 도마뱀 빌이 다시 등장하는 대목이다. 바다 위를 날던 배고픈 아이들에게 빌이 잡아먹힐 뻔하지만 웬디의 만류로 죽지 않고 살아서 '이상한 나라'로 가는 대신 아이들과 함께 네버랜드로 간다. 며칠 후 도착한 어느 섬으로부터 쑥 들어간 만에서 살기를 띤 포탄이 발사되고.


섬 여기저기서 푸르스름하니 으스스 한 불빛이 번쩍이고, "결코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 온 걸 환영한다."라고 말하는 피터 팬은 천진난만하면서도 사악한 웃을 짓는다.





한편 이모리 겐은 빌이 체험한 일을 기억하고 반대로 이모리가 체험한 일은 빌의 기억에도 남아 있다. 다만 각자가 상대의 체험을 꿈속의 일이라고 느낀다. 동창생들과 만나 자리에서 이모리는 뺨에 포크와 칼이 꽂히고, 동창생들은 이모리의 피부가 찢어져라 아무렇게나 잡아챈다. 가게에 피보라가 일고... 이 장면은 도마뱀 빌이 죽다 살아난 장면과 묘하게 겹친다.


피터와 소년들이 집을 비운 사이, 팅커벨이 살해된 채 발견되고. 소년들은 ‘죽는 건 엄청난 대모험’이라 떠들어대곤 했던 피터를 의심하지만 제멋대로 구는 아이를 넘어 폭군으로 변해버린 피터 팬에게 아무도 이야기를 못한다. 정작 피터는 자신이 범인을 찾겠다며 탐정이자 형사 노릇을 하고, 빌은 조수로 살인사건의 범인을 찾아 나선다.


죽음으로 이어진 또 하나의 세계이자 가장 무서운 곳이 되어버린 네버랜드. 이들이 도착한 네버랜드에서는 매일 살육전이 일어나고, 이곳 아이들은 피에 굶주려 있다. 피터는 아들을 해적과의 목숨을 건 전투에 동원한다. 원작이 갖고 있는 잔혹성에 작가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네버랜드를 배경으로 지구와 연결된 고리를 통해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새로운 얼개로 짜여진다. 잔인하고 살벌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책은 검은숲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썼다.



* 출처 : https://blog.naver.com/twinkaka/222092699153


가장 무서운 그곳이 열리고 말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