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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공장
엘리자베스 맥닐 지음, 박설영 옮김 / B612 / 2020년 6월
평점 :
1850년대 런던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스릴러 <인형공장(The Doll Factory)>. 공포와 스릴러물은 읽기가 좀 꺼려지지만 읽을수록 이야기에 빠지게 되어 어떤 결말에 이를지 상상하면서 읽게 된다. 이 책은 500페이지가 넘는 좀 긴 스토리를 가진 소설이지만 복잡한 플롯은 아니다. 인형가게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는 신비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 '아이리스'가 주인공으로, 그녀의 꿈은 유명한 화가가 되는 것이다. 한편 수집품들을 전시할 대형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꿈인 사이러스는 소름 돋는 기괴한 수집품을 병적으로 모으는 수집가다. 이처럼 초반부에 등장하는 캐릭터 설정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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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공장>을 쓴 엘리자베스 맥닐(Elizabeth Macneal)은 자신이 이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이 런던에 갔던 열 살 때였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런던이라는 낯선 도시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햄릿>에 등장하는 오필리아가 자살한 장면을 놀랍도록 세밀하게 그린 존 에버렛 밀레이의 <오필리아>에 완전히 사로잡혔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대학시절 <오필리아>의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진 '엘리자베스 시달'에 주목했다. 그녀가 화가를 꿈꿨지만 당시 남성 위주의 시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화가로 성장하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인생을 마친 점들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작가를 꿈꾸며 일을 하면서 글쓰기 공부를 마쳤고, 다양한 책들을 섭렵하면서 내공을 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하의 한 이상한 박물관에서 영감을 받아 <인형공장>을 쓰게 됐다고 소개했다.
작가는 수집가라는 아이디어에 엘리자베스 시달의 이야기를 섞어 <인형공장>을 완성했다. 따라서 이 소설에는 집착과 소유, 예술적인 기교들에 대해 엿볼 수 있다. 시달이 모자 가게에서 갇혀 있었다면 아이리스는 인형 가게에 갇힌 신세로 그렸다는 점이 대비되도록 구성했다는 점에서 소설을 구성할 때 캐릭터 설정과 배경 설정 등 다 계획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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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새로운 예술과 열망이 가득했던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시대 뒷골목 런던이 배경이다. 런던의 지저분한 뒷골목은 인간들의 내면에 깃든 다양한 욕망처럼 기괴한 사건의 발생지로 묘사된다. 소설의 주인공 아이리스는 선천적 쇄골 기형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미인의 조건을 볼 때 쇄골을 보기도 한다는데 개인적으론 잘 모르겠다. 한편 그녀의 쌍둥이 언니 '로즈'는 예쁜 얼굴을 갖고 태어났지만 열다섯 살에 천연두에 걸려 죽을 뻔한 고비를 넘겼다. 이로 인해 왼쪽 눈은 시력을 잃었고 살이 움푹 패이는 흉터가 남았다.
아이리스와 로즈는 인형공장에서 도자기 인형의 얼굴을 그리고, 인형에 색칠을 하고, 인형 옷을 바느질해 입혀서 하나의 인형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지긋지긋한 그곳에서 탈출하고 싶어 한다. 인형 얼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화가 루이스가 아이리스에게 자신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제안한다. 그는 인형공장에서 받던 그녀의 월급 보다 몇 배 더 좋은 조건에 친절하게 그림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는데...
한편 사이러스는 불우한 어린 시절의 영향으로 기괴한 것들을 수집하고 개나 쥐, 곤충들을 박제하고 동물의 뼈를 수집하는 것으로 쾌락을 느끼면 산다. 어느 날 아이리스를 보고 반해 그녀에게 집착하게 되는데. 그는 그녀를 납치할 계획을 세우는 등 그녀의 존재를 자신의 것으로 여긴다. 뉴스에서도 잘못된 집착으로 인해 끔찍한 살인 사건을 저지르는 소식을 종종 보게 된다. 이 책에서는 사이러스란 인물을 소개하는 과정에서 박제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 과정이 흥미롭다. 작가의 말처럼 수집가에 대한 집착처럼 보인다. TV 드라마로 제작될 것이라고 하니 얼마나 그로테스크(grotesque) 한 장면이 연출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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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공장>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표지에 적힌 '자유는 소중한 것(Freedom is a precious thing)'이라는 문구다.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을 담은 문구이기도 한데, 작가가 아이리스를 통해 자유에 대한 갈망을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소설 속 배경인 빅토리아 시대는 여왕이 왕권을 잡고 있었지만 영국 여성들은 교육을 받지 못했다. 재산이나 자신의 신체가 아버지의 소유였다가 결혼하면 남편의 소유물로 바뀌었다.
이혼도 할 수 없었고, 남편으로부터 학대나 체벌을 받아도 소송조차 할 수 없었다. 자유가 억압된 남성 위주의 봉건사회에 맞서고 싶었던 작가의 바람은 사회적인 속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그림을 그리려는 아이리스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자아실현과 여성의 인권 문제를 제기한 작가는 아이리스가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 수 있는 강인한 캐릭터로 그린다.
호러물이나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강해 이 소설의 초반부에 보여줬던 긴장감에 기대감이 상승했었다. 중후반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조금 지루했고 충격적이라 할 만한 장면도 없어 아쉬웠다. 호러물의 단골 메뉴 같은 좀 더 진한 로맨스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참고로, 한국어판 서문에는 이야기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 수 있는 내용들이 소개되어 있다. 내용을 알고 나면 호러나 스릴러물이 재미없을 수도 있으니 본문 먼저 읽고 나서 서문을 보시기 바란다.
* 출처 : https://blog.naver.com/twinkaka/222018554345
자유는 소중한 것(Freedom is a precious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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