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눈, 벌레의 눈
김해자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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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안에는 내가 아는 모든 단어와 내가 모르던 단어들이 새롭게 펄떡인다. 시를 읽는다는 건 어떤 것인가. 감성이 진동하는 것이라는 일차적 반응을 넘어 시가 파고 들어 사유의 중심을 뒤흔드는 경험이 이어진다. 고결한 어떤 것이 아닌 어디에나 눈치채지 못하게 떨어져 있는 각질같은 언어들. 숨을 쉬고 움직일 때마다 교묘히(?) 떨어져 흔적을 남기고야 마는 징글징글한 삶의 얼룩. 그것이 피이고, 땀이고 눈물이고 짙은 한숨이기도 했고, 그것이 함성이고, 웃음이고, 노래이기도 했다. 반듯하게 읽어낸 김해자의 눈. 그 눈을 통해 다시 읽어내는 시들.
함부로 혹은 허투루 전해서는 안되는 신탁을 전하듯 반듯하게 읽어주는(?) 시인의 글이 다부지다.
가끔, 시를 읽고 어떤 풍경과 장면이 떠오르면 같잖게도 이야기로 써보곤 했다. 염치와 부끄러움을 조금은 알기에 공공연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비밀스러운 공간에 적어두곤 했다. 일종의 전리품처럼..
한동안 시를 읽지 않았다. 입술로 읽기에는 좋았으나 늘상 뒷맛이 좋지 않았다. 시심이 깊지 못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깊어지면 뭐하나 허우적대다 매몰되고 그대로 죽는거지. 하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도 들었고.
시평에세이라고 명명한 이 책은 연대기처럼도 읽힌다.시의 진화를 정리한, 시의 위치와 이 시대에 시의 책무에 대해서도 엄중하게 묻는 것 같았다.
어찌되었든 시는 또 하나의 기록이다.
시대의 기록이고 사람의 기록이어야 한다.
아..시를 읽어야겠다.
마음으로, 영혼으로 읽는게 아닌 사람의 눈으로 읽어야겠다.
시는 마음으로 읽는게 아니다. 다부지게 촛점을 맞춘 눈으로 읽는게 맞다.
시의 눈, 벌레의 눈. 기어코 살아내는 기꺼이 죽어가는 그런 시. 그런 벌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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