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리아의 씨앗 - 열대 의학의 거장 로버트 데소비츠가 들려주는 인간과 기생충 이야기 크로마뇽 시리즈 2
로버트 데소비츠 지음, 정준호 옮김 / 후마니타스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말라리아의 씨앗

작가
로버트 데소비츠
출판
후마니타스
발매
2014.11.17

리뷰보기


#1. 말라리아.


세계적으로 에볼라 바이러스의 전염으로 긴장상태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하필이면 열악한 의료시설이 부족하고 보건체제도 열악한 아프리카에서 창궐하고 있다.

이기적인 마음들은 에볼라가 창궐하는 지역과 인근 지역의 사람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것까지 비난하고 통제하려한다. 병에 걸린 환자들에 대한 지원과 측은지심, 또는 해결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하려는 것이 아니라 차단과 고립으로 나타나고 있다. 두려운 것이다. 바이러스가 비자없이 넘나드는 국경이..


잠깐 생각이 멈추었다. 바이러스, 박테리아, 기생충..감염원과 감염경로, 생물학적구조..이런 걸 다 떠나서 우리는 아무렇게나 이 단어들을 섞어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고 말이다.

어렴풋이 구분은 가지만, 명확하게 어떤 것이라고 전문적인 정의를 내리기엔 부족함이 많다.

어쨌든, 이런 것들이 전염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만 인지할 따름이다.

세계적인 전염병.

중세의 흑사병이 있었고, 말라리아가 있다.


이야기는 수쉴라의 딸로부터 시작한다. 빈곤의 바닥에서 생활하는 수쉴라의 딸이 아프다. 고열과 설사, 수쉴라는 딸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는다. 차비조차 넉넉치 않은 수쉴라는 마련할 수 있는 자금을 모두 모아 멀고 먼 진료길에 나선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시내의 병원. 사람들은 넘쳐나고 의사들은 성의없다. 그 와중에 아이를 먼저 진료받게 해주겠노라며 브로커가 등장하고 돌아갈 차비까지 털어 그에게 준다. 결국 의사의 진료를 받는다. 말라리아. 그러나  그 어떤 처방도 받지 못한다. 약을 구할 돈도 없다. 수쉴라는 딸아이를 데리고 돌아와 마을의 사당에서 기도를 올리며 아유르베다치료를 한다. 아이는 결국 사망한다.

의료접근성이 용이하지 않은 빈곤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비싸지 않은 치료제를 살 수 없는 사람들. 또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약이 없는 상황.

이윤이 나지 않는 약을 생산하지 않는 제약회사들.


저자는 말라리아의 길을 터준 것은 식민지정책이었다고 밝힌다. 식민지의 지배를 용이하게 하고 물류확보를 위한 도로공사, 그 길을 병원체들이 넘나들게 되는 것이다.

문득, 언젠가 읽었던 총,균,쇠가 떠올랐다.

지배와 약탈의 방법들로 철제무기,화포, 유기균,들이 어떤 역할을 했었는지 말이다.


초기 말라리아의 발병시기, 과학자들과 병리학자들은 그 원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그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하고 치료제를 개발하는 건 요원해졌다.

그 과정에서 DDT에 의한 말라리아 매개체인 모래파리를 제거할 수 있었다는 짧은 성과가 있었지만, DDT 또한 생산이 중지되고 말라리아는 다시 창궐하기 시작한다.

때론 독극물인 3가 안티몬을 복용하기도 했다. 그 후 더 안전한 5가안티몬을 생산해내기는 했지만..

적극적이진 않더라도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은 이어져오고 있다. 하지만 완전하게 말라리아 병원균을 없앨 수는 없다. 진정되고 다시 창궐하기를 반복하는 역사


전염병이 창궐할 때, 그 치료제가 개발될 때까지 희생되는 사람들은 왜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이어야 하는지..생각이 멈추었다.

감염된 사람들, 그들이 왜 감염될 수 밖에 없었을까?에 대한 생각이 머리속에 맴돌았다. 누군가 그들에게 던져놓은 병균이 아닌데, 그곳에서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같은 것 말이다.


#2. 데소비츠


흥미로운 책이다.

인간을 쓰러뜨리고 혼란스럽게 하는 어떤 거대한 힘에 대한 서사처럼 읽히기도 한다.

풀기 어려운 난제를 던져놓고 조금 다가서면 조금 더 난이도를 높여버리는 존재.

하찮은 존재라고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들, 우리 몸 어디쯤에 어떻게 기생하고 있는지도 알아보기 힘든 작은 존재들에 의해 벌어지는 참혹함을 긴장감있게 써내려간다.

연구의 과정과 성과, 그 속에 희생되어가는 가난한 사람들.

병원균의 사진과 흔하게 보아온 모기지만 두렵게 느껴지는 각종 모기들의 사진.

연구자들의 약력, 이 모든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마치 소설처럼 써내려간다. 데소비츠의 문장력일지, 번역가의 능력일지는 모르겠지만..가독성이 좋은 책이다.


사실 데소비츠라는 이름조차 낯설었다. 기생충이라면 그저 서민교수 정도만 떠올릴 수준이었고, 바이러스와 기생충을 구분하는 것도 어려운 안목이니말이다.

하지만 그의 글에서 보여지는 학자들의 연구의 헛점과 그들이 이윤과 결탁하거나 정치에 기대어 섰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까지..전문가의 시각으로 면밀하게 보아낸다.

그저 잘못했다.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 당시의 정치적 군사적 흐름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는 것.


#3.

어떤 전염병이 시작되고 번져나가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모순과 희생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책이다.

자본과 진료체계와 연구가 동시에 진행되지 않는, 자본이 외면하고 진료체계가 엉망이고 이윤을 위한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을 외면하는 건 어쩌면 스스로 감염될 가능성을 넓히는 것과 다르지 않을것이다.

책 앞 부분에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었다.


"국경이라는 경계선은 인간이 만들어 낸 정치적 환상일 뿐, 병원체가 국경을 넘는 데는 비자가 필요없다."


엄청나게 두려운 경고다. 전염병을 가두어둘 수는 없다. 또한 병원균을 박멸시킬 수도 없다. 자연의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멸종시켰을 때 벌어질 나비효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평형을 이루어가는 것.


생각이 많아지게 되는 책이다. 술술 읽어나가지만, 문득문득 생각에 잡히게 된다.

자꾸 되묻게 되는 것이다.


에볼라의 확산을 막을 수 있을까? 막는다고 해도 공존할 수 있는 길은 있는걸까? 무엇이 에볼라가 이렇게 확산되도록 두었을까? 그 시작이 무엇이었을까?

가여운 그들은 얼마나 외롭게 서럽게 죽어가야할까?


우리는,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걸까..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의료지원과 면역,혹은 치료의 기회를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왜 에볼라나 말라리아만큼의 전염성도 없는걸까?


잘 구성된 다큐멘터리를 본 것 같았다.

눈에 보이듯 펼쳐지는 상황..낯설지 않은 광경들. 어릴 적 하얗게 약품을 덮어쓴 언니들을 본 기억같은 것이 겹쳐져 보였다.

콜레라와 장티푸스라는 전염병을 본 기억.


전염병은 어디에서든 시작될 수 있다. 그것이 나, 혹은 내가 사는 지역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저들의 지역이 조금 더 전염병의 접근성이 좋을 뿐이었고, 그것이 확산되기에 좋은 방치라는 환경을 가졌을 뿐일지도 모른다.

치료받지 못하고 죽어도 좋을 사람은...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