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코미디
윌리엄 사로얀 지음, 정회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 1. 가족의 힘

윌리엄 샤로얀의 첫 글에서 애틋함과 존경심을 먼저 읽게 된다. 자신의 아버지인 타쿠히 샤로얀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서문을 읽으며 어렴풋하게나마 휴먼 코미디의 온도가 느껴진다.

" 어쨌거나 이 이야기는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 작품이 당신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당신과 우리 가족의 특징인 유쾌함에 진지함을 적절히 섞어 최대한 단순하게 쓰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흡족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저도 알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이 이야기는 당신의 아들이 당신에게 바치기 위해 쓴것 이고, 따라서 그 이유만으로도 당신에게는 흡족한 작품일 것입니다. - 194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윌리엄 샤로얀"

마지막 문단에서 많은 것들이 읽힌다. 그가 자신의 가족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지, 가족에게 얼마나 큰 위로를 받는지, 그 가족의 일원으로 자신을 있게한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 어린 아들의 어리광처럼 귀엽고 진지하게 느껴진다.
중학교때 엄마의 생일이었다. 늘 싸구려 브로우치나 색종이를 오려 한참을 들여다 보아야 무언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조악한 모자이크를 선물했었던 나였지만, 중학생이 되었다고 뭔가 어른스러운 척 하고 싶었던 나는 돈을 모아 블라우스 한 벌을 샀다. 분홍색의 블라우스. 프릴이 잔뜩 달렸고 목에 리본을 묶어야 하는 내 눈에는 너무 고운 블라우스를 말이다. 학교 앞 보세 가게 쇼윈도에 걸려있던 그 옷을 보고 첫눈에 반해 얼마인지를 묻고 언제쯤 사러 올테니 팔지 말아달라는 당부까지 하고 나왔었다.
여튼, 엄마의 생일날 나는 그 옷을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선물을 전할때의 그 긴장감과 흥분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얼마나 좋아할지, 어떤 칭찬을 할지 가늠이 되진 않았지만, 내 마음을 읽어줄 것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았다.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선물.
선물을 받은 엄마는 당황한 표정이 잠깐 스쳐갔지만 이내 예쁘다 어디서 이런걸 샀니 우리 딸 다컸네를 연발하며 충분히 기뻐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엄마에게 하나도 어울리지 않았을 블라우스였다. 엄마의 칭찬에 나는 별것 아니란 듯 거드름을 피우며 "맘에 안들어도 할 수 없어. 엄마 주려고 거의 한달을 저금하고 버스비도 아겼다고. 따라서 엄마는 싫어하면 안돼. 알았지?" 세상에 이런 건방짐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그게 가능했던 건, 내가 엄마를 존경하고 있다는 마음과 그걸 알아챈 엄마의 시선이 마주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 우리가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 서문만을 읽고나서 떠올린 옛기억은 페이지를 넘어갈 때마다 여러가지의 장면들과 마주하며 시간을 더듬게 했다.
그 때, 그 곳에서 우리 가족은 어떤 모습이었는지..결핍과 희망사이에서 무엇이 우리를 웃게했었던가에 대한 확인작업처럼 말이다.

책은 그렇게 처음부터 마음을 흔들기 시작했다.

# 2.

캘리포니아 작은 도시 이타카 산타클라라 가에 있는 매콜리가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리고 순수한 율리시스, 어려운 집안을 돕기 위해 전신국에서 일을 하는 호머, 군에 간 형 마커스, 호머이 누나 베스 그리고 매콜리 부부의 일상이 이렇게 소소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그려진다. 마치 매일매일의 일일 연속극을 보듯이. 아, 요즘의 드라마는 막장코드가 대세라서 어쩌면 적절치 못한 비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의 일상에서 조용히 번지는 애틋함과 과장되지 않게 소소하게 지어지는 미소의 정체는 유쾌함이었다.
코미디라고 하면 왁자하게 박수를 치고,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우스운 것이라는 편견을 걷어내기에 충분하다. 잔잔한 웃음이 오래도록 기분 좋게 하는 것, 그것을 바로 희극이라고 불러야하지 않을까? 금방 잊혀지는 자극이 아닌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언제라도 한 부분을 꺼내어 웃음지을 수 있게 하는 것.
할머니가 다락 문앞에 놓아둔 박하사탕 주머니 처럼..언제나 달고 기분좋은 것 말이다.
넉넉하지 않은 환경에서도 웃을 수 있는 것, 비극이 비극을 불러와도 그 뒤춤에 희극의 부스러기를 흘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다.
눈물이 다만 비극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 만으로도, 비극과 희극의 간극은 넓지만은 않다는 것.

사실, 어렵고 힘들지만 견뎌내고 참아내어 언젠가는 행복해진다는 막연한 희망과 견딤의 글들을 어릴 때부터 자주 보아왔던 것 같다.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여전히 순하고 착하게 진심을 지키며 살아내면 언젠가는..(이 언젠가는 이라는 막연함은 얼마나 숨막히는 고문인건지..) 그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
기다리고 견디는 것.
그 고리타분한 공식이 책에서는 조금씩 균열을 갖게 된다. 고난과 역경의 정체가 얼마나 유약한 것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족이라는 강화체 앞에서 무력해지는 것.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장하고 서로에게 힐링이 가능하며 방어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려 단단하게 마주서는 그 힘을 말이다.
심지어..형 마커스의 전사 소식을 전해듣는 순간에도 가족은 최고의 힐링을 시작한다. 마지막 페이지를 오래 들여다 본 이유다.

"어머니는 죽을 만큼 가슴이 아팠지만 군인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올래요? 우리 집 구경시켜줄게요."

이 말에서 어머니의 강인함 따위 보다는 얼마나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는지를 느끼게 된다. 아들에 대한 존중도. 떠난 이를 미소로 보낼 수 있는 건 어느 순간에 가능할까?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과 믿음이 여전할 때 가능하지 않을까? 


이 사람들..정말 멋지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가 문득 떠올랐다. 가장 비극적인 상황에 가장 유쾌할 수 있었던 힘과 닮아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리고, 순하고 선한 사람들이 살아가던 웰컴 투 동막골도..

 




# 3.

율리시스의 얼굴에는 매콜리 집안 사람들 특유의 온화하고 지혜로우며 비밀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는 세상 모든 것을 향한 인사이기도 했다. -p11

조심조심 어머니에게 달걀을 건네는 소년의 행동에는 어른들은 알 수 없고 어린아이들은 굳이 기억할 필요없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었다 -p12

소년의 어머니는 그런 질문에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다. 소년에게 두 눈이 있고, 그 눈 뒤에는 관찰력이 있으며, 관찰력 뒤에는 알고자 하는 마음과 사랑과 갈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p27

호며는 왠지 모르게 모든 것이 고통스러웠다.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았다. 여인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다만 그녀에게 닥친 상황이 너무나 터무니 없고 부당해 보여서 이런 삶을 계속 살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p32

학교는 아이들이 거리를 떠도는 걸 막아주는 수단일 뿐이니까. 하지만 좋든 싫든 아이들은 결국 언젠가 거리로 나가게 마련이지. 자식들이 세상으로 나가는 걸 부모들이 두려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사실 두려워 할 것도  없어. 이 세상엔 공포에 떨고 있는 어린애들이 수없이 많단다. 너무 겁이 나서 서로를 겁주기도 하지. -p42

코치는 휴버트 애클리 3세를 일 등으로 만들기로 이미 결정한 듯 했다. -p59

헬렌 엘리엇이야말로 호머에게는 가장 위대한 제국이었다. 그녀의 맑은 목소리는 가엾은 인류가 이루어낸 최고의 업적이었다. -p68


몇개의 밑줄을 읽고 있으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매콜리 집안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 그 주변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사는 법을 알 수 있다. 최소한 이 가족은 사람의 체온을 유지할 줄 안다.

"오히려 그 아이의 가슴 속에 인간미와 선량한 마음이 있는지. 그 아이가 진실과 품위를 소중히 여기고, 자신보다 모자라든 훌륭하든 상관없이 타인을 존중하는지 여부가 나에겐 훨씬 중요하단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인간적이기만 하다면, 나는 그들이 인간으로서 똑같은 태도를 보이기를 원하지 않아.(..) 그보다는 내 학생들이 모두 제각각의 특별함을 가진 인간이기를 바란단다. 저마다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개성을 갖고 있기를 바란단 뜻이야. (고대사 선생님 미스 힉스) -p79 요약

"너는 지금 죽은 형의 일부가 네 마음속에서도 죽기를 기다리는 거야. 그 일부는 그저 육체에 불과해. 언제든 있다가도 사라질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이지. 그 부분이 죽었다는 사실에 지금은 네 마음이 아프겠지만 조금만 기다려봐 고통이 완전해져서 죽음 그 자체가 되면 곧 사라질 거야. 그러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 인내심을 갖고 참아. 그러면 마침내 네 마음 속에 죽음이라는 것을 품지 않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거야. (스팽글러가 호머에게) -p296

#4.

인생은 비극이다. 라고 말한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인생은 희극이다. 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이 상반되는 명제가 논란거리도 증명거리도 아닌 채 하나의 명제처럼 입에서 입으로 책에서 책으로 전승되는 건 그 두가지의 본성이 인생, 즉 사람의 삶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일게다. 세상을 향해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어린 시절의 희극과 세상의 정체와 마주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비극 사이에 무엇이 더 큰 영역을 확보하는지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모든 비극적 요소들이 희극적 요소들에 반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면 비극은 희극에 그 근원과 동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어릴 때부터 내 목에는 점이 하나 있었다. 목과 쇄골의 사이에..엄마는 처음에 그것이 파리똥인줄 알고 수건으로 닦아주었다고 했다. 피부가 빨개지도록 닦아도 없어지지 않기에 그것이 점인줄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작고 눈에 잘 뜨이지도 않는 점이었으나, 지금은 작은 팥알만큼 크다. 어릴 때부터 거기 있던 건 떠나지 않는다. 굳이 수술적요법으로 떼어내지 않는다면 말이다.
삶이 희극이 될 수 있는 근거도 거기에 있을것만 같다. 세상이 커다란 호기심이었고 즐거움이었던 시간. 그 어린 시간은 사라지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 굳이 훼손하지만 않는다면..그것이 거기 그대로 있는 한, 희극을 근간으로 한 비극은 다시 희극으로 회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숨가쁘게 살아내야하는 삶의 동력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가족은 가장 강력한 방공호이며 울타리이며, 분명한 내 자리와 내 몫의 웃음이 보태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아버지에게 바쳐진 글..오래도록 그 온도를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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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4-09-01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적 명작소설 중에서도 자극적인 소재가 꽤 많은 편이죠.그런 것을 감안한다면 건전하면서도 감동적인 소설로 이 책을 꼽을 만합니다.저도 마지막 장면이 슬펐어요.전쟁영화에서도 전사한 아들의 유골을 갖고 온 군인이 나오는 장면들이 있죠.우리나라 영화든 외국영화든...

나타샤 2014-09-02 16:49   좋아요 0 | URL
담담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걸까..생각을 오래했습니다. 가족들 특유의 낙천적인 기질의 문제가 아니라..아마도 사랑일거라고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