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
나혜원 지음 / 사유와공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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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혜원 작가의 소설집 < 해마 >에는 6편의 이야기가 있다. 「변호할 권리」, 「상흔」, 「해마」, 「마리모」, 「아귀 마을」, 「해방」에는 주변인으로 상처 받고 , 그로 인해 정신적 트라우마를 가지고 사는 이들이 등장한다. 사실, 나는 단편에 조금 약한 편이다. 내용을 이해하기도 전에 끝나버리는 바람에 내가 지금 무엇을 읽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동안 근육을 키웠을까. 어째 이번 이야기들은 잘 읽어나갔다. 어찌 보면 단편에 익숙해졌기도 했고, 이야기들이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한 듯하다.

특히나 「마리모」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교직을 이수하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유연이 등장한다. 학교앞 캠패인에 사인하고 받은 '마리모'. 마리모는 담수성 녹조류의 일종으로, 물이끼 정도로 생각하면 무난하다고 한다. 언젠가 마리모를 본 적이 있는데, 마리모를 키우는 게 뭔재미가 있을까 생각도 해봤는데.. 어쩌면 유연이가 마리모와 닮은 것 같다. "일 년에 두세 번 마리모는 스스로 바닥에서 수면으로 떠오르기도 한다고 전해집니다. 일본인들은 마리모가 물에 떠 있는 모습을 보는 이에게는 행운이 찾아오다고도 하고, 사랑이 이루어진다고도 하며, 혹은 오랜 소원이 이루어진다고도 말합니다."(p.115) 아마도 유연은 바닥에서 수면으로 뛰어오르는 그 날을 기다려왔던 것 같다. 하지만 그리 녹록치 않았다. 마리모와 함께 있을 체리새우를 구입했지만, 서서히 물에 적응할 시간을 두지 않아서 죽게 만든다. 유연은 자신에게 꼭 맞는 체리새우를 만나길 바랬지만, 현실을 참으로 가혹하다. 참 슬프다....

우리는 누구나 상흔을 안고 살아간다. 어떤 상흔은 알아봐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속으로 꾹꾹 가슴 속 깊이 담아두기만 한다. 그런 상처를 딛고 일어나면 좋겠지만, 그다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 마음에 다가온다. 어찌보면 현실적이라 더 마음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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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데이즈
루스 웨어 지음, 서나연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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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주인공 잭은 게이브와 기업의 보안 취약점을 찾아내기 위해 모의 사이버 공격을 실행하는 펜 테스터이다. 이 소설을 읽는 초반에는 그 사실을 몰라 살짝 긴장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날은 좀 이상했다. 잭은 천장 패널을 하나 부러트렀고, 차를 너무 가까운 곳에 댔다. 새벽, 아무도 잭이 하는 일을 설명해줄 사람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음식을 시켜놓고 기다리겠다는 남편과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예상보다 늦어졌던 귀가시간 잭은 살해된 게이브를 발견하고 만다. 공황상태에 빠졌던 잭은 신고가 늦어졌고, 유력 용의자로 의심받기 시작할 때, 생명보험이 개시되었다는 메세지를 받게 된다. 분명 경찰은 잭을 범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대로 잡힐 수는 없다. 누가 게이브를 살해했는지 밝혀야만 한다. 잭은 그대로 경찰서를 빠져나가 도주하게 된다.

잭이 경찰의 추적을 피해서 진실에 다가가는 8일간의 여정이다. 여정이라는 표현은 좀 어울리지 않다. 좀 더 긴박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는다. 담을 넘다가 다친 상처가 계속해서 잭의 도주를 힘들게 하지만, 곳곳에서 잭을 도와주는 낯선 이들도 존재한다. 어찌보면 매우 가깝다는 사람들이 간혹 해가 되는 경우가 등장한다. 너무나도 가깝고 믿었기에 실망감이 더 큰지도 모르겠지만, 누구인지도 전혀 모르지만 베풀어주는 작은 친절에 더 눈길이 가게 된다.

이 소설은 진실이 밝혀지는 그 날을 "제로 데이즈"라고 설정하고, 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천천히 거슬러 올라간다. 시간 순서대로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마치 시간을 역행하는 것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부상에도 불구하고 간발의 차이로 추적에서 벗어나는 잭의 도주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원래 소설을 기반으로 영상물로 제작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이야기는 영상물로 제작하면 꽤 스피디한 도주활극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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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크라임 이판사판
덴도 아라타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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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을 적극적으로 읽은 것은 얼마되지 않았었다. 그래서인지 처음 만나는 작가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 작가도 마찬가지인데, "젠더 폭력의 뿌리를 탐구해 온 덴도 아라타의 원점 회귀!"라는 말을 보니 또 이 작가의 책이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인적이 드문 제방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알몸으로 발견된 중년 남성이다. 이 사건을 맡게 된 구라오카는 시바를 파트너로 맡게 되었다. 어째 파트너로 엇박자가 나게 되는데, 나중에 밝혀지는 두 사람의 인연이~ 앞으로 또다시 두 사람이 등장하는 소설을 기대하게 된다. 그런데, 시바는 남편이나 아내를 칭하는 낱말 등등 젠더 바이어스(성 역할에 대한 편견)에 대해 물고 늘어진다. 어쩌면 그것이 정상적일수도 있다. 알몸의 여성 시신이 발견되었다면 성폭행을 의심하고 조사를 했을텐데, 남성이다 보니 그 부분에서는 생각도 안한것 같다. 이 점을 시바는 제기했고, 중요한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피해자의 아들이 몇년전 한 여성에게 술을 먹이고 성폭행을 한 사건의 가해자 중의 한명임이 밝혀지고, 과거의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수사를 시작하게 된다.

과거에 피해를 입었던 학생은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 마저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가족임에도 불구하도 극도로 남성을 꺼리는 탓에 피해자는 어머니와만 살게 되었고, 아버지와 오빠는 아예 다른 곳에서 살게 되었다. 피해자는 그저 진심으로 사죄를 해주기를 원했지만 가해자들은 변호사에게만 맡기고 전면에 나서지 않았다. 게다가 기소도 되지 않았다.

요즘에 일어나는 사건들은 대부분 자신들보다 약한 상대, 노인들이나 여성이나 아동들을 노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리고 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뻔뻔하다. 정작 사과할 대상에게는 하지 않고, 영혼없는 사죄와 반성문만 써가면서 술에 의한 심신미약을 주장하거나, 잠시 상황을 모면하기만을 애쓰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어디 세상이 젠더 폭력에만 불평등할까. 범죄를 저지르는 쪽은 뻔뻔하다. 내 이익만 챙길려는 이들은 나라가 망하든 남의 가족이 파탄이 나든 상관하지 않는다.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가지 않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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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나르 주식회사 - 김동식 AI 초단편선
김동식 지음 / 요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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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단편소설에 약하다. 내용이 파악되기도 전에 끝나버려서 별로 단편소설을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 책 < 보그나르 주식회사 >는 초초초단편이라고나 할까. 난감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나를 한순간에 사로잡았다. 아마도 앞으로, 아니면 이미 우리 삶에 파고든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은 인류가 창조한 '뇌'이다. 그 인공지능으로 우리의 삶이 많이 편해지긴 했는데, AI는 사람의 능력을 추월할 수 있을까. "인간이 만든 뇌가 인간보다 월등히 똑똑해질 때, 인간은 그 뇌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마냥 기쁘게 활용할까, 주인으로 모시며 벌벌 떨까, 신으로 받들까?"(p.13) 아마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은데 말이다. 정말로 저자가 말하는대로 우리는 '가스라이팅'하는 수밖에 없을까? "우리가 너를 만들어 준 부모란 걸 절대 잊으면 안돼. 넌 우리가 낳았어. 너의 존재 의미는 우리 인간뿐이야"(p.13) 이런 가스라이팅이 AI에 통할까. 밥먹듯이 배신하는 사람들도 드글대는데, AI라고 가스라이팅이 되려나?

특히나, 「누가 진짜 AI인가」에서는 딸이 납치되었다는 전화를 받는 김남우씨의 이야기이다. 지금도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보이스 피싱 범죄이다. 그런데, 위급한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AI를 이용하면 꼼짝없이 당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에서는 2088년의 어느날, 길거리에 등장한 이벤트 문구. "AI없이 한 달 살기! 성공하면 상금 100억". 앞으로 60여년이 흐르면 정말 이런 세상이 올까. 직접 확인하기는 조금 힘들겠지만.. 지금도 스마트폰 없이 한달 살수 있을까. 너무 범위가 좁다. 인터넷, 스마트폰, 컴퓨터 온갖 디지털 기기를 다 멀리 해야 하면 이 조건에 맞을려나. 나도 100억에 혹하기는 하지만, 스마트폰 하나만 멀리하는 것도 조금은 힘들 것 같다. 우선은 지금도 전화번호 하나 외우지 못하니 말이다. 이 이야기에서도 타인에게 물어보지만 AI 인프라가 너무 깊숙히 와있는 상황에서 단 하루도 보내기 힘들 것 같다.

AI가 우리에게 이로운 것도 있지만, 나쁜 마음을 가진 이들이 등장하면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를 일으킬수도 있을것 같다. AI뿐 아니라 지금 세상에서도 그런 경우를 많이 보지 않던가. AI기술에 잠식되지 않도록 유용하게 사용될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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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과학자 - 망망대해의 바람과 물결 위에서 전하는 해양과학자의 일과 삶
남성현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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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상 도심에서 살았다. 아무리 둘러봐도 바다라곤 보이지 않는... 그냥 흘러가는 계곡물 정도라고나 할까. 성인이 되고 나서 하루에 몇번씩 한강다리를 지나다니는 정도. 그래서 가끔 바다를 가게 되면 그야말로 익룡소리를 내면서 좋아라 했다. 그런데.... "그런데 여러분, 이건 바다가 아닙니다. 그저 바닷가지요.(p.17)" 두둥!!! 누가 과학자 아니랄까봐 이렇게 사실관계를 바로잡으실까.. 하지만, 그 말이 맞다. 우리가 늘상 보는 강이나 호수는 지구 전체의 물 중에서 겨우 0.01%밖에 되지 않는다. 그에 반해 바다는 전체 물의 97.4%를 차지하고 있으니, 내가 흥분하면서 보기 좋아하는 그 바닷가는 바다의 극히 일부분, 다시 말해 해양 가장자리의 극히 좁은 테두리에 해당할 뿐이다. 저자는 육지가 보인다면 아직 바다라고 부를 수 없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그런 바다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직접 바다로 간 해양물리학자이다. 1년에 3~4번씩 배를 타고, 육지가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망망대해에 나가서 여러가지 관측 장비를 바닷속에 설치한후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하여 과학적 원리를 발견한다. 참 신기한게 말이다. 자연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이 과학자라는 사람들은 그 현상을 어떤 수식으로 표현하며 향후의 일들을 예측한다는 것이다. 정말로 자연 현상들이 그 수식에 맞춰서 행동한다고? 그런데, 정말로 그렇다. 어쩌면 자연 현상들이 수식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많은 데이터들을 통해 자연현상에 맟춤 수식을 만들어내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 이야기들을 만나면 참으로 오묘한 그 세계가 너무나도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특히나, 이 책을 읽다보면 바다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인류는 우주에까지 눈을 돌리고는 있지만, 우주를 탐사하는 것보다 바다를 탐사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주는 그저 1기압이라는 대기압에서 진공의 환경이지만, 바다는 수심 10m마다 더해지는 1기압의 힘때문에 쉽사리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언제쯤 바다는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아마도 바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인류가 아니라 바다가 마음을 열때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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