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음식이 너무 맛있었을 때, 무심히 본 영화가 너무 재미있었을 때.
이렇듯 기대감 없는 상태에서 만나는 행운은 훨씬 큰 감동을 주는 것 같다.
이 책이 그런 느낌이었다.
사실 큰 기대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동차 엠블럼 이야기로 책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을 뿐이었다.
저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존재에 관한 정보라면 상식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자동차 브랜드와 엠블럼에 얽힌 역사와 문화도 상식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주장이다.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 일반상식 교재를 보더라도 ‘이런 게 왜 상식이지?’ 하는 의문이 생기는 내용이 많은데, 거기에 비하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이 보게 되는 자동차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은 일반상식으로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자동차 제조사들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과거 역사와 현재 모습을 다뤄 브랜드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단서를 제공함으로써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동차의 뒤에 담긴 서사와 역경을 이야기한다.
책은 크게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 자동차로 구성되어 있다.
유럽 자동차로는 BMW, 람보르기니, 볼보, 페라리, 포르쉐, 폭스바겐 등이 나온다.
아메리카 자동차로는 테슬라, 제너럴 모터스, 지프, 포드를 다루고 있다.
아시아 자동차로는 한국의 현대자동차, 기아, 일본의 닛산, 스바루, 토요타, 혼다, 중국의 BYD, 상하이 자동차/지리 자동차, 니오/샤오펑/리오토를 다룬다.
차에 별 관심이 없었지만, 재규어는 참 좋았었다. (정확히는 재규어 앞에 달려있는 조각품 ‘리퍼’(Leaper)를 좋아했다.)
여느 자동차보다 우아하면서도 힘이 있어 보였다. 저런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 모든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도 위트를 잃지 않은 품위 있는 모습일 것이라 상상하곤 했었다.
그래서 재규어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4인승 차량으로 기록된 XJ12 모델, 지금까지도 자동차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차로 꼽힌다는 E-타입 3.8.
이렇게 “아름다운 고성능”으로 불리던 재규어가 모회사 포드의 간섭으로 정체성 혼란을 겪고, ‘경제성’의 포로가 되어 재규어의 정통성을 잃어버렸다는 점이 안타깝고.
재규어의 리퍼 엠블럼에 마음을 빼앗겼던 나로서는 재규어의 ‘재규어’가 사라졌다는 점이 가장 씁쓸했다.
자동차 콘텐츠를 제작하는 칼럼니스트이자 작가인 저자는 ‘나쁜 차는 없다. 단지 취향에 맞지 않는 차만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브랜드 철학과 차를 개발하는 동안 구성원이 들인 공을 생각하면 자동차는 존재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 책으로 100년이 넘어가는 자동차 역사의 면면을 알아가면서, 자동차 브랜드(제조사)에 담긴 그들만의 가치를 발견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 말이 이 책의 목표이자 의미라고 느꼈다.
사람도 외모보다는 내면을 보고 만나야 하는 것처럼, 자동차를 단지 디자인이나 성능만으로 평가하기보다는 그 자동차만이 가진 가치를 알아보면 남다른 애정이 생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