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촛불이면 좋으련만 - 내 인생의 문장들
장석주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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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작가는 책을 읽는 순간을 ‘책에게 삼킴을 당한다’라고 표현했다. 너무나 멋지고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자주 기꺼이 책에게 삼킴을 당한다.

처음 독서에 입문했을 때는 지식을 쌓고 싶다는 의도가 강했다. 하지만 독서를 하면 할수록 그저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좋아진 느낌이다. 작가도 책에서 구한 것은 앎과 지혜가 아니라 순수한 몰입과 기쁨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문장들에 대한 나의 오마주다.

<당신은/눈물 젖은 빵을/먹어보았는가?>의 내용이 참 기억에 많이 남았다.

K의 이야기가 안타까웠다. K는 더는 절망할 여력조차 없었기에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저자는 스스로 자신을 만든 것이 “눈물 젖은 빵”이었다 말한다. 그 빵을 씹으며 꿋꿋하게 살고자 했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는 절망의 힘을 믿는다고 섰다. 또한, 생존자가 된 것에 은근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태어남의 재난에서 도망가지 않고, 그것을 견디고 이겨냈음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장석주와 카잔차키스와의 만남이 인상적이다. 이런 만남은 운명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작가는 카잔타키스와의 첫 만남을 영혼의 한쪽을 찢을 듯 천둥 같은 울림이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크레타섬 언덕바지의 카잔차키스 무덤 앞에 붉은 여름 꽃 한 송이를 바치며 어떤 기분이었을지 궁금하다.

평생 읽고 쓰며 살았다는 저자는 스스로 책에게 자신의 피, 시간을 바쳤다고 말했다.

그의 책을 읽고 있자니 그가 얼마나 문장들을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문장에 대한 통찰력과 그것을 풀어내는 능력도 대단하다. 그가 알려준 문장들은 모조리 다 찾아 원문을 읽어 보고 싶다는 갈증이 일었다.

쓰기와 읽기는 손바닥의 안과 밖이라고 말했다.

책들은 저마다 좋은 문장들을 품는다. 저자는 누구이든지 타인의 문장을 노트에 적는 습관을 경멸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나는 타인의 문장을 통해서라도 손바닥의 안을 보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타인의 문장을 쉴 새 없이 노트에 적고 있는 나를 본다.

물고기들은 고체 상태의 물이다.

새들은 고체 상태의 바람이다.

책들은 고체 상태의 침묵이다.

-파스칼 키냐르, 송의경 옮김, 『옛날에 대하여』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만났는데 적지 않을 수 있는 강심장이 결코 못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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