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주인공은 소원이라는 소녀이지만, 정작 소원의 이야기는 앱을 만들게 된 과정을 설명하기 위한 정도로 그친다. 오히려 고객으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딥하게 그려내고 있다.
소원을 찾아오는 고객들은 특별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미용실 시다, 웹 소설 작가, 일용직 노동자, 빵집 주인, 은행 직원, 행복 강의사의 독립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지루하지 않고, 각각의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각 고객들의 사연과 의뢰 내용에 관한 이야기들을 속도감 있게 그려내면서도 주인공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CASE 47 마지막 통화가 끝났습니다>는 유일한 가족인 여동생의 안타까운 죽음 후 힘들어하던 고다정이라는 은행 직원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고객으로 찾아온 동생 다은이를 자살하게 만든 남자 김민준을 만나게 되면서 복수를 꿈꾸게 된다.
앱을 실행시켜 복수하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를 걸기만 하면 된다. 기회는 단 세 번.
다정은 어떤 방식으로 소원이 이루어 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민준에게 전화를 건다. 놀랍게도 전화를 한순간 눈앞에서 민준이 사고로 죽어 버린다.
그전의 이야기들이 고객들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기보다는 살짝 도움을 주는 귀여운 수준이었다면, 이번 다정의 이야기는 매우 극단적이다. 매운 마라 맛이라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이런 속이 후련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보다는, 앞의 이야기들처럼 잔잔하고 여운이 남는 이야기들이 좋긴 했다. 하지만 조금 지루했을 수도 있었는데 다정 씨의 이야기가 반전을 주면서 소설에 몰입도를 더해준다는 점에서는 좋았다.
소원성취 앱은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근사하거나 특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원을 빈 고객을 변화시키고, 천천히 조금씩 소원을 움직인다.
소원을 빌 때에는 신중하고, 명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CASE 33 나도 안되는 게 있는 사람>의 도순처럼 의도치 않게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실제로 ‘소원 성취 앱’이 개발된다면 나는 어떤 소원을 빌까 생각해 봤다. 딱 이거다 싶은 소원이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현재 삶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그런 앱에 의존하지 않아도 내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다는 자기 믿음이 있다고나 할까.
그래도 소원 성취 앱 고객센터에는 꼭 한번 찾아가고 싶긴 했다. 의뢰가 아니라 소원 씨와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서이다. 소설 속 인물이긴 하지만 한소원이 더 이상 외롭지 않고,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