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금정연.정지돈 에세이 필름 / 푸른숲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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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 지나치게 자주 가는 정지돈 씨와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콘 에어>인 금정연 씨는 한국 영화 속에 나타나며 한국 영화를 한국 영화로 만드는 한국적인 장면들을 모은 일종의 에세이 영화를 만들기로 한다.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은 그런 영화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 기획 단계에서부터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한국 영화에 대한 한국 영화를 만드는 두 사람의 좌충우돌 편력기를 그린 제작 노트이다. (『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는 2021년에서 2022년까지 2년 동안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서 연재한 <한국 영화에서 길을 잃은 한국 사람들>을 묶은 것이다.)

영화에 조예가 깊은 작가들(시네필)이라 그런지, 확실히 대화에 은유와 비유가 난무하다. 거의 외계어 수준이라 사실 나는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들이 우리를 영화의 세계로 이끌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다면 한국 영화는 아빠인가? 우리는 한국 영화를 죽여야 하나?”

각자의 아버지들과 영화관을 찾았던 추억을 이야기하고, 결론적으로 아버지들이 자신들을 영화 언저리에 방목했다는 흐름까지는 이해가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 영화는 아빠인가?’라는 질문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더군다나 ‘한국 영화를 죽여야 하나?’ 라니!

이런 식으로 그들의 의식의 흐름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어서 책을 읽는 게 곤혹스러웠다.

그럼에도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글로 읽는 이색적인 경험이었다는 점이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특히나 가장 한국적인 장면들에 대한 피셜이라는 점에서 더 흥미로웠다.

<미나리>,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말을 실감할 정도로 한국적인 정서를 그대로 담은 영화들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서, 한국 영화를 한국 영화로 만드는 한국적인 장면이나 정서는 정확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외국 영화와 구별되는 독특한 뭔가가 있다고 느꼈다. 이 책이 그 뭔가를 선명하게 해 준 것 같아서 통쾌한 기분이다.

정연 씨는 농담으로라도 훌륭하다거나 예술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영화들을 봤다고 하면서, 쓸데없는 영화만 보는 마음에는 약간 판도라의 상자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1) 호기심에 이끌려 영화라는 상자를 엶.

(2) 형편없는 영화들의 면면에 화들짝 놀라 상자를 닫음.

(3) 상자 속 깊은 곳에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좋은 영화들이 남아 있음.

(4) 세상엔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좋은 영화들이 무척 많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거친 현실을 묵묵히 살아갈 용기를 얻음…….

비유가 너무 찰떡같아서 한참을 음미했다. 영화는 아니지만 시답잖은 책이나, 영상을 보며 자주 느꼈던 마음이라 너무 알 것 같았다.

내가 모르는 분야인 영화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도 좋았고, 작가들의 기발한 생각들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일상을 조금이라도 보게 된 것도 즐거웠다.

이래저래 새로운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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